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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사는 50억 땅부자, 행방불명 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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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사는 50억 땅부자, 행방불명 된 까닭은

입력
2017.06.05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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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안기부가 나를 해쳐”소란

조현병 증상 약점 노린 사기범

몰래 혼인 신고ㆍ토지 명의 이전

땅 팔고 정신병원 강제 입원시켜

“행색은 저래도 50억대 땅부자래.”

2014년 12월, 부동산 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정모(45)씨 귀가 번쩍 뜨였다. 사업을 하면서 알게 된 서울 양재동 토박이 박모(57)씨가 지나가듯 한 말이었지만, 그 말이 정씨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정씨는 그 때부터 50억대 땅부자, A(67)씨를 주의 깊게 보기 시작했다. 한 때 사업가였던 A씨는 1990년대 초반부터 양재동에 터를 잡고 살아왔다. 빌딩숲 한 가운데 자리잡은 공터에 주차장을 운영하고, 그 한 편에 마련해 놓은 컨테이너박스가 집이었다. 식사도 빵으로 해결하는 게 대부분,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과도 거의 만나지 않은 채 혼자 지냈다. 그런 그가 주차장을 포함한 땅 303㎡(35억원 상당)와 강동구 성내동 231㎡(15억원 상당) 크기의 땅을 가지고 있다는 걸 정씨는 듣고도 믿기질 않았다. 하지만 A씨가 재력가라는 사실은, 양재동 내 이미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정씨가 특히 눈여겨본 부분은 A씨 건강상태였다. 사업체를 부도로 날려버리고 남은 돈을 탈탈 털어 산 것이 지금 토지들. 그러나 갑작스런 사업실패는 그에게 조현병(정신분열증)을 남겼다. 가끔 “안기부(현 국가정보원)가 나를 해칠 것 같다”면서 소란을 피우는 모습도 주민들에게 여러 번 목격됐다.

마침내 정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혼자 살고 있으니 토지를 처분하거나 행방이 묘연해져도 관심을 둘 만한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2015년 1월, 먼저 지인 김모(61·여)씨를 끌어들였다. “범행을 도와주면 빌라는 사주겠다”는 약속을 한 뒤, 김씨를 A씨에게 접근시켜 A씨 몰래 혼인신고를 했다. 준비를 끝낸 정씨 일당은 같은 달 컨테이너박스로 쳐들어가 “안기부 직원”이라면서 A씨를 협박하고 구슬려 인감증명 등 토지 관련 서류를 받아 챙겼다. 반항할 기미가 보이면 전기충격기 등으로 폭행을 가하기도 했다.

이후 A씨 토지는 모두 정씨 회사로 명의가 이전됐고, 2월(양재동 토지)과 4월(성내동 토지)를 바로 매매가 됐다. 세금을 제하고도 30억원 가량이 일당의 손으로 들어갔다. 정씨 등은 범행을 숨기기 위해 A씨를 충북 청주시 등 지방 모텔에 7개월 간 감금하다가 2015년 말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을 시켰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정씨 일당 4명을 특수감금 및 특수강도 등 혐의로 구속하고, 공범 박씨 등 4명을 불구속입건했다고 4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가 토지매매 후 갑자기 행방불명 됐다는 첩보가 들어와 수사에 착수했다”며 “피해자는 아직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고 토지가 팔린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상태”라고 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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