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 근무시간 절반 ‘낭비’
SNS 보고 잡담하며 1시간54분
불필요한 회의 등 2시간30분 써
獨 근로자 점심은 자리서 간단히
“3시 퇴근… 집중해 일해도 빠듯”
지난달 9일, 독일 철강업체 아셀로미탈의 아이젠휘텐슈타트 공장 인사팀에서 근무 중인 질케 베렌(46)씨는 점심을 대부분 자기 자리에서 샌드위치로 해결한다. 주 30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일하면서 점심시간 없이 일을 하고 빨리 퇴근하는 것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는 “근무시간이 짧은 만큼 주어진 시간 내에 내 일을 마쳐야 할 책임이 있다”며 “일하는 중에는 개인적인 일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질문에 답하자마자 바로 일에 집중했다.
7일 서울역 맞은편 서울스퀘어빌딩 지하 식당가는 오전 11시40분부터 회사원들이 들이닥쳤다. 낮 12시에 이미 자리는 꽉 차 자리를 잡으려면 15~20분을 기다려야 했고 주문해 음식이 나올 때까지 10~15분 정도가 걸렸다. 실제로 먹는 시간은 짧아도 이래 저래 빠듯하게 1시간 정도를 점심시간으로 쓰는 것이 한국 회사원들의 풍경이다. 2015년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 549명을 대상으로 ‘직장인의 점심시간’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58.8%가 “점심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실제 식사시간은 10~20분(43.1%)을 꼽은 사람이 많았고, 나머지 시간을 커피를 마시거나(28.7%), 낮잠을 자며(18.2%) 보냈다.
‘근로자들이 식사와 사적 업무로 시간을 낭비해 늦게까지 남아 일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지라도 ‘근로시간을 단축하려면 낭비되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언명은 진실이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데 점심시간이라도 여유 있게 지내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항변할 직장인도 있겠지만 바짝 일하고 빨리 퇴근할 수 있다면 이를 마다할 직장인 역시 없다.
한국 기업 특히 사무직에서 업무시간 낭비가 많은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2013년 국제 회계·컨설팅업체 언스트앤영(Ernst&Young) 한영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직장인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한국의 직장인은 하루 평균 9시간30분을 직장에서 보내면서 인터넷 검색, 잡담,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카카오톡 등에 1시간54분(22.4%)를 쓰는 것으로 드러났다. 불필요한 회의ㆍ중복 업무에 쓰는 시간도 2시간30분(29.4%)이나 됐다. 9시간30분의 근무시간 중 총 4시간24분(51.8%)이 낭비되는 셈이다. 언스트앤영 한영은 낭비되는 시간을 경제 가치로 환산하면 연간 146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했다. 시간 누수를 30%만 줄여도 연간 44조원의 가치 창출이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기업들이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집중해서 일하자는 ‘911 캠페인’, 특정시간 동안 사내 메신저 작동을 중지시키는 집중근로시간 제도 등을 도입해 왔지만 장시간 노동과 헐렁한 근무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는 않았다.
근로자의 태도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접근으로는 현실 개선이 어렵다. 이승협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는 “특히 사무직의 경우 사람을 대하는 텔러와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직원에게 똑같은 근로시간을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비효율적”이라며 “유연근무제 등을 도입해 단기간 집중해 일을 끝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근로자의 하루 업무가 명확히 할당되고 일을 마치면 자율적으로 퇴근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근로자 스스로 시간 낭비를 줄이려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노동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직원에게 책임과 권한을 함께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회사가 적절한 근무제를 도입해 직원에게 주인의식을 심어준다면 근로자는 스스로 시간 낭비를 없앨 것입니다. 장시간 노동 개선을 위해선 노사 모두 힘을 합쳐야 합니다.”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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