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용녀는 왕성한 활동으로 눈길을 끄는 배우입니다. 영화 ‘여고괴담’(1998)에서 학생을 괴롭히는 여교사 역을 맡아 영화 연기를 시작한 뒤 ‘친절한 금자씨’(2005), ‘1번가의 기적’(2007), ‘곡성’(2016), ‘아가씨’(2016) 등에 출연했습니다. SBS ‘주군의 태양’, OCN ‘보이스’ ‘터널’ ‘나쁜 녀석들’ 등 드라마에서도 맹활약해왔습니다.
그런 와중에 눈에 띄는 이력이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 세 번 출연했습니다. ‘친절한 금자씨’를 인연으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아가씨’에도 등장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18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만난 이용녀는 “박 감독이 날 왜 계속 찾았는지 아직도 미스터리”라며 웃었습니다. ‘친절한 금자씨’를 촬영할 때 어수룩하게 행동해 다시는 안 부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음 작품에도 꾸준히 출연 섭외 연락이 왔다는 겁니다.
이용녀가 ‘친절한 금자씨’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그리 거창하지 않습니다. 연극판에서 ‘잘 나가던’ 이용녀는 영화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들어오는 섭외를 마다했습니다. 그러다 영화 스태프였던 학교 선배의 부탁으로 ‘여고괴담’에 출연했고,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의 ‘해피투게더’를 보며 마음을 굳혔습니다. “‘해피투게더’를 본 후 늘 외롭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사라지더군요. 세상에 나처럼 외로운 사람들이 많다는 걸 그 영화를 보고 알았어요. 고민을 달래고 행복감을 느끼고 나니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친절한 금자씨’ 캐스팅 오디션에 지원했습니다. 이용녀는 박 감독이 어떤 작품을 했는지도 모르는 영화 문외한이었다고 합니다. 기대도 안 했는데 지방 공연을 하는 도중 “영화 찍으러 올라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용녀는 납치범 백 선생(최민식)에게 살해당하는 어린이 재경의 엄마 역을 맡았습니다. 재경 엄마는 백 선생에게 복수하기 위해 폐교에 모인 피해자 학부모 사이에서 조용히 눈물만 흘립니다. 짧게 등장하는 역할이었지만 연기는 강렬했습니다.
당시 그는 액션, 컷과 같은 기본적인 촬영 용어도 몰라 박 감독의 지시를 이해하는 게 힘들었다고 합니다. 다른 배우들은 지시를 듣고 척척 움직이는데, 혼자만 뒤쳐지는 것 같아 위축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용녀는 “박 감독이 다른 이들이 듣지 못하게 몰래 다가와 알려주고 가더라”며 “배우 개개인에게 섬세한 배려를 할 줄 아는 감독”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린 막내 스태프와 후배 배우들이 있는 촬영 현장에서 이용녀가 면박을 듣고 민망해 할까봐 다른 이들의 귀를 피해 몰래 지적 사항을 전달했다는 겁니다.
영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박 감독이 아예 “이용녀를 생각하며 각본을 썼다”고 합니다. 제작진이 극중 인물과 이용녀의 캐릭터가 어울리지 않는다며 반대했지만, 박 감독이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박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용녀는 무시무시하다가도 어떤 때는 소녀 같다”며 “한 얼굴 안에 공존하기 힘든 매력이 다 들어있는 배우”라고 호평했습니다. 이용녀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12세 관람가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은 120세용이다. 대사마다 박 감독의 깊은 철학이 묻어난다”며 “이런 작품에 출연할 기회를 줘서 지금도 감사하다”고 전했습니다.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지만 두 사람은 사적으로 차 한 잔을 같이 마셔본 적이 없습니다. 이용녀는 그 이유를 “내 성격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평소 누군가에게 살갑게 굴지 못하는 성격이라 현장에서도 혼자 조용히 연기를 준비한다”며 “박 감독과는 영화가 끝나고 쫑파티 때나 만났다”고 밝혔습니다.
서먹하면서도 박 감독이 종종 이용녀를 찾는 이유는 뭘까요. 이용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생긴 건 표독스럽지만, 속은 다 비어있어요. 약간 엉뚱하고 허술하기도 하고요. 그런 제 이중적인 느낌을 독특하게 봐주신 것 같아요. 이제 절 안 부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이미 많은 걸 받아서 감사해요. 지금 차기작을 검토 중인데 이런 제 매력을 살릴 수 있는 역할로 돌아오겠습니다(웃음).”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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