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집회 현장에 살수차 배치 안 할 것”
유족들 “진정성 없는 원격사과”
이철성 경찰청장이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에 대해 16일 공식 사과했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백씨가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지 1년7개월만, 서울대병원이 백씨 사망원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수정한 지 하루만이다.
이 청장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사에서 열린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 모두발언에서 “2015년 집회시위 과정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고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께 깊은 애도와 함께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한 뒤 90도로 고개를 숙였다. 경찰 총수가 경찰 조직을 대표해 백씨 사건에 대해 사과한 건 처음이다.
이어 이 청장은 “앞으로 경찰은 일반 집회시위 현장에 살수차를 배치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사용 요건도 최대한 엄격히 제한하고 이런 내용을 대통령령으로 법제화해 철저히 지켜나가겠다”는 다짐도 따랐다. “경찰의 과도한 공권력으로 국민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이제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경찰의 공식 사과는 그간 행보와는 사뭇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백씨 사건 진상규명을 공약으로 내건데다, 경찰에 대한 인권 개선 요구와 서울대병원의 사망원인 수정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청장은 지난해 9월만 해도 “지금까지 법원 판결에 의하면 (백씨가 쓰러진) 그날 공무집행은 적법하다고 보고 있다”는 입장이었다.
책임자 처벌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유족과 시민단체가 강신명 전 경찰청장 등 7명을 살인미수 등 혐의로 고발했지만 검찰은 1년 반이 넘도록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이날 검찰은 “지난해 12월 강신명 전 청장을 상대로 서면조사를 한 바 있다”라며 “추가 수사 여부 등은 아직 정해진 게 없다”고 밝혔다.
이날 이 청장 사과에 대해 백씨 큰딸 도라지씨는 “청장의 사과를 기사로 봤다. 뭘 잘못했다는 내용이 하나도 없고, 최소한 유족을 만나는 시도라도 해야 했는데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며 “오늘 청장의 사과는 진정성 없는 ‘원격 사과’”라고 꼬집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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