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늘어진 해변을 따라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로 활기가 넘치는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의 6월은 그야말로 ‘핫’하다. 올해 6월 9일은 중동ㆍ아시아에서 최대 규모로 알려진 ‘텔아비브 프라이드’가 열리는 날로 텔아비브 도심 전체에 무지개 깃발이 물결을 이뤘다. 약 20만명이 참가하는 텔아비브 프라이드 행진은 ‘중동 유일의 성소수자 친화 국가’를 자처하는 이스라엘의 자긍심이라고 할 수 있다.
새벽까지 축제 분위기가 이어진 가운데 행진 당일 중심 행렬에 장벽을 세우고 행진을 멈춰 서게 한 이들이 있었다. 바로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에 반대하는 시위대다. 핑크워싱은 팔레스타인 점령 등 추악한 현실과 논쟁을 젠더 평등의 상징인 분홍색으로 가리고 세탁하려는 전략을 뜻하는 용어다. 이스라엘의 경우 2006년 10월 정부와 민간 주도 하에 “해외에서 이스라엘의 이미지를 증진시키기 위해” ‘브랜드 이스라엘’ 캠페인을 개시했다. 시행 후 첫 2년 동안 400만달러(약 44억9,400만원)의 자금이 투입될 정도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이스라엘 측의 의도는 이ㆍ팔 분쟁을 벗어난 국가 브랜드 창출이었지만, 이를 달리 말하면 ‘민주적이고 다양성이 존중 되며, 표현의 자유와 창조적 문화를 가진 나라’라는 이미지로 점령 사실을 정당화, 은폐하는 정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핑크워싱 역시 성소수자 인권이 세계적 화두가 된 상황에 발 맞춰 브랜드 이스라엘의 일환으로 고안된 움직임이다.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이나 유대인 정착촌 등에 익숙하지 않은 북미와 유럽 사회의 자유주의자들에게 이스라엘이 그들과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전파, 동질감을 형성하기 위해 성소수자 인권을 이용하는 셈이다. 이러한 전략은 특히나 주변 아랍ㆍ이슬람 국가들의 이미지와 대조를 이루면서 이스라엘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지난해 텔아비브 프라이드에 참가한 외국인은 약 6만명. 2005년(6,000여명)과 비교하면 그동안 얼마나 많이 성장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프라이드에 모인 약 100여명의 무리는 이러한 핑크워싱에 반대하는 이들이다. 그중 20여명은 ‘점령에 자긍심은 없다(There’s no pride in occupation)’고 쓰인 분리장벽 모형을 들고 프라이드 행진을 막았다. 곧바로 경찰들과 몇몇 프라이드 참가자들이 활동가들을 밀어내면서 오래 지속되진 못했으나 이들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이번 행동을 기획한 ‘핑크워시 이스라엘(pinkwash.il)’의 활동가 노아는 “우리 (성소수자) 공동체의 투쟁을 이스라엘이 더 자유주의적으로 보이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이스라엘은 중동의 유일한 민주국가도 아니고 (팔레스타인 점령이 끝나지 않는 한) 심지어 민주국가라고 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이스라엘 활동가 타냐는 “성소수자들의 투쟁은 자유와 인권을 위한 더 큰 투쟁의 일부로, 팔레스타인 점령 등 구조적인 억압과 분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실제 교육ㆍ보건 등 성소수자 인권 증진에 필요한 지원은 도외시하면서 이러한 행사 홍보에는 막대한 세금을 퍼붓는 ‘보여주기’식 예산 안배도 서슴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는 외국인 프라이드 참가자들을 위해 ‘무지개 비행기’를 준비하는 등 홍보 활동에만 성소수자 사회에 지원하는 금액의 10배 가까운 예산을 책정했다.
팔레스타인 성소수자 단체들을 비롯한 팔레스타인 운동단체들은 텔아비브 프라이드 자체를 보이콧하고 있다. 참가하는 것 자체가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에 동조하는 행위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팔레스타인 성소수자 단체 알까우스는 “당신의 정체성, 몸, 자본이 팔레스타인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점령과 식민주의, 인종차별을 은폐하는 데 사용된다”며 전세계 성소수자 사회와 관광객에게 불참을 호소했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한 반대 행진 참가자도 “이스라엘 정부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있는 성소수자를 찾아내 협박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며 “팔레스타인 성소수자를 억압하면서 이스라엘이 마치 게이 국가인 것처럼 속일 수 없다”고 성토했다.
텔아비브=새라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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