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오밍 고교서 언론 비공개로 약 1시간 엄수…동창·시민 2천500명 참석
'혼수 상태' 웜비어 데려온 조셉윤, 文대통령 조전 전달…형제·친구 추도사
북한에 억류됐다가 의식불명 상태로 고향에 돌아왔지만 결국 엿새 만에 숨을 거둔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22)의 장례식이 22일(현지시간) 그의 모교에서 엄수됐다.
장례식장은 미 오하이오 주(州) 신시내티시 외곽에 있는 '와이오밍 고등학교' 강당에 마련됐다. 그의 이름과 졸업연도가 새겨진 붉은 벽돌 위에는 조화가 놓였다.
식장 앞에는 "우리 시즌의 피날레다. 위대한 쇼는 끝났지만 수백 개 새로운 후속편들이 바로 시작된다"는 문구가 내걸렸다. 지난 2013년 웜비어가 졸업생 대표로 연설한 축사의 일부다.
졸업생 대표에서 4년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웜비어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학창시절 친구들과 마을 주민 등의 추모행렬이 줄을 지었다. 현지 언론은 약 2천500명이 장례식장을 찾았다고 전했다.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시민장'으로 치러졌지만, 조촐한 장례를 원하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언론에는 공개되지 않았다.
장례식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 오전 9시부터 약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유대교 랍비인 '제이크 루빈'이 주관한 장례식에서는 웜비어의 형제들과 친구들이 추도사를 하면서 눈물바다를 이뤘다.
재학 시절 웜비어와 함께 축구팀에서 뛰었다는 동창은 첼로로 추모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웜비어 송환'에 주도적 역할을 맡았던 조셉 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웜비어의 부모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조전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셉 윤 특별대표는 장례식 일정 때문에 애초 이날로 예정됐던 북한 관련 미 상원 청문회까지 연기했다.
오하이오가 지역구인 롭 포트먼 상원의원(공화) 등 상·하원 의원들, 존 설리번 국무부 부장관 등 고위 인사도 장례식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포트먼 의원은 장례식이 치러지기 전 기자들과 만나 "이번 일로 악과 선, 사랑을 모두 들여다볼 수 있었다면 오늘은 우리가 웜비어와 유족들에 대한 넘치는 지지를 통해 선과 사랑을 보여주는 날"이라고 말했다.
웜비어의 석방을 위해 지난해 12월 뉴욕에서 북한 관리와 비밀 회동을 한 사실을 밝힌 바 있는 포트먼 의원은 이어 "이 학생은 처음부터 구금돼서는 안 됐다"며 북한 정권을 비판했다.
식장에는 웜비어가 재학 시절 축구팀에서 활약했던 사진과 북한에 가져갔던 유품 등도 전시됐다.
장례식을 마친 조문객들은 "웜비어가 왜 죽어야 했는지 모르겠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조문객들은 웜비어가 스포츠를 즐기는 등 매우 활달했고 호기심이 많은 학생으로 기억했다.
이 학교의 전직 상담사인 신시아 마이스는 웜비어를 지성과 성실함, 상냥함을 모두 갖춘 보기 드문 청년이었다며 "엄청난 일을 할 아이였기에 더욱 상실감이 크다"며 애도했다.
이웃 주민 낸시는 "장례식은 아주 차분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완벽하게 진행됐다"면서 "어린 시절부터 웜비어는 아주 따뜻한 아이였다"고 기억했다.
웜비어가 북한에 억류됐던 지난해 1월 당시 대학 3학년이었던 버지니아 주립대 동기 100여 명도 장례식장을 찾았다.
대학 동창인 오언 로빈슨은 "비극적인 사건이 없었다면 웜비어도 우리와 같이 이번에 졸업하고 사회진출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버지니아대도 이번 일로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전했다. 버지니아 주립대에서는 웜비어가 숨진 이튿날인 지난 20일 밤 학내에서 추모 집회를 열기도 했다.
장례식이 끝난 뒤 백파이프 연주자가 '고잉 홈'(Going Home)을 연주하는 가운데 웜비어의 관이 인근 스프링 그로브 묘지로 운구됐다.
장례식장에서 묘지로 가는 도로 주변에는 와이오밍 고등학교를 상징하는 흰색과 푸른색 리본이 곳곳에 내걸려 웜비어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운구 행렬과 마주친 주민들은 두 손을 모아 웜비어의 첫 글자인 'W'를 만들어 내보이며 애도를 표했다.
미국 버지니아 주립대 3학년이던 웜비어는 지난해 1월 관광차 방문한 북한 평양 양각도 호텔에서 정치 선전물을 훔치려 한 혐의로 체포됐으며, 같은 해 3월 체제전복 혐의로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17개월간 북한에 억류됐다가 미국과 북한의 오랜 교섭 끝에 지난 13일 혼수상태로 고향인 신시내티로 돌아온 웜비어는 병원에 입원한 지 엿새 만인 19일에 결국 숨을 거뒀다.
웜비어의 사망 소식은 미국인들을 충격과 분노에 빠뜨렸고, 미국 전역에서 며칠째 애도 물결이 이어졌다. 이날 장례식장에는 현지 언론을 비롯한 외신 기자 수십 명이 찾아 미국 내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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