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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속 예술로 일상의 감각을 깨우다

입력
2017.06.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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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스마이너스1도씨 운영진이 사무실 겸 공유공간인 청춘마루 마당에 섰다. 왼쪽부터 김지영, 유다원, 김세영씨. 류효진기자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운영진이 사무실 겸 공유공간인 청춘마루 마당에 섰다. 왼쪽부터 김지영, 유다원, 김세영씨. 류효진기자

서울 양천구 목2동은 목동 아파트 단지 옆에 낮게 들어앉은 키 작은 동네다. 1980년대 목동 신시가지 개발사업에서 제외되면서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골목을 따라 빌라와 원룸,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이 동네는 낡고 평범하지만 골목이 살아있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주민들 사이에는 소리 나는 대로 적은 애칭 ‘모기동’으로 통한다. 목2동이 모기동 마을공동체로 자리잡은 데는 청년 문화예술 단체 플러스마이너스1도씨가 큰 몫을 했다. 사람의 온도는 1도 올리고 지구 온도는 1도 낮추자는 뜻을 담은 이름이다. 올해로 8년째 목2동에서 활동하며 동네 문화발전소 역할을 해온 팀이다. 공공미술 활동을 해온 김지영(36) 유다원(37)씨와 이 동네 원주민 김세영(28)씨가 함께 운영하고 있다. 매년 가을 열리는 모기동마을축제를 비롯해 모기동마을학교, 협동조합 카페마을, 주택협동조합 뜨락 등 모기동 마을공동체를 이루는 여러 장면은 삶과 일과 놀이의 일치를 꿈꾸며 일상의 감각을 깨우는 마을 속 예술을 해온 이들의 활동이 바탕이 됐다.

시작은 카페였다. 김지영, 유다원씨가 2010년 목2동에 들어와 카페 숙영원을 열었다. 여러 동네에서 공공미술을 해 봤지만 참여 작가들이 프로젝트를 마치고 떠나면 그만인 것에 한계를 느낀 데다 지치기도 해서 살려고 들어 왔다. 거창한 일을 벌이려고 들어온 건 아닌데, 생계 수단으로 시작한 카페가 점차 주민들이 편하게 드나드는 사랑방 겸 문화공간이 되었다. 인문학 강의, 영화 상영, 소규모 인디 공연 등이 이어지면서 마을 만들기와 지속 가능한 대안적 삶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카페를 중심으로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네트워크가 생겼다.

2011년 목2동 골목길에서 열린 제1회 모기동마을축제.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제공
2011년 목2동 골목길에서 열린 제1회 모기동마을축제.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제공

2011년 ‘모기동 궁여지책’이라는 이름으로 첫 번째 마을축제를 열었다. 유다원씨는 “심심해 미칠 것 같아서 동네에서 뭐라도 해보자고 절박한 마음으로 한 행사”라고 설명했다. 카페와 마주보고 있는 마을 공방 ‘나무도예방’의 두 주인장과 의기 투합, 골목 100m 구간에 아트마켓, 벼룩시장, 먹거리장터, 작은 공연과 전시, 영화 상영 등으로 판을 벌였는데, 주민 호응이 대단했다. 골목은 시끌벅적 놀이터가 됐고, 주민들이 직접 만든 음식이나 작품, 버리기 아까운 안 쓰는 물건을 갖고 나와 벼룩시장에 참여하는 등 신나게 축제를 즐겼다.

축제를 계기로 마을이 살아났다. 작은 골목축제로 시작한 것이 지금은 2,000명이 참여하고 50명 이상이 함께 준비하는 행사가 됐다. 다른 동네에서 구경 올 만큼 재미있다고 소문이 났지만 주최자가 따로 없다. 온 동네가 나서서 치르기 때문이다. 기획부터 준비, 진행까지 전부 주민들이 해낸다. 모기동마을학교에 참여하고 있는 동네 초중고 3개 학교와 지역아동센터, 청소년문화공간, 녹색어머니회, 공동육아 모임 등이 봄부터 모여 머리를 맞대고 준비한다. 동네 아이들은 축제 현장 정리와 의자 배치 등 진행을 돕고 춤과 노래, 연주로 공연을 해서 실력을 뽐낸다. 플러스마이너스1도씨가 앞장서서 이끌지 않아도 잘 굴러갈 만큼 제대로 자리잡았다. 동네 아저씨, 이웃집 엄마, 동네 형과 누나, 학교 선생님과 학부모 등 모두가 주최자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열리는 문화행사 ‘모기동 별 헤는 밤’을 찾아 5월 31일 저녁 동네 사람들이 용왕산에 모였다.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제공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 열리는 문화행사 ‘모기동 별 헤는 밤’을 찾아 5월 31일 저녁 동네 사람들이 용왕산에 모였다.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제공

2015년 마을축제는 동네 뒷산인 용왕산에서 했다. 록 페스티벌 기분을 내보자고 잔디밭에 돗자리 깔고 텐트 치고 맥주 마시면서 놀았는데, 동네 초중고 학생 자원봉사자만 100명, 관객은 수천 명에 달했다. 2016년 축제는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과 30년 넘은 동네 목욕탕에서 열렸다. 내부 수리하느라 쉰 여름 닷새 동안 남탕과 여탕이 전시와 공연으로 북적댔다. 지난해 영진목욕탕 주인 가족은 직원들과 힘을 합쳐 직접 먹거리장터를 열고 주민자치위원회가 펴낸 지역역사기록집을 전시했다. 문 닫은 목욕탕을 작가들이 문화공간으로 바꾼 예는 있어도 영업 중인 목욕탕 주인이 축제 기획자로 데뷔한 것은 이 곳이 유일할 듯하다.

모기동 문화발전소의 출발지였던 카페 숙영원은 지난해부터 협동조합 카페마을로 바뀌어 동네 주민들이 운영하고 있다. 카페 주변에는 가죽공방, 도예공방, 케이크공방 등 손작업자 공방도 여럿 생겨 동네 풍경을 더 아기자기하게 바꾸고 있다.

축제를 하면서 드러나고 성장한 마을의 에너지는 동네의 문제를 주민 스스로 해결하고 더 나은 삶을 궁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카페에서 만난 이웃들끼리 집 없는 설움과 집세 걱정을 하다가 주거 문제를 함께 해결해보자고 시작한 공부 모임은 주택협동조합을 만들어 동네 4층 건물 ‘함께사는 집 뜨락’을 장만하는 결실을 맺었다. 지난해 6월 입주를 마쳐 20대에서 60대까지 세대를 아우른 일곱 가구가 한 집에 살고 있다. 지하 공용공간에서 수제맥주를 만들고 동네 사람들 불러 영화 보고 이러저런 모임도 하고, 공동 테라스에서 바비큐 파티도 하면서 집 걱정 없이 마음 편히 지낸다.

마을 방송 만들기에 도전한 '손바닥 라디오' 참가자들이 첫 공개방송을 앞두고 리허설을 하고 있다.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제공
마을 방송 만들기에 도전한 '손바닥 라디오' 참가자들이 첫 공개방송을 앞두고 리허설을 하고 있다.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제공

플러스마이너스1도씨가 올해 4월 시작한 교육 프로그램 ‘손바닥 라디오’는 우리 동네에도 마을 방송이 있으면 좋겠다는 주민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한동네 이웃 10여 명이 팟캐스트 제작에 도전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녹음과 편집, 업로드까지 할 수 있게 짠 11회 교육의 10회 차인 26일 카페마을에서 첫 공개 방송을 한다. 남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동네 공간을 알리는 15초 광고를 비롯해 각자 직접 대본을 쓰고 진행하는 총 일곱 꼭지를 준비했다. 교육 내용 중에는 ‘동네 불만지도’ 만들기도 있었다. 동네를 샅샅이 걸으며 사는 데 불편한 점을 찾아내 개선책을 제안하는 내용으로 ‘나도 할 말 있다’ 코너를 만들어 봤다. 일상을 깨우는 마을 속 예술을 추구하는 자세와 썩 어울리는 프로그램이다.

모기동마을학교는 마을공동체적 교육문화를 추구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이다. 학교와 마을이 함께만나 아이들과 어른들이 학교 안과 밖을 넘나들면서 마을에서 더불어 살기를 서로 돕는다. 학교의 방과후수업, 대안교실을 동네 곳곳 공간에서 동네 어른들이 마을 선생님이 되어 진행하기도 한다. 모기동마을학교 네트워크 일원인 아델의 청소년문화공간 청청청은 이 동네에 있는 마리아의 딸 수녀회가 수도원 지하 공간을 제공해서 운영한다. 아이들이 언제든지 와서 놀고 쉴 수 있는 곳으로, 드럼과 댄스 연습실도 갖춰 동네 아이들 사이에 예약 전쟁이 벌어지곤 한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모기동마을학교는 동네 고등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청소년 지역봉사단을 모집 중이다. 무슨 활동을 할지는 아이들 스스로 정한다. 동네 골목 청소를 할 수도 있고 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줄 수도 있고 동네 어르신들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드릴 수도 있다. 마을축제와 마찬가지로 마을학교도 이 동네에서는 어른이든 아이든 주민이 주체다.

모기동마을학교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주민들이 동네 카페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제공
모기동마을학교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주민들이 동네 카페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제공

올해 플러스마이너스1도씨는 골목에 있던 사무실 겸 작업장을 동네 뒷산으로 옮기면서 ‘모기동 별 헤는 밤’을 시작했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 동네 곳곳에서 다양한 문화 활동을 벌인다. 용왕산에 있는 빈 건물을 개조한 청춘마루에서 인문학 강의를 듣고, 협동조합 카페 마을에서 영화 보고, 밤에는 용왕산에 올라 공연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즐기는 행사다. 봄부터 가을까지 잡힌 일정 중 5월 첫 회에 이어 두 번째인 이달 별 헤는 밤은 28일 열린다. 이웃끼리 수다 떨고 예술 체험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자리다. 플러스마이너스1도씨의 새 공간인 청춘마루 공식 오픈을 겸해 열린 5월 별 헤는 밤은 200명 정도가 참여해 즐겼다.

모기동은 마을 만들기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그 중심에서 활동해온 플러스마이너스1도씨는 ‘모기동이 워낙 훌륭한 동네인 덕분’이라며 자신들은 ‘동네의 자원들을 연결하는 매개자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김세영씨는 “우리끼리는 까마귀 날자 배 떨어졌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했다. 축제를 통해 날았더니 그 열매들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동네의 숨은 자원을 찾아내고 엮어서 마을 에너지로 키운 주역은 플러스마이너스1도씨다. 유다원씨는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스스로 만들어가며 그것을 일로, 놀이로, 예술로 만들어가는 삶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삶터와 일터와 놀이터의 일치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모기동으로 이사 가고 싶어질 것 같다. 오미환기자 mh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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