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에게는 암컷과 수컷이 있고 사람에게는 여자와 남자가 있다. 수컷은 암컷과 짝짓기 하기 위해 공작처럼 과도한 장식 날개를 가지고서 매일 목숨을 건 생활을 하거나 박치기라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래 봤자 지구에 살고 있는 수컷 가운데 96%는 암컷 옆에 가보지도 못하고 죽는다. 선택은 수컷이 아니라 암컷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인간은 대부분 짝짓기에 성공하는 운을 갖고 태어났다. 하지만 짝짓기에 이르기까지 온갖 갈등과 번민의 나날을 보내는 것은 마찬가지다.
왜 복잡하게 암컷과 수컷이 존재하는 것일까? ‘수컷들의 육아분투기’를 쓴 일본 과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는 암컷과 수컷이 같이 있으면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재미야말로 자연사에서 암컷과 수컷이 생겨난 이유다.
지구의 나이는 46억 살, 이 가운데 생명의 역사는 38억 년이다. 생명체는 등장한 이래로 오로지 모두 자기 복제만 했다. 후손이 어미와 똑같았다. 모든 생명체는 암컷이었던 셈이다. 암컷에서 수컷이 갈라선 때는 불과 10억 년 전의 일이다. 이때부터 유성생식을 시작한다. 유성생식의 가장 큰 장점은 서로 다른 개체의 유전자가 섞인다는 것. 유전자가 교환되면서 생명이 다양해진다. 환경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개체가 남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니까 암컷과 수컷, 남자와 여자가 존재하는 이유는 유전자를 섞기 위해서다. 유전자를 섞기 위해서 준비하는 과정과 섞는 과정이 재미있는 것이다.
유성생식이 등장한 후에도 여전히 처녀생식을 즐기는 생명들도 많다. 바퀴벌레도 그 가운데 하나다. 바퀴벌레는 수컷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알을 낳을 수 있다. 수컷과 만나는 귀찮고 복잡한 과정을 생략했으므로 번식의 효율이 더 높다. 하지만 후손의 유전자가 다양하지 못하다. 위기가 닥치면 몰살할 수 있다.
역시 유성생식이 좀 귀찮고 복잡하기는 해도 후손에게 좋다. 그런데 섞인 유전자를 잘 품었다가 세상에 내놓는 존재는 암컷이다. 이때 수컷이 하는 역할이라고는 유전자가 들어있는 정자를 제공하는 것이 전부. 즉 수컷은 암컷이 유전자를 다양하게 변화시키는 데 필요한 도구일 뿐이라는 것이다. 아, 슬프다!
하지만 생명과 기계가 다른 점이 무엇인가? 스스로 개척하는 능력이 있다. 수컷들은 “나는 이 세상에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제법 생각이 있는 수컷들이 찾은 답은 육아다. 육아가 언제 처음 등장했는지는 모호하다. 확실한 것은 적어도 공룡들은 알을 품고 육아를 했다는 것. 그들의 특성이 현재 살고 있는 1만 종의 공룡, 즉 새에게 그대로 남아 있다. 알은 비록 암컷이 낳지만 수컷도 육아에 거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때로는 암컷의 역할을 빼앗은 수컷도 있다. 황제펭귄은 영하 60도의 혹한 속에서 4개월간 먹지도 않으면서 알을 품는다. 이것도 육아의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서식하는 새인 에뮤는 수컷 혼자서 육아를 한다. 암컷은 알을 낳고는 사라진다. 수컷은 8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서 알을 품는다. 그리고 18개월 동안이나 계속되는 육아를 혼자 담당한다. 번식기에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알을 품고, 알에서 병아리가 부화하면 새끼들을 데리고 방랑하는 나날들, 그것이 수컷 에뮤의 삶이다. 여자들의 독박육아와 비슷한 양상이다. 물론 인간 여자들은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육아는 강한 생명만 할 수 있다. 임신 중이나 출산 후에 포식자가 나타나더라도 그들에게 저항하거나 피신할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해야 한다. 특히 포식자에게 늘 쫓기는 초식동물 수컷은 육아를 꿈도 꾸지 못한다. 다만 강한 육식 포유동물은 육아에 참여할 수 있다. 포유류 수컷이 육아에 참여한다는 것은 곧 강한 존재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현재 생태계에서 최고 포식자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인간 수컷, 즉 남자들은 어떠한가? 거의 참여하지 못 하고 있다. 지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배우 앤 해서웨이는 UN 연설회장에서 세계적인 배우인 자신마저도 다른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일과 가정이란 두 가지 갈림길에서 불안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가장 큰 문제는 육아! 현대 사회에서의 육아는 ‘독박육아’라는 말이 회자될 만큼 여성에게만 지워진 부담이다. 독박육아는 저출산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대한민국의 현재 합계 출산율은 1.17명. 이 출산율이 유지된다면 2016년 약 5,000만 명이었던 대한민국의 인구는 약 120년 후에는 1,000만 명으로 급속히 줄어든다. 그리고 2300년이 되면 대한민국은 사실상 소멸단계에 들어가게 된다. 인구절벽에 매달려 인류 최초로 소멸 위기에 놓인 대한민국에게는 그 탈출법이 간절히 필요한 상황이다. 그 첫 단계는 아빠들을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이다. 개인의 희생과 결단을 요구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사회적인 제도와 배려가 필요하다.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싸워야 한다. 남자는 강하다. 남자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존재한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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