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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테이에서 온 편지] 엄마가 그리워했던 추억의 골목은 어디에

입력
2017.07.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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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의 출판사 남해의봄날이 운영하는 봄날의책방 앞에 선 정은영(왼쪽), 강용상 부부. 38년 된 폐가를 남편 강용상 건축가가 수리해 북스테이 봄날의집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경남 통영의 출판사 남해의봄날이 운영하는 봄날의책방 앞에 선 정은영(왼쪽), 강용상 부부. 38년 된 폐가를 남편 강용상 건축가가 수리해 북스테이 봄날의집과 함께 운영하고 있다.

지역 서점에는 그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담은 책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남쪽 끝 바닷가 경남 통영에 자리한 우리 책방에도 통영의 풍부한 문학적 자산을 만날 수 있는 책들이 가장 좋은 자리에 진열되어 있다. 책방을 찾은 독자들은 책 속 문인들, 예술가들의 흔적을 좇아 통영 골목골목을 누비고, 때론 하얀 밤을 지새우며 이 도시의 삶과 예술을 만난다.

통영의 대표 문인 박경리 선생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는 우리 책방에서만 수백 권이 팔린 부동의 스테디셀러다. 이 작품은 유고시집답게 작가의 생애 전반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산다는 것’으로 시작하는 첫 장은 그가 평생을 그리워한 통영에서 나고 자란 이야기가 담겨 있고, 두 번째 장은 이야기꾼이자 타고난 살림꾼이었던 어머니를 통해 지나온 삶을 더 깊이 반추한다. 그리고 덧나기 일쑤였던 마음의 상처와 이를 생의 본질로 마주하여 다시금 살아내는 노작가의 결기가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단단하게 이어진다.

박 선생의 유고시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어머니에 대한 처연하고 슬픈 기억이다.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다 한탄한 작가는 사별 후 삼십여 년을 삭막한 꿈속을 헤집으며 어머니를 찾았지만 만나지 못했노라고 술회했다. 꿈에서 깨면 돌아가신 어머니의 부재에 생살이 찢기는 아픔을 느꼈다는 노작가의 고백은 두 해 전 갑작스럽게 폐암으로 엄마를 떠나 보낸 내 모습과 겹쳐졌다. 그래도 신은 마지막 가는 길에 자비를 베풀어서 엄마의 병세가 잠시 호전되어 맑은 정신으로 한 주간을 보낼 수 있었고, 그 시간에 엄마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가 나보다 어렸던 그 옛날, 엄마가 엄마가 아니었던 꽃 같은 시절의 이야기는 엄마를 잠시나마 미소 짓게 했다. 그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다시 태어나면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고, 혼자서 훨훨 날아다니면서 살 거다. 무겁지 않게, 자유롭게.”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경리 지음ㆍ김덕용 그림

마로니에북스ㆍ133쪽ㆍ9,000원

엄마의 골목

김탁환 지음

난다ㆍ212쪽ㆍ1만3,000원

엄마가 살아 계셨다면 같이 걷고 싶은 옛 골목을, 목련꽃 흩날리던 옛 집의 기억을 소환하는 김탁환 작가의 ‘엄마의 골목’은 경남 진해의 만개한 벚꽃처럼 화사하고 향기로운 책이다. 한 권의 시집 같기도, 소설 같기도, 노래집 같기도 한 문장들. 항구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하모니카를 부는 엄마는 여전히 떠나간 남편을 품고 사는 여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지는 과거의 기억이 싫어서 그 많은 앨범을 없앴지만 그리운 남편의 얼굴을 좇아 기어코 다시 사진을 구하고야 마는 천생 여자. 그런 엄마를 기록하기 시작한 아들의 이야기.

김 작가는 그가 나고 자란 고향 진해에서, 그를 소설가로 만든 진해 앞바다를 다시 마주하며 어린 시절의 기억을, 그리고 엄마의 과거이자 자신의 역사를 하나 둘 끄집어낸다. 6개월이면 끝날 거라 장담했던 작가는 엄마의 이야기에 홀려 해를 넘기며 진해 구석구석을 걷고 또 걷는다. 말이 없던 엄마의 이야기보따리가 터지자 작가는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제게 할 이야기가 얼마나 더 남았어요?”

“내가 죽는 날까진 네게 들려줄 이야기가 마르지 않을 거야. 이렇게 마주앉으면, 이야기가 흘러나와. 내가 전혀 챙겨두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술술 나온다니까. 신기한 일이야, 정말!”

작가의 글을 좀 더 빌리면, ‘이 책에 담긴 모든 문장의 주어는 엄마다. 엄마가 겪은 사실도 엄마를 이루고,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도 엄마를 이루고, 엄마가 상상한 것들도 엄마를 이루고, 엄마가 느낀 것들도 엄마를 이룬다. 그 전부가 엄마다.’ 그리고 그 전부가 아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한 권의 책으로 묶인 것이 바로 ‘엄마의 골목’이다.

박 선생의 유고시집과 김 작가의 ‘엄마의 골목’, 이 두 권을 읽으면서 내 가슴 속에 남은 두 개의 단어는 고향, 그리고 엄마였다. 우리 엄마가 그리워했던 추억의 골목은 어디였을까, 엄마는 고향에 돌아가 옛 집을 다시 찾고 싶었을까... 엄마의 삶을 좇아 한참을 헤매다 보니 가끔,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엄마를 떠나 보내고 내게 남겨진 엄마의 이야기는 너무 짧았다. 남의 이야기, 남의 삶은 열심히 기록하고 펴내면서 왜 정작 엄마가 살아온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못했을까. ‘엄마’라는 이야기의 심연 속으로 늦기 전에 발을 들여 놓은 김 작가의 행보가 부러운 것은 비단 필자뿐이 아닐 것이다.

엄마를 잃어버린 모든 이들에게 따스한 위로가 되는 두 권의 책. 통영과 진해, 그리고 깊고 푸른 엄마의 바다. 이 두 책은 그렇게 닮아 있다.

정은영 봄날의책방 대표ㆍ북스테이네트워크(bookstaynetwo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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