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레이스 데뷔 경기의 처참한 결과에 자존심이 상했다. ‘처음인데 완주한 것만으로도 잘했다”는 지인들의 위로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스스로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을 자책하며 경기 후 일주일을 넋 나간 사람처럼 지냈다. 보다 못한 팀장이 물었다.
“너 이거 왜 하는 거야?”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기록과 성적에만 집착한 나머지 근본적인 목적을 잊고 있었으니. 새삼 되돌아본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을까. 레이스에서 1등 하려고?” 분명 아니다. 아마추어 레이스에 도전한다고 선언했던 첫 기사로 되돌아가 봤다.
“이제 카레이서를 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는 나이는 훌쩍 지났지만, 삶의 즐거움이 되고 한층 강렬한 취미가 될 수는 있지 않을까? 그리고 카 레이서가 되는 길을 몰라서, 그저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부모님에게 치여서, 갑자기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서, 그렇게 꺼내지도 못한 채 꿈을 접은 사람이 과연 나 하나뿐일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고군분투’를 보고 용기를 내는 나 같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생겨난다면, 그래서 국내 모터스포츠 판이 커지게 되면 한층 많은 새내기가 카레이서를 꿈꾸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스스로 아마추어 카 레이스에 참가해 모든 과정을 생생한 기사로 한층 전하고 싶은 이유다.”
답은 첫 기사에 있었다. 모터스포츠를 좋아하지만 어떻게 시작할지 몰라 망설이는 이들에게 함께 하자고 손 내밀고 싶어서였다. 시작 전에는 ‘고군분투’할 줄 알았지만, 막상 뛰어들어 도전하니 함께 응원하고 도와주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모터스포츠를 같이 즐기자’는 처음 목표를 향해서는 순항 중이다.
남보다 못하면 안 된다는 알량한 자존심. 이게 오히려 원래 목적을 갉아먹고 있었다. 내게 운전에 남다른 재능이 없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포기하겠다는 것도 남보다 뒤처져도 괜찮다는 건 아니다. 재능이 없다면 더 오랜 시간 꾸준히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거다. 무슨 일이든 재능 있고 잘 하는 사람만 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사실 재능이란 건, 시작할 때 남보다 쉽게 잘한다고 있는 게 아니다. 실력을 쌓아가는 과정을 즐길 수 있다면 타고난 재능은 뛰어넘을 수 있다. 무슨 일이든 가장 큰 재능은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2전 경기 분석
개막전까지는 수동 운전이 익숙하지 않아 변속 실수가 잦았다. 코너 과진입으로 인한 언더스티어 현상도 심했다. 스스로 기록이 안나오는 원인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굳이 못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것 없이 혼자 연습해서 수동에 익숙해지기만 하면 된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문제는 2라운드 전 충분히 연습할 시간이 없다는 것. 어쩔 수 없이 다른 아마추어 드라이버들은 쓰기 어려운 ‘치트키’를 쓰기로 했다. 평소 가깝게 지내는 프로 카레이서, 오일기 선수에게 조언을 구했다.
오일기 선수에게 지난 개막전 주행 영상을 보여주자, 서킷 운전의 기초부터 놓치고 있는 부분까지 맞춤형 조언이 쏟아졌다. 연습할 시간이 없다는 것만 걱정하고 있었는데, 오일기 선수의 설명을 듣고 난 후, 무작정 혼자 연습만했으면 헛수고 할 뻔 했다는 생각에 섬칫했을 정도다. 틀린 방법으로 애쓸 뻔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코너 진입 전 브레이크 강도, 다운 시프트와 스티어링 시점이 잘못되어 일어난 결과를 경험 부족에서만 찾으러 한 것이었다.
#19일 금요일
공식 연습 주행 하루 전, 스피디움으로 향했다. 액션캠 비교 기사에 들어갈 영상을 촬영하느라 한 세션도 제대로 타기는 힘들었지만, 오일기 선수에게 들은 조언을 떠올리며 한코너 한코너를 공략했다. 특히 항상 변속이 울컥거리고 언더스티어가 발생하던 헤어핀 구간. 오일기 선수의 설명대로 과감하게 브레이크를 밟고 속도를 충분히 줄인 후 다운시프트, 그리고 스티어링. ‘그래, 이거다!!’ 기록은 줄지 않았지만, 헤어핀 구간을 억지스럽지 않게 통과한다는 것 만으로 만족스러웠다. 오전 내내 인천에서 인제 스피디움으로 달려오자마자 촬영때문에 바로 스포츠 주행에 들어갔고, 이후 기온 계속 오르는데 스파크는 쉴 틈 없이 계속 서킷을 달려야 했다. 기록이 안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 20일 토요일. 슈퍼챌린지 2라운드 공식 연습 주행일
아침 9시, 스파크 첫 연습 주행 세션이 열렸다. 아직 날이 더워지기 전, 기온은 적당했고 스파크도 밤새 충분히 쉬었다. 기록 단축에 욕심이 났다. 오일기 선수의 조언을 다시 잘 떠올리며 서킷을 달렸다. 헤어핀 구간도 제법 자연스럽게 달렸고 다른 코너들도 주춤거림 없이 제법 잘 달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록은 2분 21초. 전보다 1초 이상 줄어든 기록이긴 하지만 같은 클래스에서 기록이 2분 20초를 넘는 선수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2분 15초 이내. 도대체 뭘 잘못하고 있어서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걸까?
걸리는 게 두 가지 있었다. 1번 코너 진입 전 직선구간에서 후미권의 다른 차들도 150km/h까지는 올라간다는데, 내 경주차는 140km/h를 못 넘긴다. 20번 코너 이후로 200m 정도 후면 바로 140km/h까지 속도가 올라가는데 마치 고정된 것처럼 이 이상으로 올라가지를 않았다. 다른 선수들에게 물어보니 내가 마지막 코너 탈출을 잘 못해서 그럴 거라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하나 더, 2단에서 3단 올릴 때 속도가 순간 훅 줄어든다.
다른 선수에게 내 경주차를 타봐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거라면, 어떻게 개선해야하는 건지 알고 싶었다. 레이스몰 유영선 선수가 고맙게도 선뜻 나서줬다. 바로 다음 세션 스포츠 주행 티켓을 끊고 들어갔다.
유영선 선수도 직선 구간에서 140km/h를 못 넘었다. 분명 마지막 코너 탈출은 나보다 더 과감했고 문제는 없어보였다. 2단에서 3단 변속 시 ‘주춤’하는 느낌이 드는 것 역시 같았다. 유영선 선수의 기록은 2분 20초 1. 조수석에 한 사람이 더 타고 있다는 점과 가장 더운 시간에 달렸다는 핸디캡은 있었다. 불과 두 달전, 수동 운전 연습용 투스카니를 사서 3주만에 무작정 스피디움 서킷에 들어갔을 때 내 기록은 2분 29초였다. 같은 날 유영선 선수가 시범삼아 내 투스카니로 나를 옆에 태우고 주행한 기록은 2분 14초대. 2달 전 같은 차 같은 날 같은 서킷에서 기록 차이가 15초 나던 선수와 이제 불과 1-2초 차이로 좁혀진 거다. 경주차 상태와 상관없이 스스로 꽤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행히’ 밑빠진 독에 물 붓기는 아니었구나’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작년 슈퍼챌린지 슈퍼 스파크 챔피언인 이인용 선수에게도 내 경주차를 봐달라고 부탁했다. 이인용 선수는 내 경주차의 회전수가 유난히 안오른다며, 같은 구간에서 다른 스파크 경주차들은 3단까지 올라가는데 내 경주차는 2단을 못 넘긴다고 했다.
# 21일 일요일. 슈퍼챌린지 2라운드 당일
7시 반부터 메디컬 체크가 진행됐다. 기록 측정을 위해 폰더를 빌리고, 8시 20분부터 드라이버 브리핑이 진행됐다. 9시 40분. 슈퍼 스파크 예선 시작이다. 경주차가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 의욕이 줄어들긴 했지만, 확실한 건 아니다. 지금 낼 수 있는 최고의 기록은 뽑아보자고 생각하고 열심히 달렸다. 기록은 전보다 1초 줄은 2분20초3. 예선에 참가한 26명 중 24등이다.
오후 2시 20분. 슈퍼 스파크 클래스 결승 시작이다. 예선에서 경주차 다섯대의 기술 규정 위반이 적발되어 그리드 위치가 바뀌었다. 24번에서 20번 그리드로 상승. 맨 뒤에서 홀로 달리다 앞에 보이는 한두대를 따라잡던 개막전과 달리 이번에는 정말 다른 경주차 사이에서 출발하게 됐다.
스타트 신호에 맞춰 출발은 제 때 했는데, 2단으로 변속이 늦었다. 결국 스타트에서만 3대, 1번에서 4번 헤어핀까지 이어지는 구간에서 또다시 3대가 나를 추월했다. 이건 명백하게 실수가 아니라 운전을 못한 탓이다. 1랩이 지나자 꼴찌가 되어 있었다. 2랩 4번째 헤어핀에서 한 대를 추월했지만, 쫓아가던 앞 차와 추돌할 것 같아 속도를 조금 줄였더니 금새 뒤차가 바짝 다가왔다. 결국 14번 코너에서 다시 추월 당했다. 레코드라인에만 익숙해서 추월은 쉽지 않았다. 앞차를 따라 잡을만하면 부딪힐 것 같아 다시 속도 줄이고는 했다.
2랩 마지막 코너 탈출 시 언더스티어가 발생하면서 바깥쪽으로 밀려나는 걸 막으려다 오버스티어로 이 경주차가 스핀하려는 걸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잡아냈다. 분명 탈출 속도는 늦어졌지만 스핀할 뻔한 걸 살려냈다는 생각에 조금 들떴다.
4랩. “나도 진짜 막탄다 막타” 앞뒤에 다른 경주차들을 신경쓰며 달려서일까. 뒤차는 신경 쓰이고 앞차는 멀어지고. 레코드 라인을 벗어나기 시작한 지 오래다. 심지어 트랙을 벗어나 흙까지 튀겨가며 타기 시작했다. 그러다 17번 헤어핀 코너에서 브레이킹 포인트를 지나쳐 결국 언더스티어. “1초를 욕심냈더니 2초를 가져간다는 게 이거구나!”
5랩, 5-6번 연속 코너 구간에서 스핀해 트랙을 가로로 막고 있는 경주차 발견하고 급히 피했다. 아차, 바깥쪽으로 라인을 잡은 덕에 뒤따라 오던 차가 코너 안쪽으로 돌며 추월해갔다. “사고나는 거 보다 낫다고 생각하자, 그럼그럼” 혼잣말로 스스로 위로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앞서가는 경주차를 바짝 뒤쫓다 17번 헤어핀 코너에서 충돌할 뻔. 또 속도를 급히 더 줄였다. “아 그냥 갖다 박을 걸 그랬나? 아니야 내가 잘 못피하는 거야 내가 피하는 재주가 없나보다.”
그렇게 열심히 충돌을 피했는데 결국 7랩 4번 헤어핀 코너에서 받혔다. 뒤쫓아 오던 차가 코너 안쪽으로 파고 들다 그 차의 앞 범퍼와 내 경주차 오른쪽 뒷문이 살짝 접촉한 것. 아까 5-6번 코너에서 스핀해 트랙을 가로막고 있던 그 차다. “나랑 악연인 거 같다”
8랩 진입을 직전 메인 스트리트에 사고 가 있다며 피트로 붙어 진행하라는 무전이 들려왔다. ”사고없는데?” 메인 스트리트는 아무 문제 없었다.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 계속 주의하며 달렸다. 안보이는데서 갑자기 튀어나올까봐. 주저하며 달리다 결국 17번 헤어핀에서 추월당했다. 아까 뒤에서 나를 쳤던 그 차에게.
결과는 26명 중 24등. 한 대는 패널티를 받아 내 뒤로 밀렸다. 경기 결과로는 한 대만 앞선 것. 경기 중 내 뒤에 있던 차들은 스핀 때문이었고 그 중 한 대는 스핀을 하고도 나를 추월해갔다.
맨 뒤에서 줄곧 달리다 단 한번이지만 추월하는 기분을 느꼈던 개막전과 달리 2라운드는 다른 차들에게 계속 추월 당하는 굴욕을 맛봤다. 경주차 안에 설치했던 카메라 영상을 되돌려보니, 경주차의 성능 탓을 했던 곳도 운전자의 미숙함 때문인 것 같고, 충분히 더 밀어붙일 수 있었는데 일찍 빠지는 모습이 영 아쉬웠다.
다음 경기인 엑스타 슈퍼챌린지 3라운드는 70여일 뒤인 7월 30일에 열린다. 2달이 넘는 기간 동안 경주차도 운전 실력도 잘 정비해 심기일전 할 예정이다.
박혜연 기자 heye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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