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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문화예술계 최저시급은요?

입력
2017.07.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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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화 '인사이드 르윈'은 1960년대 무명 가수의 신산한 삶을 그린다.
미국영화 '인사이드 르윈'은 1960년대 무명 가수의 신산한 삶을 그린다.

얼마 전 인기 예능프로그램 ‘알쓸신잡’을 볼 때였다. 책과 친밀할 수밖에 없는 유시민 작가와 황교익 음식평론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가 암울한 출판 현실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주고 받았다. 사람들이 책을 안 읽으니 출판계가 어렵고, 글 쓰는 이들이 생계를 꾸리기 쉽지 않다는 말이 주된 내용이었다. 전국 공공도서관(2015년 기준 978개)에서 공공기금으로 양서 한 권씩을 구입해도 출판산업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말은 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각자의 지적 저수지를 보유한 아재들의 구수한 수다에 슬쩍 미소 짓다가 문득 서늘한 기운을 느꼈다.

국내에는 좋은 책들을 정부가 구입해 공공도서관에 비치하는 사업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는 세종도서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올해만도 140억원을 쓴다. 어떤 책을 구입할지는 공모와 심사를 거쳐 정해진다. 지난 정부가 작성 운용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세종도서 사업에서도 ‘엄격히’ 적용됐다. 정부에 비판적인 작가나,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는 책을 낸 출판사들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세종도서 선정에서 탈락했다. 지식산업의 기초가 될 출판업계가 어이없이 쓰러지지 않게, 빼어난 작가들이 돈의 굴레 속에서 재능과 열정을 소진하지 않게 하기 위해 쓰여질 돈이 정권의 비판 세력 길들이기 도구로 악용된 셈이다.

문화예술인에게도 생계유지는 어찌할 수 없는 삶의 명제다. 그들의 최저생계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창작열을 더욱 지필 연료로 쓰라고 지원해주는 공공기금이 정치적으로 이용됐다는 점에서 블랙리스트는 악랄하고도 악랄하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문체부 장관이 새로 임명돼 블랙리스트를 철저히 조사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뤄진다고 하나 문화예술계의 ‘먹고사니즘’은 여전히 간단치 않다. 최저시급 1만원 인상 논쟁이 사회를 뜨겁게 하고 있으나 문화예술계에서는 남 일이나 다름없다.

노동착취 현장으로 종종 보도되는 영화계는 그나마 살만하다. 2011년 표준근로계약서가 도입된 뒤 임금 수준과 노동 여건이 많이 나아졌다. 상업영화 50% 가량이 표준근로계약서로 스태프를 채용한다. 아무리 스태프 막내라도 최저시급(올해 기준 6,470원)을 보장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최저시급이 1만원까지 올라가면 제작비가 상승하고 영화관람료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스태프들은 훨씬 일할 맛이 날 것이라고 말한다.

글 값은 처참하다. 배우자와 아이를 둔 한 작가가 수치를 제시하며 프리랜서로 사는 힘겨운 삶을 토로한 적이 있다. 한달 300만원은 벌어야 하는데, 글만 써서는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원고료는 보통 200자 원고지 1장당 1만원. 주말 포함해 하루에 원고지 10장 분량은 꾸준히 써야 300만원을 벌 수 있다. 그나마 일감이 끊기지 않아야 가능한 액수다. 연극계는 말해 무엇하랴. 연극배우는 시급 개념조차 없다. ‘월급 30만원 연봉 360만원’이라는 슬픈 우스개가 나오는 이유다.

‘좋아서 택한 일인데, 볼멘소리 꼭 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엉뚱하게도 유명 배우나 가수 등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릴 수도 있다. 스타들의 탐욕 때문에 스태프들에게 돌아갈 돈이 적어진다는 주장은 본질을 벗어난다. 할리우드 스타 앤젤리나 졸리는 ‘말레피센트’(2014) 출연료로 2,000만달러를 받았다. ‘말레피센트’의 추정 제작비는 1억8,000만달러. 제작비의 9분의 1가량이 졸리 지갑에 들어간 셈이다. 그렇다고 할리우드 스태프들이 저임금에 시달리지는 않는다(해외시장 규모 등 몇몇 변수가 있다).

이 참에 문화예술계에도 최저시급의 적극적인 적용을 검토해 보면 어떨까. 언제까지 열정 지상주의만 내세워 숱한 재능을 갉아먹어야 하나. 노동에는 정당한 대가가 따라야 한다. 기본적인 경제 원칙이 무시된다면 문화산업 육성이라는 구호는 공허하기만 하다.

라제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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