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순옥 전 국회의원(소상공인연구원 이사장ㆍ전태일 열사 동생)
30년 전 6월 이한열 열사 추모 행사 후 명동성당에서 모두 11명이 전두환 퇴진을 위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여성은 한 명이었고 나였다. 단식 3일째가 되던 날 민통련(민주통일민주운동연합)과 그 외 시민 단체들이 단식을 끝내고 투쟁 대오를 하나로 결집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나는 단식을 계속하자고 설득 했다. 내 생각은 적중했고 5일째부터 변화가 일어났다. 명동에서 근무하는 은행원 등 소위 넥타이 부대가 응원에 나섰고, 남대문 시장 상인들이 속옷과 물을 들고 단식농성장으로 찾아왔다.
매일 점심시간 성당 정문에서 시민들과 전두환 퇴진 집회를 이어갔다. 명동에서 시작한 불씨가 서울 전역으로 번지면서 11일 단식을 마무리했다. 단식 해산을 결정하고 성당을 나서는 순간 수배자가 되었지만 일주일 정도 후 6ㆍ29 선언과 함께 자유를 맞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애국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모든 것”이라고 하셨던 것처럼, 이제 이념을 넘어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이 함께 손잡고 더 좋은 미래를 위해 나가 것이 민주항쟁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9년 만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기념행사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됐다. 민주화 정신을 잘 계승해 후대에 올바른 역사를 남길 수 있기를 소망한다.
단병호 전 민주노총ㆍ전노협 위원장(평등사회노동교육원 대표ㆍ전 국회의원)
1987년 국민들은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40년 동안 국민 위에 군림하며 인권과 민주주의를 유린한 독재정권의 시대를 종식시켰다. 그리고 민주적 사회로 나가는 길에 이정표를 세웠다. 그러나 항쟁의 완성은 아니었다.
2016~17년 국민들은 다시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왔다. 그리고 부도덕하고 무능한 박근혜 정권을 몰아냈다. 촛불항쟁은 정의롭고 공평한 그리고 민주주의를 넘어 진보로 나갈 수 있는 또 한 번의 길을 열었다.
민주주의는 87년 항쟁과 촛불항쟁을 잇는 가교이다. 이 두 번의 항쟁을 시민혁명으로 완성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이다. 그리고 그 시민혁명은 인류가 오랜 세월 추구해 왔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고 추구해야 할 ‘자유로운 노동’과 ‘평등한 삶’이라는 가치를 실현할 때 완성될 것이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416연대 공동대표)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과정은 두려움에 짓눌렸던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그 동안 가슴에만 묻어두고 끙끙 앓던 이들이 입을 열어 국가범죄를 증언했다. 이 나라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학살과 억울한 죽음들에 대한 해원 작업은 이명박 정권 이후 중단되었다.
30년 뒤, 다시 나라가 억울한 일을 당한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틀어막으려는 꼴을 보았다. 그러자 국민들이 일어나 촛불을 들었다. 이제 국가범죄로 억울한 일을 겪는 이들이 없도록, 억울한 이들의 말이 폭력으로 막히지 않기를,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높은 하늘에 오르지 않아도 되고 자신의 목숨을 걸지 않도록… 두려움 없이 자신의 말을 할 수 있고 그들의 말을 들어줄 나라가 필요하다. 국민이 비명을 지르기 전에 국민의 아픔을 알아서 먼저 해결하는 그런 나라를 상상해본다.
박종철 열사 형 종부씨
종철이는 참 착하고 어른스러웠다. 집이 멀리 이사를 가면서 국민학교에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싫은 소리 한 번 안 했다.
1학년 때 통학 중 버스 바퀴에 깔려 발이 퉁퉁 부었는데도 학교에 나가던 대견한 동생이기도 했다.
종철이가 떠난 지 벌써 30년이다. 우리 사회가 1987년에 절차적 민주화를 이뤘다지만, 민주주의의 내용은 얼마나 채워졌을까? 소득격차와 실업률이 재난 수준인, 못 사는 사람은 지지리도 못 살고, 잘 사는 사람은 돈에 파묻히는 그런 사회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이 보편적 복지를 앞세워 빈부격차 문제를 잘 풀어나가길 기대한다.
당시도, 그 이후도 경찰이 국민 편에 서서 일하는 모습은 잘 못 봤다. 새 정부에서는 그래도 좀 나아지리라 믿고 싶다. 블랙리스트 같은 것 없고, 못 사는 사람들이 희망 가질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오기를 소망한다.
안유 당시 영등포교도소 보도계장(전 서울교정청장)
당시 마음속엔 정권에 대한 분노가 컸지만, 민주주의를 억압한 ‘가해자’ 정부 쪽에서 일하는 공무원 신분으로 나서기가 어려웠다. 교도소 직원으로서 잡혀온 많은 학생들을 가혹하게 다루기도 했지만 박종철 고문치사 축소 은폐 사건은 묵과하기 어려웠다.
이후 민주주의 본질이 훼손되고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걸 보며 초조하고 불안한 30년을 보냈다. 나를 종북이니 좌빨이니 하는 프레임으로 몰아붙여 백안시(白眼視)하는 시대적 분위기 때문에 자랑하듯 (이런 일을 했다고) 마음 놓고 얘기할 수 없었다.
6ㆍ10민주항쟁을 겪고도 미완이던 민주주의는 지난해 말 촛불집회에서 주권재민이 실현되고 국민도 이를 피부로 느끼면서 완성됐다. 국민의 열망을 이뤄낸 정권 교체는 30년간 실현된 가장 중요한 가치다. 정의ㆍ공평ㆍ언론의 자유 등 헌법에 있는 모든 가치가 존중 받는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지난 30년간 민주화가 상당히 진행됐다. 국민의 발언할 권리와 언론의 자유가 신장돼 누구도 두려움 없이 정치적 생각을 말할 수 있고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도 자유롭다. 심지어 대통령을 평화적으로 탄핵한 사례를 전세계에 보여줬다. 양당제로 극심한 대립이 있었는데, 다당제가 정착하는 현상도 보여서 바람직하다.
다만 각 분야에서 지나치게 많은 권한이 쏠리는 중앙집권적 유산은 극복할 과제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롯해, 법원은 대법원장에게, 검찰은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에게 권한이 쏠려있는 실정이다. 또 정치와 권력이 사회에서 너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사회 경제 문화 등 분야에 골고루 힘이 나눠지고 해당 분야의 사람들이 존경 받으며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빈부격차는 과거나 지금이나 거의 나아진 것이 없고 오히려 더 심해졌는데 속히 개선되길 바란다.
성낙인 서울대 총장
87년 민주항쟁 당시 화두는 직선제 쟁취였다. 직선제는 빼앗긴 국민주권을 되찾고자 하는 국민적 저항운동의 결과물이자, 시대정신의 발로였다. 대통령 단임제는 장기집권의 폐해를 종식시키기 위한 국민운동을 통해 가능했다.
세 번의 평화적 정권교체는 한국적 민주주의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하지만 제왕적 대통령은 현대판 ‘공화적 군주’로 군림한다. 민주화의 상징이던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조차도 임기 말 부패스캔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87년 체제의 과제는 분명하다. 승자독식 구도로는 더 이상 한국적 민주주의가 진일보할 수 없다. ‘나눔의 미학’을 구현할 수 있는 권력구조 재정립도 시급하다. 세계화 지방화 정보화 시대의 화두를 담을 수 있는 국가백년대계로서 헌법, 국민의 살아있는 경전으로서 헌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승준 고려대 총학생회장
마침 6ㆍ10민주항쟁 30주년이 되는 올해, 촛불집회의 결실로 새 정권을 맞게 됐다. 당시 민주항쟁이 없었다면 우리 세대가 이뤄낸 촛불집회 동력도 없었을 것이다. 촛불집회를 겪으며, 민주시민의 소명을 다시 한 번 새길 수 있었다.
학내에선 최근 당시 고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이인영 의원 등 선배들과 대화를 나누는 토크콘서트가 있었다. ”경찰에 잡혀가면 어떻게 될지 몰라 두렵기도 했다”는 선배들 얘기에 2017년 현재의 집회문화가 얼마나 평화로워졌고, 대중화됐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선배들의 노력과 희생을 가슴 깊이 새기겠다.
학생들은 여전히 학내민주주의에 목말라 있다. 대학사회는 기성사회보다 더 공정한 사회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학생들 입지는 그리 튼튼하지 못하다. 정권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어가는 만큼 더 개선될 것이라 믿고 싶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
민주항쟁을 통해 장기집권과 독재세력을 몰아내고 평화적 정권교체가 가능해졌다. 민주주의 형식은 갖춰졌지만 책임정치와 민주의식은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3김으로 대표되는 시대는 끝났지만 이제는 계보정치와 진영논리가 국회를 흔들고 있다. 이는 정치권의 집단 이기주의를 초래하고 기득권에 늪에 빠뜨린다. 국회가 겉돌고 있다는 말이다. 모범을 보여야 할 국회에서부터 토론과 대화, 협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더 이상 불행한 대통령이 나오지 않기 위해서라도 개헌을 해야 한다. 역대 대통령이 웃으며 청와대를 나온 적이 없다. 5년 단임제의 함정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더 이상 공공의 영역이 사적으로 휘둘려선 안 된다. 공화국의 개념에는 공공의 것이라는 의미도 포함된다. 관료와 정치권 등 책임 있는 사람들이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
인명진(목사ㆍ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대변인)
30년 전엔 대통령을 국민들 손으로 직접 뽑게 되면 민주주의가 완성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과제가 많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어떤 정권에서든 권력을 가진 이들을 지켜보는 국민들이 잠시만 방심하면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과정을 꾸준히 경험해 왔다. 예컨대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는 유신시대로 돌아가려는 시도였고, 권력자들은 언론을 끝없이 장악하려 한다. 가난한 이들의 삶은 30년이 지났어도 나아졌다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국민들에 의해 민주주의는 계속해서 발전하는 과정에 있다. 권력의 분산을 통해 발전된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야 한다. 대통령과 의회 권력, 사법과 검찰권력의 힘을 견제하고 지방분권을 이뤄야 한다. 부의 재분배도 무엇보다 당면해 있는 과제다. 그런 의미에서 6ㆍ10 항쟁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필요하다.
김정환 (시인ㆍ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사무국장, 민중문화운동연합 의장,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의장)
30년 전을 떠올리면 지난해 촛불집회는 심심한 면이 있었다. 심심했다는 건 훨씬 좋아졌다는 거다. 4ㆍ19와 6ㆍ10의 참상과 비교하면 지금은 의사 표현만으로 대통령을 탄핵하는 시대가 됐으니 이 나라 민주주의가 한 발 성숙했음을 부인할 순 없겠다. 그러나 옛날을 돌아보는 순간 망한다. 촛불에서 탄핵으로 이어진 최근 상황을 두고 누군가는 결말, 누군가는 시작이라고 한다. 나는 또 다른 시작이기를 바란다. 독재 타도라는 옛 구호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의 민주주의를 구상해야 할 때다. 소통과 협치에 있어서 한국 민주주의는 여전히 낙후 상태다. 저마다 제 목소리를 높이는 게 민주주의가 아닌데 SNS를 보면 더 나은 의견을 만들고자 하는 목표 없이 자기 의견만 떠든다. 여기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데 제대로 하지 못했다. 30년 전의 우리는 다 이룬 줄 알았다. 민주화가 완성됐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끝은 없다. 만드는 데 30년이 걸려도 퇴보하는 데는 1년도 안 걸린다. 30년 전의 기억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박태순 (소설가ㆍ자유실천문인협의회 발기인)
1960년 4ㆍ19, 1970년 전태일 분신, 1980년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 1987년 6월 항쟁이라는 ‘30년 전쟁’을 통해 시민사회가 경제근대화의 결실, 사회민주화를 일상생활 속에서 누려볼 자격을 취득했다. 하지만 성숙된 시민사회의 대전환에 성공했는지는 의문이다. 6월 항쟁을 성공한 민주화 운동처럼 기념하지 않았으면 한다. 가장 초보적인 민주주의를 이뤘지만, 10년 뒤인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경제 독점의 시대, 국제 자본 폭력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 땅의 지도자들은 6월 항쟁을 기념할 능력도 자격도 없다. 여전히 정치 독재, 경제 독점, 문화 독선의 세 가지 독이 한국 역사를 망가뜨리고 있다. 6월 항쟁에 낙관적 의미를 부여할 게 아니라 비관적으로 ‘3포 세대’의 탈출구를 고민해야 한다.
박상훈(정치발전소 학교장)
6월 항쟁의 성과는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종식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민주주의 운동의 패턴을 만들어냈다는데 있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졌을 때 유럽식 체제혁명이 아니라, 민주적 규범에 기반해 중산층과 민중이 결합해 저항하는 패턴이다. 다만 ‘민주정부’만 생각하다 보니 이 민주정부를 어떻게 활용할 지에 대한 고민이 얕았다. 민주화는 됐다는데 젊은이들은 취업이 어렵고 노인들은 가난하고, 불평등과 이에 따른 모멸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정부라는 공공재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잘 활용할 것이냐를 두고 대통령, 정치인, 국민 모두가 심사숙고 할 때다. 그 작업이 성공한다면 6월 항쟁에 이어 문재인 정부는 한국 민주주의의 두 번째 모멘텀으로 기억될 것이다.
법안스님(금선사 주지ㆍ국가인권위원회 위원)
당시 재야 활동을 하는 출가자이자 동국대 불교학과 3학년생이었다. 정의와 진실은 승리한다는 신념을 움켜쥐고 거리로 나갔다. 고통 받는 민중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민중과 함께 하는 것 자체가 순수한 수행이라고 생각했다. 언제 체포될지 몰라 불안했다. 나를 전담하는 형사까지 있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를 향한 숭고한 정신을 민중과 함께 나눈 것이 자랑스럽다. 30년 전으로 돌아가도 선택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6월 항쟁은 절반도 성공하지 못했다. 대통령 직선제를 성취하고 사회의 어둠을 조금 밝혔을 뿐 충분히, 힘껏 진보하지 못했다. 인권, 자유, 노동, 남북관계 등에서 진보하는 시늉만 한 정도다. 정치인의 책임이 가장 크다. 언론과 재벌, 관료를 비롯한 기득권 세력도 못지 않다. 이제라도 국민이 보다 단단하게 결속해야 한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민주화 이후 지난 30년 간 ‘87년 체제’는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한 단계 도약시켰지만 그 사이 우리 경제가 구조적으로 크게 진일보했다고 보긴 어렵다.
“기업이 투자를 많이 해야 경제가 성장한다”는 자본 중심의 성장 패러다임이 굳건했기 때문이다. 이제 ‘2017년 체제’를 다시 만들 수 있다면 자본이 아닌 사람을 우대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경제의 양대 생산요소인 자본과 노동 가운데 자본은 그간 각종 우대정책으로 이미 ‘과잉 축적’된 상태다. 반면 노동은 여전히 ‘과소 축적’이다. 자본이 넘쳐 국내 투자를 꺼리는 기업은 그래서 자본이 적고 노동이 넘쳐나는 외국으로 나가는 것이다. 앞으로 경제 정책은 사람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노동의 생산성(기술수준)을 높여 자본과 노동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자연스레 기업 투자도 살아나고, 경제도 성장할 것이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민주화는 외형적 민주화와 실질적 민주화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외형적 민주화는 통치자를 자유선거로 선출한다는 의미, 즉 독재 없는 정치를 뜻하는데 이는 30년 전 1987년 6ㆍ10 항쟁으로 촉발됐다.
하지만 국민이 진정으로 주인이 되는 실질적 민주화는 아직 달성됐다고 보기 어렵다. 실질적 민주화의 핵심은 생존권과 참정권의 민주화다. 생존권 민주화는 재벌과 고소득층 등 기득권의 경제 독점을 막고, 국민 대중이 성장의 과실 분배에 참여하는 걸 의미한다. 참정권 민주화는 특정 지역ㆍ계층 기득권에 의한 권력 독점 없이 온 국민이 국정에 참여하는 정치다. 지난 촛불민심은 이런 생존권과 참정권 민주화를 외치는 소리였다. 앞으로 한국 민주주의는 특권과 기득권 계층에 의한 과두지배에서 벗어나 국민ㆍ서민 대중을 위한 정치ㆍ문화ㆍ경제ㆍ사회 구축을 향해 나가야 한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수가 참여하는 ‘참여 민주주의’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의 참여 민주주의는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 같아 우려된다.
민주주의에서 대중의 참여만 너무 강조되면 자칫 정책의 질이 나빠질 수 있다. 일반 대중은 자기 이해와 관련이 없는 사안엔 ‘합리적으로 무관심’하고, 이해가 걸리면 ‘불합리한 편견’에 빠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방치하면 각종 정책, 특히 경제 정책이 공정하고 올바른 방향에서 벗어나 왜곡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공익을 대변하는 다양한 전문가 집단의 숙의와 검증 등으로 보완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 이른바 ‘문자폭탄’으로 대변되는 대규모 집단행동은 자칫 표현의 자유 자체를 억압하는 횡포와 협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이 합리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문화가 조성돼야 우리 민주주의가 더 발전할 수 있다.
이민화 KAIST 초빙교수(전 메디슨 회장)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대한민국의 추격 전략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국가는 산업과 기업을 선택하여 지원과 규제를 하고, 대기업은 갑을 문화로 중소기업을 이끌고 수출 전선에 매진했다.
그러나 추격 전략에서 확립된 사전 규제와 실패에 대한 징벌은 이제 산업 혁신을 가로막는 최대의 걸림돌이다. 실패를 없애려는 사전규제는 혁신 산업을 도태시킨다. 기업가 정신에 바탕을 둔 벤처 창업이 국가 발전의 핵심 대안이다. 대기업과 벤처의 선순환을 이끄는 인수합병(M&A)의 활성화가 절실하다. 또한 분배 구조가 혁신되지 않으면 국가의 지속가능성에도 한계가 드러난다. 혁신이 없는 수익을 억제하고, 개방사회를 지향해 국가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국민 참여의 디지털 거버넌스가 요구된다. 차별화된 미래 역량을 위해 우리의 역사와 정체성 정립이 필요하다.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
1970~80년대 급격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경험한 대한민국은 새로운 도전 앞에 서있다. 지난 30년간 압축성장 과정에서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해 작동했던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의 유효기간이 지났기 때문이다.
거대 자본과 브랜드파워를 가진 대기업은 우월적 직위를 남용하여 중소기업형 업종은 물론 소상공인 영역까지 침범했다. 동반성장의 윤활유였던 낙수효과는 사라졌고 시장은 편향되게 기울어졌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개혁이 요구된다. 그 동안 국민경제의 근간이자 일자리 창출의 원천이고, 생산주체로서 내수를 견인해 온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경제구조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이를 통해 혁신을 통한 성장, 일자리 중심의 성장을 이끌어야 한다.
중소벤처기업부 신설,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제도 도입 등 새 정부의 중소기업정책에 기대를 걸어본다.
홍세화 바이로봇 공동창업자
기본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온전한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30년 전 6ㆍ10항쟁과 최근 촛불혁명으로 표출돼 소중한 결실을 맺었다.
특정 기득권층을 상대로 싸우는 일반 대중들은 정보의 불균형 때문에 매우 불리한 위치에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은 정보의 균형을 통해 비로소 지켜나갈 수 있다.
이번 촛불혁명은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의 발전으로 정보의 유통이 쉬워졌다. 특권층에게 집중됐던 정보가 일반 국민에게 자연스럽게 이동하면서 정보를 통한 권력 또한 본 주인에게 돌아가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자유로운 사고와 실험활동을 기반으로 한다. 많은 스타트업, 벤처기업들이 좋은 기술과 아이디어로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있는 지금, 기존의 관행이나 관련 제도의 부재 등을 이유로 이들의 비상을 막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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