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살 수 있는 자동차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리는 장르는 무엇일까? 준중형차? 중형차? 아니면 최근 인기가 뜨거운 SUV? 세제 혜택이 탁월한 경차? 다 틀렸다. 소형 상용 트럭이 베스트셀러 차종이다. 구체적으로는 현대 포터2의 독주에 기아 봉고3가 엇비슷하게 추격하는 모양새다. 그 외에 쌍용 코란도 스포츠가 매월 2000대 수준으로 다른 수요를 메우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자동차를 물류의 핵심으로 볼 때 수요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 입장에서는 개발비를 회수한 지도 어언 십여 년이 흐른 터라 만드는 족족 수익이 남는 ‘황금알 낳는 거위’일 것이다. 소비자들은 사실 선택의 여지도 없지만 매일 운영하고 주행거리가 길며 짐을 잔뜩 싣기에 이만한 트럭도 없다. 오죽하면 중동의 게릴라들이 국내에서 중고차로 수출된 봉고 짐칸에 대공화기를 세팅하고 전투에 나서겠는가? 실제 써보면 안다. 포터는 무거운 짐 잔뜩 얹어 짐칸 문짝은 휠지 몰라도 프레임만큼은 멀쩡해 잘 굴러가는 ‘묘한’ 자동차다.
문제는 다른 부분에 있다. 일단 충돌 안전에 취약하다. 오프셋은 고사하고 기존의 안전 기준 자체를 충족시킬 수 없다. 한 때 현대는 리베로라는 세미 보닛형 트럭을 만들었지만 늘어난 보닛 길이만큼 짐칸이 줄어 시장의 호응을 잃은 뒤 단종됐다. 그렇더라도 안전만큼은 제조사에게 1차 책임이 있는 법. 1톤 트럭을 직접 모는 자영업자도 있지만 대부분 운전은 차를 구매한 사장이 아닌 직원들이 하는 게 현실이다. 당국의 제재로 판매 중단된 다마스와 라보가 고객의 요청으로 생산이 재개된 사실을 보면 시장의 요구는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다음으로는 배기가스의 문제다. 1톤 트럭은 승용차에 비해 주행거리가 상대적으로 길다. ‘클린 디젤’이 허구로 밝혀진 지금, 거리를 달리는 낡은 1톤 트럭은 공해 제조기에 다름 아니다. 새까만 매연이 뿜어 나오는 걸 육안으로도 볼 수 있다. 한 때 디젤 엔진을 LPG 엔진으로 개조하는 사업을 정부에서 지원하기도 했지만, 개조된 트럭의 출력이 미흡해져 사용자들의 외면을 받았던 기억도 난다. 트럭은 태생부터 많은 짐을 싣고 달려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자동차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분명한 대안은 안전하고 튼튼하며 깨끗한 차를 만드는 일이다. 현대기아차의 기술력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그렇게 되면 가격이 올라간다. 지금도 소형 트럭에서는 대안이 없어 울며 겨자먹기로 차를 구입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가격마저 단박에 오르면 큰 저항이 나타날 것이다. 게다가 이미 훨씬 저렴한 중국산 소형 트럭이 수입되고 있다. 가만 놔둬도 잘 팔리는 시장에서 마케팅에 능란한 현대기아차가 거위 배를 가르는 자충수를 둘 리가 없다. 이제 남은 대안은 시장을 다변화시키는 것뿐이다.
내가 주장하는 건 전기 트럭이다. 사실 트럭이야말로 전기 파워트레인이 어울린다. 승용차에 비해 주행거리가 길고 산업 발전의 축인 물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전기차의 보급을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인센티브의 형평성에도 적합하다. 개인 승용차보다는 승객 운송을 맡는 택시나 물류를 책임지는 트럭에 보조금이 지급되면 혜택을 받는 수익자가 훨씬 늘어날 것이다. 초반 토크가 뛰어난 전기 모터는 디젤에 비해 힘이 아쉬울 리 없다. 배터리 무게 때문에 적재중량을 줄어들겠지만 LCV의 용도를 감안한다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다.
개인적으로 올해 1월 프랑스 르노가 발표한 신형 캉구 Z.E.(KANGOO Z.E.)를 눈여겨본다. 캉구 Z.E.는 지난 2011년 10월에 출시된 이래 6년 동안 2만5000대 이상 판매된 선구적인 전기차다. 디자인은 유쾌하고 고객의 쓰임새에 따라 냉장차, 픽업 트럭, 앰뷸런스, 승합차 등 종류도 다양하다. 전기차의 가장 취약점이었던 주행거리는 구형(170km)에 비해 무려 50%가 늘어난 270km에 이른다. 제조사가 밝힌 여름철 실제 주행거리는 200km.
겨울에 대비해서 플러그인 방식 히트 펌프를 달아 효율 저하를 막았다. 동력계는 새로 만든 LG화학의 33kWh 고밀도 배터리와 신형 44kW 모터가 짝을 이룬다. 차체 길이에 따라 4.28m와 4.66m 버전이 있고 2인승과 5인승 실내를 갖췄다. 관심 있는 트럭의 적재중량은 650kg. 자동변속기처럼 몰 수 있어 운전이 편안하다. 충전 또한 쉽고 빠르다. 6시간이면 완충이니 퇴근 후 사업장에서 충전하면 충분하다. 1시간이면 35km 주행이 가능한 충전은 된다지만, 인프라 구축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상용차 구매자가 전기차 충전을 위한 태양광 패널을 공장에 설치하면 세제 혜택을 주는 건 어떨까? 르노 캉구 Z.E.는 정부 보조금을 받고 국내에 출시만 된다면 LCV (light commercial vehicle) 시장에 큰 변혁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유럽은 각종 규제를 통해 디젤 엔진의 퇴출에 나서고 있다. 현재 르노는 유럽 전기차 판매 1위의 제조회사다. 르노 캉구 Z.E.는 올해 중순부터 유럽에서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다. 왜 머나먼 유럽의 프랑스산 전기 LCV 타령이냐고? 우리나라에는 르노삼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증만 받는다면 당장 내년부터라도 수입이 가능할 것이다. 틈새 시장을 노린 트위지 같은 초소형 전기차보다는 규모가 상당한 LCV 시장을 노려보는 것이 메이커에도 이익이 클 것이다. 시장이 커지면 분명 현대기아차 역시 상품성 뛰어난 전기 트럭을 생산할 테니 이래저래 소비자에게는 좋은 일이다. 결론은 이렇다. 주행거리가 많은 자동차일수록 전기차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 미세먼지 앞에 장사는 없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하나라도 실천해 줄여나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자라나는 아이들은 죄가 없으니까.
최민관 기자 edito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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