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K리그 제주 유나이티드는 지난 달 31일 일본 J리그 우라와 레즈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원정에서 0-3으로 패하며 1,2차전 합계 2-3으로 탈락했다. 연장 후반 막판 양 팀 선수들이 신경전을 벌였는데 벤치에서 대기하던 제주 선수가 그라운드로 뛰어 들어가 60여m를 질주한 뒤 우라와 선수를 팔꿈치로 가격해 퇴장 당했다. 경기 후 또 다른 제주 선수는 라커룸으로 도망가는 상대 선수를 뒤따라갔다. 일본 언론은 ‘공포의 술래잡기’ ‘전대미문의 폭거’라며 비난하고 있다.
있어서는 안 될 그라운드 폭력도 문제지만 제주의 대응에 더 눈살이 찌푸려진다. 제주는 “상대가 손가락 욕설을 했다” “우리 벤치에 물을 뿌렸다“ ”3-0을 의미하는 손가락을 3개 펼쳐 조롱했다“며 상대 도발이 먼저였다고 항변하고 있다. 여기에 일부 팬들도 ‘우라와가 자극했으니 응징이 맞다’고 동조한다. ‘쪽XX 도발에 물러서지 말자’는 인종차별 발언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2013년 6월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카를로스 케이로스(64) 이란 대표팀 감독은 1-0으로 한국을 이긴 뒤 최강희(58) 감독에게 주먹 감자를 날렸다. 그 때 최 감독이 도발을 감행한 케이로스 감독을 한 대 쥐어박았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2015년 2월 태국 킹스 컵에서 우즈베키스탄 선수는 한국 심상민(24)을 향해 복싱을 하듯 세 차례나 주먹을 휘둘렀다. 영국 데일리미러는 “이게 축구인가, 마상 창 게임(말을 타고 서로를 창으로 찌르는 경기)인가”라고 일갈했다. 카타르 프로축구 레퀴야 남태희(26)는 그 해 5월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알 나스르(사우디)를 상대로 3-1 승리를 이끈 뒤 라커룸으로 들어가다가 뒤에서 달려든 상대 선수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남태희가 1골 1도움에 페널티킥까지 얻으며 맹활약을 펼친 것에 대한 분풀이였다.
AFC는 경기감독관 보고서를 토대로 앞으로 징계 절차를 진행한다. 이 경우 통상 제주는 가해 구단, 우라와는 피해 구단으로 구분된다. AFC는 가해자 입장인 제주에게도 충분히 소명 기회를 줄 것으로 보이지만 상대가 도발했다는 증거 영상 등이 얼마나 정상 참작의 사유가 될지는 의문이다.
사실 우라와 팬들은 평소 극우적인 성향으로 악명이 높다. 2014년 우라와로 이적한 재일동포 4세 이충성(일본명 리 다다나리)을 겨냥해 경기장에 ‘JAPANESE ONLY’라는 현수막을 걸었다가 구단이 징계를 받았다. 전범기인 ‘욱일기‘ 사용으로도 자주 도마에 오른다.
한국 축구가 피해를 봤을 때는 ‘그라운드 폭력은 엄벌에 처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가해자가 되니 ‘도발이 있었다’고 이중잣대를 들이밀면 안 된다. 온정주의를 버리고 제주 사태를 냉정하게 봐야 평소 우라와 행태도 떳떳하게 비판할 수 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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