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은 기업 하기 최고 좋은 나라
자유 주되 이익은 사회 환원 유도
사회보장기금 덕 높은 복지 가능해
상속·증여세 폐지나 황금주 도입 등
기업 불신하는 한국선 적용 힘들어
노동 단축 위해 정부가 주도 역할을
“한국에서도 스웨덴식 사회적 대타협이 가능하려면 기업가와 노동자 모두 ‘손해 볼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기업은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받는 대신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노조는 기업의 경영권을 인정하는 대신 기업이 사회복지에 기여하라고 압박하는 거죠. 노조가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국민적 지지 속에 강력하게 기업에 요구할 수 있습니다.”
스웨덴 남동부의 중세도시 칼마르에서 지난달 만난 최연혁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는 “노동시간 단축 등 복지 실현을 위해서는 노사가 서로 양보하고 손해 볼 수 있도록 설득하는 새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997년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20년째 스웨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최 교수는 스웨덴식 복지국가 모델을 한국 현실에 맞게 수용할 수 있는 정책 및 정치제도를 연구하는 학자다.
“스웨덴은 한국에서 좌파 모델로 생각하지만, 실은 좌우 협치 모델이죠.” 최 교수는 “스웨덴은 전 세계 어느 국가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며 “기업에 자유를 주고, 그렇게 얻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도록 이끈 게 성공적 복지 시스템을 만든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2005년 상속세와 증여세를 폐지한 게 대표적 예. 폴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지로 스웨덴 기업들의 엑소더스가 이어지자 당시 집권 사민당이 세율 25%의 상속ㆍ증여세를 그 원인으로 지목하고 전격 폐지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현금 일시불로 내야 하는 이 세금 때문에 알짜배기 기업을 매각해야 할 정도로 부담이 큰 반면, 국가 재정에서는 GDP의 1.8%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미미했던 것이다. 게다가 기업 해외이전으로 인한 고용창출 단절, 세수 감소 등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부작용이 막대했다. “스웨덴은 해외 투기자본으로부터 기업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도록 차등의결주인 황금주 제도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을 만큼 기업 하기 좋은 나라로 꼽힙니다. 1910년대 1 대 1,000의 비율로 보장되던 황금주가 현재 1 대 4로 떨어졌지만, 한국처럼 기업방어를 위한 자사주 매입 후 소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죠.”
상속ㆍ증여세 폐지와 황금주 제도 모두 기업에 대한 신뢰가 낮은 한국에서는 국민정서에 매우 반하는 조치들이다. 하지만 스웨덴 기업들은 피고용인 1인당 임금의 31.24%를 1970년대 도입된 사회보장기금으로 납부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함으로써 이 친기업적 정책들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연 평균 4만2,190달러에 달하는 높은 임금과 22%의 법인세에 더해 사회보장세까지 부담하며 스웨덴 국민들이 누리는 복지의 주요 재원을 조달하고 있는 것이다. 해고된 노동자가 재교육을 통해 다시 노동시장에 투입되는 스웨덴의 유연안정성은 기업이 내는 사회복지기금을 통해 가능하며, 스웨덴 국민들은 이런 대기업을 언론이나 은행보다 훨씬 더 신뢰한다.
스웨덴이라고 노사간 갈등 요인이 없지는 없다. 특히 18.8%에 달하는 스웨덴의 높은 청년 실업률을 두고 노사간 이견이 첨예하다. 경영계가 근속연수가 짧은 순으로 정리해고 할 수 있도록 한 스웨덴 고용안정법(LAS) 규정을 폐지하고 싶어 하는 반면, 노동계는 고임금의 장기근속 노동자를 우선 보호하는 현행 법령을 반드시 관철한다는 입장이다. 최저임금제가 없어 단체협약에 의해 결정되는 근로자 초임이 너무 높다는 것도 청년 고용을 가로막는 요인이라는 게 경영계의 주장이다. 스웨덴 청년 실업률이 비슷한 노동환경의 덴마크(12%)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게 바로 LAS법과 높은 초임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노조는 초봉 인하는 전반적 호봉 조정을 통해 임금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절대 불가를 외치고 있다.
몇몇 법안을 둘러싼 노사 갈등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은 전 세계가 인정할 만큼 기업 경쟁력이 높고 노동복지가 탄탄한 국가다. 그 토양은 스웨덴 협치 문화의 상징인 1938년 살트셰바덴협약으로부터 비롯됐다. 당시 사민당 정부가 노사 양측에 각각 파업금지법과 직장폐쇄금지법을 통과시키겠다고 압박해 노사가 각기 한발씩 양보하는 대타협을 이루게 만들었다.
“오늘날 안정된 노사합의 문화를 갖게 된 시초는 노조의 양보였습니다. 대기업 노동자들이 중소기업 노동자들을 위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연대임금제를 실현할 수 있도록 양보해 줬기 때문에 기업 역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죠. 이런 노사문화 덕분에 기업은 뛰어난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노동자는 두터운 사회복지 혜택을 누립니다. 세계적 경제위기가 닥치면 휘청 하다가도 가장 먼저 일어서는 국가가 스웨덴인 이유죠.”
최 교수는 “사회적 대타협이 가능하도록 문재인 대통령이 양대 노총과 만나 대승적 차원에서 먼저 양보를 설득해줬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당장은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결국은 이익이더라 하는 경험이 쌓이는 것이 사회적 합의의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새 정부는 임기만 바라볼 게 아니라 한 세대 앞을 내다봐야 해요. 이 첫 시도가 성공하면 한국에서도 백년정당이 나옵니다. 스웨덴 모델의 핵심은 적을 포용하고 반대파를 규합해 합의에 도달하는 좌우 협치에 있으니까요.”
칼마르=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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