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 현대車 X카 프로젝트
5단 변속ㆍ전륜구동 등 당시 최첨단
독자 모델 포니를 개발하며 한국자동차산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현대자동차는 후속 모델로 전륜구동(FF) 차를 목표로 세우고 X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전륜구동차는 엔진과 좌우 바퀴간 거리가 달라 동력전달 문제를 해결하기가 까다로워 당시로선 만들기 힘든 차였다.
1981년 10월 당시 정세영 사장은 기자 회견을 통해 85년까지 3,969억 원을 투자해 연 30만대 규모의 소형 승용차 공장을 건설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X카 프로젝트가 수면위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현대차는 이미 78년부터 FF카에 대한 자료수집을 시작하며 X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정 사장의 얘기대로 현대차는 85년 2월 6일 울산공장에서 소형 승용차 생산 공장 준공식을 했다. 포니 엑셀 공장이었다. 기존 연 15만대에 30만대를 추가해 총 45만대를 매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연 30만대 생산 규모를 갖춰야 독자생존이 가능하다는 게 당시 자동차 업계의 정설이었다.
2월 8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포니 엑셀의 신차발표회가 열렸다. 무대에 오른 정세영 회장은 “포니 엑셀은 우리의 정성과 기술이 집약된 수출 지향형 한국 고유모델로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전륜구동 방식을 채택한 첨단 기술의 최신형 승용차”라고 포니 엑셀을 소개했다. 차 이름은 이전 모델인 포니의 이름을 이어받아 ‘뛰어난 포니’라는 의미로 포니 엑셀로 명명했다. 이후 자연스럽게 포니를 빼고 엑셀로 자리 잡는다. 그해 6월에는 세단 스타일의 프레스토, 86년 9월 해치백 스포티가 추가되면서 X카 프로젝트는 완성된다.
포니 엑셀은 미쓰비시의 섀시기술, 자동차 디자인 거장 ‘조르제토 쥬지아로’의 스타일링, 영국 CKN에서 CV조인트 기술 등을 전수받아 개발됐다. CV 조인트는 전륜구동의 핵심기술이다.
포니 엑셀은 77마력의 힘을 내는 1.3ℓ 엔진과 87마력짜리 1.5ℓ 엔진을 사용했다. 원래는 1.2와 1.4 ℓ 인 오리온 엔진을 예정했지만 개발과정에서 출력보강 및 성능 향상을 위해 미쓰비시 뉴 미라지에 사용한 1.3과 1.5 리터 엔진으로 교체됐다.
엑셀은 전륜구동 방식 이외에도 에어로 다이내믹 스타일, 5단 수동변속기, X자형 유압회로를 적용한 브레이크, 4륜 독립서스펜션 등 당시로선 최첨단 기술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엑셀은 미국 수출을 위해 만든 전략차종이었다. 86년 1월 20일, 울산에서 1,050대의 엑셀을 선적한 올리브에이스호가 태평양을 건너 미국 플로리다 잭슨빌 항구에 도착한 건 2월 14일. 한국 차 최초의 미국 상륙이었다.
엑셀은 미국 시장에서 승승장구한다. 당초 판매목표였던 연간 10만대를 이미 9월에 달성해 15만대로 높여 잡아야 했다. 87년에는 26만대를 넘게 판매해 닛산 센트라, 혼다 시빅, 토요타 코롤라 등을 제치고 미국 시장 수입 소형차 부문 1위에 오른다. 미국 자동차까지 포함한 전 차종 판매 순위로는 9위였다. 미국 시장에 첫 진출한 현대차가 불과 1년 만에 거둔 기적과 같은 실적이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사설을 통해 “한국이 경제 사회적으로는 엑셀의 수준에 와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국 정치가 엑셀만 못하다는 의미였다.
엑셀의 활약에 힘입어 현대차의 미국 수출 실적은 86년 30만대, 87년 40만대를 넘겨 88년에는 누적 수출 대수 100만대를 돌파한다. 그야말로 기적과도 같은 쾌거였다.
오토다이어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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