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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피해자에 등급을 매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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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피해자에 등급을 매기지 마세요”

입력
2017.06.0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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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단계 경증이라는 이유로

피해자 판정 기준서 배제돼

그들 중 사망자∙중환자 많아”

절절한 사연∙눈물 어린 호소에

대통령∙여당 “진상 규명” 화답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관계자들이 5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 광장에서 문재인 대통령께 보내는 편지발표를 한 뒤 문 대통령의 가면을 쓰고 피해자를 위로하는 풍자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관계자들이 5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 광장에서 문재인 대통령께 보내는 편지발표를 한 뒤 문 대통령의 가면을 쓰고 피해자를 위로하는 풍자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다수가 현재 3, 4단계로 판정되는 걸 알고 계시는지요. 최초의 급성 질환 인정기준으로 등급을 정하지만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3, 4단계에서도 다수의 사망자와 중환자가 나옵니다. 경증이라는 이유로 판정 기준에서 배제됐지만 살균제의 피해를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릅니다.”(가습기 살균제 3차 피해자 이재성씨)

‘세계 환경의 날’인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 모임(가피모)’ 회원들이 모여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하는 편지를 낭독했다. 지나치게 보수적인 피해 지원 제도의 개선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피해를 입었음에도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절절했다.

이날 편지를 낭독한 김미란(42)씨의 부친 김명천씨는 2010년부터 5년간 7차례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투병 끝에 2015년 세상을 떠났다. 4년 가까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부친은 병원에서 ‘섬유화를 동반한 간질성 폐질환’ 진단을 받고 2013년 질병관리본부에 피해를 신고했다. 2016년 8월, 정부로부터 뒤늦게 받은 판정은 ‘관련성 거의 없음(4단계)’이었다. 사실상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폐가 굳어 숨을 쉴 수 없는 중증 환자와 똑같은 증상이었지만 등급을 가른 것은 ‘급성’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김씨는 “3, 4단계 섬유화 피해자들도 결국에는 양쪽 폐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기능을 상실한다”며 “엄격한 판정기준을 짓고 잘못된 판정을 한 결과 수많은 피해자가 피해자가 아닌 것이 됐다”고 울먹였다.

임신 31주였던 2005년 3월, 권민정씨는 갑자기 뱃속 아기의 신장이 하얗게 보인다는 판정을 받았고 병명을 알 수 없었다고 했다. 그렇게 밤톨이(태명)를 잃었다. 그리고 이듬해 말 또 다른 아이 동명이와 출산 4개월 만에 작별해야 했다. 권씨는 편지를 쓰는 순간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등급이라는 벽은 쉽게 피해자들에게 설명되지 않았고, 사회적 관심도 이제 이 문제를 떠나려 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게 된 김미향씨, 자신이 직접 피해를 당한 주부 김옥분씨 등도 이날 문 대통령 앞으로 쓴 편지를 낭독했다.

정부와 여당은 이들의 눈물 어린 호소에 즉각 화답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 주재 자리에서 “사과를 검토하겠다”고 했고,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가피모 관계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진상규명법안이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강찬호 가피모 대표는 대통령 발언이 전해진 뒤 “피해자들이 대통령 입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가뭄의 단비처럼 6년 만에 응어리진 가슴을 쓸어 내릴 수 있어 다행”이라며 “곧 구체적인 대책이 나올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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