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시간) 오후 3시 프랑스 칸은 1분간 고요했다. 티에리 프리모 칸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이날 영화제 중심 건물인 팔레 드 페스티벌의 레드카펫에 서서 영국 맨체스터 폭발 테러로 숨진 희생자와 유가족 등을 위로하며 1분간 묵념했다.
칸에도 숙연함과 긴장감이 감돌고 있지만 영화제가 종반으로 향하면서 경쟁 분위기는 더욱 달아오르고 있다.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가 투자한 영화라는 점만으로 영화제 시작 전부터 논란의 도마에 올랐던 ‘옥자’는 최고의 화제작으로 거듭났다. 칸을 찾은 세계 영화인들 사이에서 ‘옥자’를 빼면 대화가 이뤄지지 않을 정도다.
‘옥자’의 봉준호 감독은 지난 19일 영화가 첫 공개된 이후 쏟아지는 인터뷰 요청에 진땀을 뺐다.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인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옥자’를 겨냥해 “극장 개봉하지 않는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받는다는 건 모순”이라고 말했다가 번복한 해프닝이 되려 호재로 작용하는 분위기다. ‘옥자’는 미국에서는 소수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이며, 프랑스 극장에서는 아예 상영을 못 할 처지다. 극장과 온라인 동시 공개라는 넷플릭스의 영업 전략이 기존 극장 생태계를 위협한다는 극장업계의 반발이 워낙 강해서다.
칸을 찾은 전찬일 영화평론가는 “심사위원장의 말실수에 가까운 발언 이후 각국 영화인들은 ‘(최고상인)황금종려상은 아니어도 다른 상은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다”며 “그만큼 영화가 좋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옥자’는 제작비 5,000만달러(563억원)를 들이고 틸다 스윈튼과 제이크 질렌할 등 할리우드 스타들을 캐스팅했다. 위화감을 조성할 만도 한데 영화 공개 뒤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슈퍼 돼지 옥자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 일침을 가하며 환호를 불러냈다. 전 평론가는 “봉 감독의 순수 창작물이라는 데 높은 점수를 주는 분위기”라며 “각본상이나 감독상을 기대해 볼 만하다”고 주장했다. 봉 감독은 영화 연출에 전혀 간섭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홍상수 감독과 그의 연인 김민희가 합작한 영화 ‘그후’에 대한 평가도 대체로 호의적이다. 프랑스 영화 전문매체 카오스레인스는 5점 만점에 4.66점이라는 이례적인 평점을 줬다. 불륜을 소재로 남녀의 엇갈린 사연을 그러낸 영화 내용은 홍 감독의 전작들과 큰 차이가 없다. 최용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그후’는 그간 홍 감독의 영화와 달리 블랙코미디가 가미돼 더 친근하게 다가온 작품”이라고 호평했다.
테러 공포와 70회를 자축하는 분위기가 엇갈리는 와중에 과연 올해가 칸영화제의 전환점이 될지 여부도 이목을 끌고 있다. 황금종려상 수상 주요 후보로는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해피 엔드’를 비롯해 여성 감독이 연출한 ‘더 비가일드’(소피아 코폴라), ‘히카리’(가와세 나오미), ‘유 워 네버 리얼리 히어’(린 램지)가 거론된다. 하네케는 황금종려상 3회 최초 수상에, 코폴라 등은 24년 만의 여성 감독 수상에 각각 도전한다.
칸=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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