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고향 뒷동산에 소를 먹이러 갈 때면 삐비라는 꽃대를 빼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다 가끔 착각해 억새 꽃대를 뽑으면 실망하기도 했다. 그 시절 먹었던 삐비의 맛은 약간 달짝지근하면서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우러나 껌을 씹는 듯했다. 그래서 그것을 자연이 주는 껌이라고 불렀다. 이렇듯 어린 시절의 추억인 삐비를 사람들은 삘기라고 부른다는 것을 최근에 알았다. 원래 다년생 풀인 띠의 어린 꽃대를 삘기라고 부른다. 요즘 인터넷상에서 삘기 꽃의 황홀한 풍경이 자주 올라온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있는 수섬을 찾았다. 한때 바다였던 이곳은 간척되면서 언제부터인가 광활한 대지 위에 삘기 꽃들이 피어난다. 지금 제철을 맞아 꽃을 활짝 열고 찾아온 이들을 반기며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특히 일출과 일몰의 태양 빛이 삘기 꽃에 반사되면 주변을 한 순간에 붉게 물들인다. 바람에 몸을 싣고 흔들리는 모습은 태양을 품은 파도를 닮았다. 눈앞에서 황량한 간척지가 옛 바다의 풍경으로 재현되는 기적이 펼쳐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가슴 아픈 소식이 들려온다. 곧 이곳에도 개발이라는 광풍이 도래할 것이라고 한다. 돌아가는 길 곳곳에도 트럭들이 움직이고 현수막들이 나부끼며 변화를 알리는 사인들이 즐비하다. 갑자기 내 마음속 추억의 한 자락을 잃어버리는 듯 허전함이 밀려온다. 6월 초면 삘기 꽃은 질 것이다. 허전한 마음을 애써서 달래며 기원해본다. 부디 끈질긴 생명력으로 이 찬란한 아름다움을 오래오래 보여 주길.
멀티미디어부 차장 king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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