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만남 속 “프랑스가 러시아의 유럽 안전망” 의미 부여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맞이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러시아 국영언론 러시아투데이(RT)와 스푸트니크를 “선전 기관”이라고 비판하는 등 ‘거침없는’ 외교를 이어갔다.
29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베르사유궁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두 대통령은 북한 핵 문제와 체첸 공화국의 성소수자 탄압 문제 등에 공동 대응하기로 합의했지만 시리아 내전 등에서는 양국의 입장차를 재확인했다. 다만 러시아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프랑수아 올랑드 전임 정권의 노선에서 벗어나 양국 간 대화의 물꼬를 튼 데에 의의를 둔다는 분석도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푸틴 대통령과 한 시간 남짓 “솔직하고 주제에 제약 없는” 회담을 진행한 후 기자회견에서 “RT와 스푸트니크는 언론이 아니라 선전 기관처럼 행동했다. 거짓말을 진지하게 유포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마크롱 대통령은 선거 기간 러시아 언론이 배포하는 ‘마크롱은 미국 금융가의 비밀 요원’이라거나 ‘비밀 동성 애인이 있다’는 식의 가짜 뉴스에 시달린 바 있다. 이들 언론은 마크롱 캠프 출입이 제한됐다.
반면 푸틴 대통령은 프랑스 대선 개입설을 부정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경쟁자인 마린 르펜 국민전선(FN) 후보를 만난 것도 “그 쪽에서 요청했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는 논리로 방어했다. 시리아 문제에서도 양국 정상은 충돌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정권의 화학무기 공격을 우려한 반면 푸틴 대통령은 이슬람국가(IS) 격퇴를 우선시했다.
두 정상의 첫 만남이 완전히 나쁘지만은 않았다. 서구와 러시아의 입장이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우크라이나 문제에 있어서 양측은 러시아ㆍ우크라이나ㆍ독일ㆍ프랑스가 참여하는 노르망디식 4자회담을 재개하는 데 뜻을 같이 했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3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이후 유럽연합(EU)과 러시아 사이 상호 제재를 유발한 바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최근 발생한 체첸공화국의 성소수자(LGBT) 인권 탄압 사건에 대해서도 “양측이 정기적으로 관련 문제를 확인하자고 합의했다”고 밝혔다. 체첸자치공화국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수백명을 집단수용소에 가두고 고문했다는 사실은 4월 러시아 신문이 공개하면서 국제사회에 논란이 된 바 있다. 양측의 합의에는 북한 핵ㆍ미사일 개발에 대해서도 공동 해결책을 찾자는 내용도 들어갔다.
이날 프랑스 언론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푸틴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의 악수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2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맞이해 손으로 ‘힘겨루기’를 벌인 터였다. 결과적으로 언론은 두 대통령의 악수를 “솔직하다” “강하다” “따뜻하다” 등의 수식어로 표현했다. 양국은 올해가 러시아-프랑스 외교 관계 수립 300주년임을 강조하며 역사적인 의미까지 부여했다.
정치전문 매거진 폴리티코유럽은 마크롱 정부가 러시아를 향해 ‘강성’ 노선을 걷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는 달리 러시아에 대화의 통로를 열려는 것으로 분석했다. 한 대통령 보좌관은 “선거를 앞둔 독일과 달리 우리는 선거를 막 끝낸 시점”이라며 “러시아가 유럽에서 고립됐다는 느낌을 주면 아시아 동맹에 지나치게 쏠리게 된다. 우리가 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알렉산드르 오를로프 주프랑스 러시아대사도 국영 리아노보스티통신에 “양국 관계의 새로운 출발점”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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