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미사일 활동 중단하면
미 전략자산과 군사훈련 축소
사드 문제 해결 안된다고
동맹깨지면 그게 무슨 동맹이냐”
靑 “학자로서의 견해
정부 공식 입장 아니다” 선긋기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의 ‘한미합동군사훈련 축소’ 발언으로 이달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의 불안정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한미 간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문제를 둘러싼 이견이 노출된 가운데 문 특보가 북핵 문제 해법으로 양국 간 파열음을 키웠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문 특보의 사견이라고 선을 긋고 나섰지만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곤혹스럽기 그지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미국 워싱턴을 방문중인 문 특보는 16일(현지시간) 한국 동아시아재단과 미국 우드로윌슨센터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북한이 핵 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의 한반도 전략자산과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세미나 직후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문 특보는 학자로서의 견해임을 전제하며 “사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미동맹이 깨진다는 인식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게 무슨 동맹이냐”고도 했다.
문 특보의 발언은 북핵동결을 북핵해법의 1차적 목표로 둬야 한다는 것으로 문재인정부의 공약인 ‘선(先) 북핵동결, 후(後) 완전한 비핵화’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문 대통령 역시 대선 후보 시절인 4월27일 방송기자클럽 토론에서 “북한이 우선 핵을 동결하고 그것이 검증된다면 우리가 한미 간 군사훈련을 조정하고 축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최근 6ㆍ15 기념사에서도 “북한이 핵과 미사일 추가 도발을 중단하면 조건없이 대화에 나서겠다”고 했다.
그러나 문 특보가 발언한 구상은 미국의 입장과 상이하다는 점에서 당장 한미 간 이견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은 최근 들어 대북대화 가능성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면서도 핵동결을 전제로 한 대화에는 분명하게 거리를 두고 있다. 헤더 노이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15일(현지시간)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서는 먼저 비핵화가 되어야 한다”며 비핵화가 북핵 대화의 전제조건임을 재차 확인했다. 더욱이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22)가 최근 의식불명 상태로 석방되며 미국 내 대북 여론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문 특보의 구상이 북한을 상대로 한 제재는 불가피하지만 대화 역시 마냥 미룰 수 없다는 문재인 정부의 기본 입장을 대변한 것이긴 하지만 ‘비핵화 담보 조치가 없을 경우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방침과 상충된다는 지점도 부담이다. 문 특보의 구상은 도리어 한반도 비핵화 대화의 1차적 조치로 ‘북핵동결ㆍ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제시해온 중국의 입장과도 상당 부분 일치한다.
결국 문 특보는 정상회담을 코앞에 두고 대북 접근 방식에 대한 한미간 이견을 공개적으로 노출한 셈이 돼 버렸다. 이에 청와대는 “문 특보가 학자로서의 견해를 밝힌 것이며 정부 공식 입장은 아니다”면서 서둘러 선을 긋고 나섰다.
정치권은 물론 학계에서도 “한미 정상회담에서 다룰 동맹 현안이 산적한데 문 특보가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문제는 시기와 형식”이라며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대통령의 특보가 국제 세미나에서 사드에 이어 한미 간의 또 다른 민감 이슈를 건드린 것은 미국을 당혹하게 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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