생김새와 ‘그립 컨트롤’ 등 완전히 SUV로 거듭남
예상보다 훌륭했던 주행 품질과 핸들링, 효율
평범함을 거부하고 곳곳에 세련된 개성 담아
미니밴이라고 놀림 받았던 게 서러웠을까? 신형 푸조 3008은 이름 뒤에 ‘SUV’를 콕 집어서 달고 나왔다. 다시 말해 국내에서 공식적인 풀네임은 3008 SUV다. 이로써 “이 차는 차종이 뭔가요?”라는 질문은 이제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2009년 처음 세상에 나온 3008은 CUV였다. 처음 봤을 땐 10여 년 전 GM대우가 만들었던 레조의 얼굴에 ‘한니발 렉터 마스크’를 씌우고 차체를 위로 껑충 잡아 올린 느낌이었다. 당시 C 세그먼트 크로스오버 차들이 유행을 타기 시작했고, 3008은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전역에서 효율 좋은 멀티 플레이어로 인정받았다.
지난해 파리모터쇼를 통해 새롭게 등장한 2세대 3008은 확 바뀌었다. 2박스 스타일에 좀 더 남자다운 면모를 갖춰 딱 봐도 SUV다. 국내에는 지난 서울모터쇼를 통해 데뷔했고, 큰 관심을 끌었다. 푸조의 공식 딜러인 한불모터스가 잡은 초기 물량은 250대였지만, 사전 계약만 1,000대 넘게 이뤄졌다. 아직도 800명 정도가 차를 기다리고 있다. 한불모터스는 예상보다 높은 수요에 물량을 확보하느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한불모터스 관계자는 현재 차를 받기까지 약 3개월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인기 비결이 궁금해 3008 SUV GT 라인을 시승했다. 운전석에 앉기 전, 멀찍이 떨어져 보고 있으니 문득 서류위조로 판매 중지된 폭스바겐 티구안이 생각났다. 1년 전까지 티구안은 수입 SUV의 제왕이었다. 티구안이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3008 SUV가 그 허전함을 메울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노. 티구안이 보편타당한 방식으로 국내 소비자 입맛을 만족시켰다면, 3008 SUV는 색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왠지 그러한 독특함이 더 끌린다.
운전석에 앉았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푸조가 요즘 패션과 인테리어 잡지를 읽나 보다.’ 세련되게 바뀐 실내만 봐도 푸조의 생각이 진취적으로 바뀌었음을 가늠할 수 있다. 과거의 푸조는 이렇지 않았다. 멋을 부리기보다 실용성과 경제성에 집중해 투박한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신형 3008 SUV의 인테리어는 고급스러워졌고 잘 정돈돼있다.
그 와중에 개성도 잃지 않았다. 항공기 조종석에서 모티브를 얻은 아이 콕핏(i-Cockpit) 콘셉트가 어색하지 않게 잘 녹아 들었다. 푸조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한 앙증맞은 스티어링휠, 그 너머로 보이는 12.3인치 디지털 인스트루먼트 패널에서 화려하게 움직이는 주행 정보와 계기반 그래픽, 중앙의 8인치 터치스크린의 조화가 담백하고 간결하다. 기능과 장비는 늘었지만, 군더더기가 없고 정갈하다. 센터페시아 송풍구 아래 자리한 크롬 토글스위치는 마치 비행기를 모는 듯 색다른 경험을 안겨 주고, 거위 머리처럼 생긴 변속 레버의 모습 역시 평범함을 거부한다. 어느 곳 하나 범상치 않은 곳이 없다.
묵직한 차체의 윤곽만 보더라도 기존 미니밴의 캐릭터를 완전히 버렸음을 알 수 있다. 풀 LED 헤드램프의 눈매는 더욱 날카로워져 촘촘한 크롬 그릴과 조화를 이루고, 사자가 발톱을 할퀸 듯한 형상으로 디자인했다는 LED 리어램프는 입체적이다. 곳곳에 새겨진 ‘GT Line’이라는 글자 그리고 듀얼 배기구가 스포티한 느낌을 더한다.
3008 SUV는 308에도 쓰이는 PSA의 EMP2 플랫폼에서 제작돼 길이가 88㎜, 휠베이스는 62㎜ 늘어났다. 뒷좌석에 앉았을 때 모자람 없이 안락했다. 2열 시트는 완전히 평평하게 접을 수 있는데, 이는 ‘차박족’의 마음을 설레게 할 수 있는 포인트다. 트렁크의 기본 용량은 590ℓ며, 2열 시트를 모두 눕히면 최대 1,670ℓ까지 확장할 수 있다.
이 차가 SUV를 표방한다는 건 새롭게 추가된 ‘그립 컨트롤’ 기능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립 컨트롤’은 오프로드 기능을 담은 전자식 트랙션 컨트롤로 쉽게 말해 네바퀴굴림 차를 흉내 낼 수 있도록 해준다. 다이얼을 통해 눈길, 진흙, 모래 등 5가지 주행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여기에 내리막길에서 차를 자동으로 안정적이게 잡아주는 HADC까지 더해져 웬만한 네바퀴굴림 SUV가 발휘하는 기능을 비슷하게 구현한다. 실제 이 차를 사는 소비자들이 3008 SUV로 오프로드를 달릴까 싶지만, 이 기능으로 차의 정체성은 뚜렷해졌다.
이 차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예상외로 훌륭했던 주행 품질이다. 3008 SUV엔 BlueHDi 1.6 엔진과 PSA의 6단 자동변속기를 얹어 언뜻 예전에 시승했던 시트로엥 C4 피카소가 떠올랐다. 변속기는 변속할 때마다 탑승자의 몸을 앞으로 숙이게 해 겸손하게 만들었고, 디젤 엔진은 시끄러웠다. 그런데 3008 SUV는 흡음재를 더 넣었는지 조용하고 얌전했다. 서기 전에 약간 울먹이는 변속기는 308과 비슷하지만, 전반적으로 매끈한 편이다. 308보다 덩치는 큰데 몸놀림은 더 조신한 느낌이다. 주행감은 전반적으로 편안하고 부드럽다.
3008 SUV에겐 운전 재미마저 있다. 여기엔 푸조 특유의 아담한 스티어링휠이 한몫 거든다. 처음엔 몸집에 비해 작게 느껴지는 이 운전대에서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이내 빠른 조향 응답 속도에 익숙해졌다. 평소에 랠리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내달리는 푸조 차들을 보며, ‘출발드림팀’에서 거침없이 질주하는 개그맨 김병만의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3008 SUV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고 내릴 때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애초 너무 기대를 버렸던 탓인지 핸들링과 코너링은 나쁘지 않았다. 앞바퀴굴림 차에서 나타나는 언더스티어와 높은 차체 때문에 발생하는 쏠림은 있었지만 충분히 제어할 만한 수준이었다. 최고출력은 120마력으로 높은 편은 아니나, 최대토크는 30.6㎏·m으로 모자라지 않다.
효율성에서도 점수를 땄다. 3008 SUV의 복합연비는 13.1㎞/ℓ로 국내에서 3등급을 받았다. 고속도로 연비도 13.5㎞/ℓ로 디젤차치고 좋은 공인 연비는 아니다. 그런데 실제 연비는 공인 연비보다 더 좋게 나타났다. 3008 SUV로 왕복 650㎞를 달렸는데, 약 17㎞/ℓ의 평균 연비를 보였다. 연료 소비를 줄이기 위해 특별히 신경을 쓰며 운전한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쭉 뻗은 도로와 구불구불한 산길을 신나게 달렸다.
개성적인 기능에선 푸조가 주장하는 ‘프렌치 감성’을 맛볼 수 있다. 디지털 계기반은 다양한 그래픽과 구성으로 운전자의 편의와 감성을 만족시킨다. ‘엠플리파이(Amplify)’는 운전자의 기분에 따라 조명의 강도, 디스플레이, 음향 등을 바꿔준다. 차 내부에 세 종류의 디퓨저까지 장착돼 취향대로 고를 수 있다. 이 밖에도 핸즈프리 테일 게이트, 액티브 안전 브레이크, 앞차와의 거리 경고 시스템, 차선 이탈 방지 시스템, 크루즈 컨트롤 등 요즘 유행하는 웬만한 편의 및 안전 기능들이 담겨 있다.
3008 SUV의 가격은 3,890만원, 시승차인 GT 라인은 4,250만원부터 시작한다.
조두현 기자 joe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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