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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저녁을 찾아서] 야근 또 야근… 제발 집에 좀 보내주오

입력
2017.06.0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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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가장 바라는 복지는 ‘시간’

최우선 근무환경 설문 1위는

“상사 눈치 안 보는 정시퇴근”

행복, 정신적 만족 원하는 세대

한국사회 성장논리 더는 안먹혀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조사 결과 직장인들이 가장 바라는 복리후생 제도는 교통비 지원도, 자사 제품 할인도 아닌 '휴식'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조사 결과 직장인들이 가장 바라는 복리후생 제도는 교통비 지원도, 자사 제품 할인도 아닌 '휴식'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취업도 연애도 내 집 장만도 버거운 시대, 젊은 직장인들이 회사에 가장 바라는 복지는 무엇일까. 넉넉한 교통비 지원, 파격적 사원 할인, 자기개발비 지급, 고용안정? 모두 정답이 아니다. 가장 큰 염원은 바로 ‘내 시간’을 되돌려 받는 일이다. 만성적 야근, 일의 연장이라는 접대와 회식, 심지어 업무를 마쳐도 상사 눈치를 보느라 자리를 못 뜨는 사내 문화, 직원의 출산과 육아엔 관심이 없는 인력구조 등으로 인해 ‘야근 좀비’로 살고 있는 이 시대 직장인들은 아우성친다. “나, 집에 갈래!”

첫째도 시간, 둘째도 시간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4월 전국 17개 시도 19~49세 직장인 남녀 7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19~34세 직장인이 가장 바라는 ‘기업의 복리후생 제도’(복수응답) 1위는 출산 및 육아지원제도(육아휴직, 어린이집 운영 등)였다. 응답자의 41.3%가 이 같은 복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2위는 39.5%가 선택한 유연한 근태제도(탄력근무제, 출퇴근 시간선택제 등)였고, 3위는 안식월 등 장기근속 지원제도(안식연월, 장기근속자 포상휴가 등)로 25.6%가 택했다. 하나같이 일과 가정의 양립을 가능하게 할 ‘시간’에 대한 요구였다.

보다 연령이 높은 35~49세 직장인 역시 최대 관심사는 휴식, 여가였다. 1위가 안식월 등 장기근속 지원제도(37.3%), 2위가 유연한 근태제도(36.5%)였다. 다만 출산기를 지난 만큼 출산육아 지원(22.4%)보다 의료건강 지원(27.7%)과 주거 지원(27.5%)에 대한 요구가 앞섰다. 두 그룹 모두 자기개발비 지원, 교통비 지원, 자회자 제품 할인 등의 물질적 보상을 원한다는 응답은 20% 이하 또는 한 자릿수에 그쳤다.

또 가장 선호하는 근무환경으로는 두 그룹에서 모두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는 퇴근문화’가 64.8%(19~34세), 55.5%(35~49세)로 압도적 1위로 꼽혔다. 2위는 역시 ‘유연한 출퇴근 시간 조절’로 34.7%(19~34세), 28.5%(35~49세)의 응답을 기록했다.

3_2017-06-08(한국일보)
3_2017-06-08(한국일보)

보상 없는 장시간 노동 왜?

세계 최장 노동과 함께 고도성장을 이룬 우리나라 노동자들에게서 개인 삶과 여가에 대한 욕구가 폭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반작용이다. 가장이 회사에 헌신하고 전업주부가 육아를 전담하며 조직에서의 성공으로 이를 보상받던 시절은 과거가 됐다. 맞벌이가 대세이나 육아부담은 여전하고 경제적 보상도 크지 않은 게 지금의 현실이다.

취업 후 결혼과 출산, 육아의 문턱에 진입하는 19~34세 직장인, 특히 여성들에게 ‘내 삶을 돌볼 시간’은 복지이기에 앞서 경력을 유지하느냐 단절하느냐를 좌우할 결정적 요인이다. 입사 9년 차 직장맘 박현지(34ㆍ가명)씨는 “계획에 없는 야근이 잦다 보니, 오후 7시 반에 퇴근하도록 돼 있는 아이돌보미에게 늦게까지 있어 달라고 부탁하느라 늘 죄인 같은 심정”이라며 “그저 지금 포기하면 다시 정규직 일자리를 구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버티고 있을 뿐”이라고 토로했다. 아이돌보미에게 추가근로 시간당 1만원씩 챙겨 주는 박씨는 “야근을 한다고 회사에서 수당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보니 열심히 일할수록 돈도, 시간도 손해를 보는 이상한 구조”라고 말했다. 시간부족이 가처분 소득의 감소로, 소득 감소가 다시 시간부족으로, 돌고 도는 악순환이다.

최근에는 스마트기기의 발달로 퇴근 이후 돌발노동까지, 상황이 더 악화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5년 전국 17개 시도 제조업 및 주요 서비스 업종 근로자 2,40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중 70.3%가 업무시간 이외 또는 휴일에 스마트기기로 업무를 처리했다고 응답했다. 이렇게 추가로 일한 시간이 주당 11시간이 넘었지만 따로 보상은 없었다. 이 때문에 근로자들은 ‘수면’(44%), ‘여가, 문화 및 교제’(20.9%), ‘가사 활동’(18.6%)을 줄여야 했다.

성장논리 안 먹히는 요즘 직장인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가 돌연사, 성인병을 유발하는 등 건강 위협 경고등은 켜진 지도, 외면하고 산 지도 오래다. 평일에는 무조건 야근, 주말에도 걸핏하면 출근하는 게 일상인 15년 차 직장인 최상현(42ㆍ가명)씨는 “육아휴직이나 안식년월을 써서 가족과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헛된 희망을 품어보지만, 어쩌다 칼퇴근을 하고 주말에 쉬더라도 탈진상태로 뻗어 있기 일쑤”라며 체념했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주당 근무시간이 61시간 이상이면 40시간 이하의 경우보다 심혈관질환 위험이 약 2배가 높다는 등의 연구 결과가 수두룩한데 불법적인 장기간 근무를 하지 않으면 과로사로 인정되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진수 대학내일20대연구소장은 “그동안 한국 사회가 지향했던 성장중심주의, 기업을 위해 직원의 희생을 강요하는 문화에 대해 가족으로부터의 행복, 정신적 만족을 추구하는 세대가 충돌하는 국면”이라고 진단했다. 평생직장 개념이 무너진 것도 이에 영향을 미쳤다. 최상현씨는 “선배들은 ‘사회생활 다 그렇다’, ‘직장이야말로 공동운명체’라는 논리로 회사에 헌신하는 삶에 명분을 부여했지만, 지금은 그게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자신도 아빠 없는 걸 당연시하는 유치원생 딸을 보고 깊은 회의에 빠졌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아빠가 집에 있기만 해도 이렇게 좋아하는데, 아이 크는 것도 못 보면서 ‘내가 이러려고 고생해 돈을 버나’ 싶은 생각이 잦다”고 했다. 직장인들이 중시하는 가치는 급속히 변하고 있지만 기업의 근무환경은 정체돼 있는 셈이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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