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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장진호전투 없었다면 나도 없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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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 “장진호전투 없었다면 나도 없다” 왜?

입력
2017.06.29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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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말 흥남철수작전 당시 피란민들이 밧줄, 사다리를 통해 미군이 제공한 수송선에 올라타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말 흥남철수작전 당시 피란민들이 밧줄, 사다리를 통해 미군이 제공한 수송선에 올라타고 있다. 연합뉴스

“장진호(전투)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겁니다.”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28일(현지시각)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버지니아주 콴티코 국립해병대박물관에 있는 장진호전투기념비를 찾아 67년 전 미군의 희생을 기념하는 것으로 첫 공식 일정을 시작하면서 장진호전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장진호전투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10군단 예하 해병1사단이 1950년 겨울 함경남도 장진군 장진호 일대에서 중공군 포위에 맞서 전개한 철수 작전이다. 당시 미 해병1사단은 북한 임시수도인 강계를 점령하려 장진호 북쪽으로 진출하다가 12개 사단의 압도적 병력을 갖춘 중공군 포위망에 걸려들게 되자 흥남으로 후퇴하는 작전을 폈다.

그해 11월27일부터 12월11일까지 2주 간 혹한 속에서 진행되면서 수천 명의 미군 사상자를 남긴 장진호전투는 미군 전사에서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작전 성공을 통해 피란민, 한국군, 유엔군 등 20만명이 남쪽으로 철수할 수 있었고, 중공군에 막대한 전력 손실을 안기며 서부전선 방어에 성공할 수 있었다.

미군은 당시 흥남으로 몰려든 피란민이 남쪽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선박을 제공했다. 그 중 하나가 화물선 메러디스빅토리아호였고, 정원 60명인 이 배에 올라탄 피란민 1만4,000명 중엔 흥남 출신인 문 대통령 부친(고 문용형씨)과 함흥 출신인 모친(강한옥씨)도 포함돼 있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식에서 “2년 후 저는 빅토리아호가 내려준 거제도에서 태어났다”며 “급박한 순간에 군인들만 철수하지 않고 그 많은 피난민을 북한에서 탈출시켜준 미군의 인류애에 깊은 감동을 느낀다"고 거듭 감사를 표했다. 흥남철수 당시 메러디스빅토리아호의 선원이었던 로버트 러니(90) 변호사도 이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한국일보 웹뉴스팀

1950년 12월 13일 함흥 사단묘지에서 열린 장진호 전투 희생자 추모예배에서 미군 해병1시단 대원들이 전사자들에게 경례하고 있다. 주한미군 제공
1950년 12월 13일 함흥 사단묘지에서 열린 장진호 전투 희생자 추모예배에서 미군 해병1시단 대원들이 전사자들에게 경례하고 있다. 주한미군 제공
28일(현지시간) 취임 후 첫 미국 순방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버지니아주 콴티코 국립해병대박물관에 있는 장진호전투기념비에 헌화 후 묵념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28일(현지시간) 취임 후 첫 미국 순방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버지니아주 콴티코 국립해병대박물관에 있는 장진호전투기념비에 헌화 후 묵념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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