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스캔들 전면 부인
“충성 맹세 요구하지 않아”
‘스모킹 건 없다’ 판단한 듯
제임스 코미 전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수사 외압 등 폭로 공세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본격적인 반격을 시작했다. 자신의 결백을 ‘선서 하에 증언할 수 있다’는 초강수를 던지며 탄핵 위기론에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상원 청문회에서 나온 ‘러시아 스캔들’ 관련 코미 전 FBI 국장의 폭로는 거짓이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수사중단을 요청하고 충성을 요구했다는 코미 전 국장의 증언이 사실이냐’는 질문에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며 “나는 그(코미)를 거의 알지도 못하고 충성맹세를 요구하지도 않았다”고 반박했다. 특히 기자가 ‘당신의 의견을 선서 아래 밝힐 수 있겠냐’고 묻자 “100% 그렇다. 내가 방금 한 말을 그(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에게 그대로 말하겠다”고 말해 특검 수사까지 자청했다. 그는 11일 트위터를 통해서도 “코미의 정보유출은 매우 비겁한 것”이라며 맹공을 이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신감 넘치는 반격에 최측근 인사들도 가세했다. 백악관 외부에 조직된 러시아 스캔들 특별 대응팀의 수장 격인 코리 루언다우스키 전 선대본부장은 10일 폭스뉴스에 출연해 코미를 “책을 팔려고 나선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코미 전 국장이 이번 의혹과 관련해 1,000만달러 상당의 출판 계약을 맺었다는 영국 데일리메일 보도를 언급, 코미가 사익을 위해 국가 근간을 흔드는 ‘딥스테이트(숨은 권력집단)’라고 주장했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 등 공화당 지도부도 ‘트럼프가 경험 부족으로 무례한 행동을 했을 수 있어도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다’는 주장으로 선회했다.
트럼프 측이 내비치는 자신감의 저변에는 대통령 탄핵 사유인 사법방해죄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판단이 깔려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코미 전 국장이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를 기록한 메모를 의회에 제출하긴 했으나, 그의 관점에서 작성된 자료일 뿐 승부를 가릴만한 ‘스모킹 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CNN방송은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은 범법 행위가 아니라는 점을 확신했거나 객관적 증거가 없다는 계산이 섰다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결국 둘의 대화를 담은 녹음 테이프가 존재하지 않는 한 트럼프 대통령의 법정행은 불가능하며 탄핵 추진 여부는 의회로 공이 넘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화당 다수의 상ㆍ하원에서 탄핵소추안 통과는 요원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진실공방의 남은 변수는 녹음 파일의 존재 여부와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 등 연관 인물들의 증언으로 추려진다. 세르게이 키슬랴크 주미 러시아 대사와의 잦은 접촉으로 러시아 연계 의혹을 받고 있는 세션스 장관은 13일 상원 정보위 청문회에 선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히려 이번 위기를 기회 삼아 대선 공약 이행을 밀어붙이는 모습이다. 그는 16일 마이애미를 방문해 버락 오바마 정부 때 맺은 쿠바와의 국교정상화 협정 대부분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할 예정이다. 내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이 열리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첫 공식 만남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스캔들’을 양국 정상이 부인할 수 있는 자리인 점을 감안하면 궁지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만남을 적극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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