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평화도구 돼달라”… 트럼프 “말씀 기억할 것”
평화 상징 메달-킹 목사 전집 선물도 교환
각종 현안을 놓고 대립각을 세웠던 프란치스코 교황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만남은 평화적(?)으로 끝났다. 30분간의 짧은 대면이었지만 “평화의 도구가 돼 달라”는 교황의 주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말씀을 기억하겠다”고 화답하는 등 시종일관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관계 개선 가능성을 열어놨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오전 바티칸 교황 관저인 사도궁전을 찾아 프란치스코 교황과 면담했다. 이탈리아는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에 이어 그의 세 번째 순방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검은색 양복 차림으로 교황을 만나자마자 “감사하다. 뵙게 돼 큰 영광”이라며 겸손한 자세를 취했다. 교황도 미소로 트럼프 대통령을 맞았다. 이어 두 사람은 교황의 개인 서재에서 30분 동안 통역만 대동한 채 비공개 회동을 갖고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교황청에 따르면 두 지도자는 중동 분쟁 상황을 언급하며 정치적 협상과 종교간 대화를 통한 평화 증진 방안 등을 논의했다.
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은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큰 딸 이방카, 사위 재러드 쿠슈너 등 동행한 가족과 미국 측 사절단을 교황에게 소개했다. 첫 순방국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아랍 여성들이 쓰는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던 멜라니아 여사는 이날은 검은색 드레스와 미사보를 입어 예를 갖췄다.
다소 어색했던 분위기는 교황의 농담으로 금세 웃음바다로 변했다. 교황이 트럼프의 큰 몸집을 빗대 “남편에게 어떤 음식을 주느냐, 포티카?”라고 묻자 멜라니아 여사는 웃음을 터뜨렸다. 포티카는 멜라니아의 모국인 슬로베니아에서 즐기는 고칼로리 케이크이다.
두 사람은 헤어지기 전 의미가 담긴 선물도 교환했다. 교황은 2015년 발간된 기후변화 및 환경보호 회칙 ‘찬미 받으소서’ 등 교황청 문서 3권과 신년평화 메시지, 올리브 나뭇가지가 그려진 메달을 트럼프에게 건넸다. 그러면서 “평화를 상징하는 올리브 나무처럼 평화의 도구가 돼 달라”고 당부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우리는 평화를 이용할 수 있다”고 답하면서 환경 회칙도 꼭 읽어 보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답례로 미국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저서 전집을 교황에게 선물했다. 또 “오늘 하신 말씀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교황청은 면담 보도자료를 내고 “프란치스코 교황과 트럼프 대통령은 생명과 종교ㆍ양심의 자유를 지키는 데 공동의 노력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교황과 회동 이후 트위터에 글을 올려 “교황 성하를 만난 것은 평생의 영광이다. 세계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단단한 마음을 갖고 교황청을 떠난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이날 만남은 기후변화와 멕시코 장벽 건설 등을 놓고 대립했던 두 사람의 전력 탓에 큰 관심을 모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년 전 기후변화 회칙을 공표하자 미 공화당 내에서는 “좌파 같다”는 비난이 일었고, 트럼프도 당내 기류에 동조해 파리 기후변화협정 탈퇴를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2월엔 당시 미 공화당 대선 경선 후보였던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계획을 밝히자 교황은 “다리 없이 벽만 세우려는 사람은 기독교도가 아니다”라고 비판했고, 트럼프도 “종교 지도자가 특정인의 믿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수치”라고 응수한 바 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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