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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옥자’와 미자는 왜 소년이 아닌 소녀일까(인터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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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옥자’와 미자는 왜 소년이 아닌 소녀일까(인터뷰①)

입력
2017.07.09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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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이 '옥자'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NEW 제공
봉준호 감독이 '옥자'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NEW 제공

영화 ‘옥자’의 주인공 옥자는 봉준호 감독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존재다. 봉준호 감독은 7년 전 운전을 하고 가다가 지금의 ‘옥자’와 비슷한 동물을 만났고, 그때의 기억은 영화 ‘옥자’의 출발점이 됐다. 봉준호 감독은 그 이전에 ‘괴물’을 만나기도 했다.

판타지 같은 이런 이야기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사실 봉준호 감독이 실재하는 존재를 보았다는 것이 아니라 ‘영화 광’ 봉준호 감독의 눈에만 보였던 환상이었던 것이다. 봉준호 감독은 “상상했다는 말이다. 물론 환각은 아니다.(웃음) ‘괴물’도 내가 고3 때 헛것을 본 것이다"라며 "내 상상 속 옥자는 지금보다 더 컸다. 건물 3층 높이로 컸는데 그런 애를 미자가 같이 껴안고 잘 수 없지 않나.(웃음) 소녀와 친밀한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작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특별한 동물 옥자의 정체는 말 한 마디 하지 못하는 ‘슈퍼 돼지’로, 순하고 다소 억울한 얼굴로 관객의 감성을 자극한다. 특히 옥자가 역사(驛舍) 안에서 족발집을 지나가는 장면은 옥자의 억울한 운명을 극대화한 신이다.

봉준호 감독은 “억울한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다. 크고 작은 차이만 있지 억울한 일들은 언제나 있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특히 돼지가 억울한 게 많다. 돼지는 진돗개보다 아이큐가 높다. 생명체지만 우리는 ‘돼지’를 생각할 때 동물이라기보다 고기를 떠올린다. 삼겹살이 구워지는 모습을 보면서 소주 한 잔이 떠오르고 즐거운 순간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돼지가 삼겹살집이나 순대집 앞을 지나갈 때 무슨 생각을 할까. 당사자 입장에서 보면 이건 홀로코스트의 현장이지 않나”라며 새로운 시각을 던졌다.

억울함을 가진 슈퍼돼지에게 봉준호 감독은 사람 이름으로 느껴지는 ‘옥자’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특히 자매처럼 자라온 옥자와 미자에게 돌림자를 쓴 것은 뭉클함을 주기도 한다. 게다가 봉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에서 배두나가 찾아 헤매던 개 이름도 ‘순자’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익숙하기는 하지만, 사실 옥자와 미자는 요즘 잘 쓰지 않는 이름이다.

봉준호 감독은 “어린아이가 좋아할 이름은 아니다. (미자의 할아버지인) 변희봉의 만행이다.(웃음) 구식 이름이고 일제시대 잔재이기도 한 이름이 아닌가. 그런데 떡 하니 손녀와 동물에게 이름을 붙여준다. 희봉이 어떤 사람인지 추측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글로벌 식품 기업에서 밀고 있는 제품에게 그런 이름이 붙은 게 재밌지 않나”라고 웃으며 “어머님 세대 분에 옥자라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영화를 만들 때 ‘아수라’의 김성수 감독을 만났는데, 김 감독 어머니 이름도 옥자라고 하더라. 그래서 어디 가서 촌스러운 이름이라고 하기 죄송스럽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안서현과 틸다 스윈튼이 '옥자'에 출연했다. 넷플릭스 제공
안서현과 틸다 스윈튼이 '옥자'에 출연했다. 넷플릭스 제공

그렇다면 억울한 슈퍼돼지 옥자와 극중 유일하게 정상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산골 소녀 미자는 왜 소년이 아니라 소녀였을까. 앞서 영화에 출연한 배우 스티븐 연도 ‘옥자’를 ”여성에게 힘이 가는 영화다. 여성이 험난한 곳을 헤치고 나아가는 모습이 좋다”라며 소녀의 모험담을 응원한 바 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외적인 의도나 철학이 개입된 건 아니다. 다만 처음 인물들을 배치할 때, 수컷 동물과 남자 아이가 뛰어다니는 모습과 소녀와 암컷 동물이 뛰어다니는 것을 상상해 보니까 후자 쪽에 강렬하게 끌렸다. 남자 아이들이 모여 있으면 영화 ‘파수꾼’이 되지 않나.(웃음) 개인적으로 두 여자아이가 뛰어다니는 평화로운 숲 속 모습을 더 찍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만 봉준호 감독은 옥자와 미자의 대척점에 서 있는 빌런으로 틸다 스윈튼이 등장한 것에 대해서는 성별이 중요했던 게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틸다가 반대편의 여성 CEO로 그려지는데, 시나리오 구상할 때부터 틸다로 상정하고 쓴 것이라 중년 남성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국적 기업과 (옥자를 생산하는) 창조주로 틸다가 있는 것은 처음부터 만들어진 것이었다. 변희봉도 처음부터 생각한 배우이긴 하지만 주인공이 소녀니까 할머니보단 할아버지가 어울릴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이주희 기자 lee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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