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의 광주를 얘기하기 위해선 여전히 용기가 필요하다. 씻을 수 없는 아픔과 슬픔과 부끄러움과 분노를 정면에서 마주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배우 송강호(50)에겐 그날이 “무거운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송강호는 영화 ‘택시운전사’(8월 2일 개봉) 출연을 한동안 망설였다고 고백했다.
“영화 ‘변호인’ 때도 그랬어요. 그분(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에 누를 끼칠까 두려움이 앞섰죠. ‘택시운전사’에서도 똑같은 고민이 이어지더군요. 제가 부끄럽지 않게 광주의 아픔을 대중적으로 잘 전달할 수 있을지 부담감이 컸습니다. 정부 또는 특정 정치 세력을 의식한 정치적 부담감은 절대 아니었어요.”
시나리오를 정중히 돌려보낸 뒤에도 가슴 속에 자리잡은 이야기는 떠나지 않고 점점 커져만 갔다.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두려움도 함께 자랐다. “참 아이러니한 감정이에요. 이 또한 ‘변호인’ 때와 똑같았습니다.” 결국 그는 1주일 만에 마음을 돌렸다.
송강호가 그린 ‘시대의 초상’
‘택시운전사’는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태우고 광주로 향했던 택시운전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송강호는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의 취재에 동행한 택시운전사 김만섭을 연기한다. 홀로 열한 살 딸을 키우며 성실히 살아가는 만섭은 네 달치 사글세에 해당하는 택시비에 혹해 광주에 갔다가 비극의 현장을 목격한다.
비록 영화적 연출이지만 눈앞에 재현된 그날의 참상에 송강호는 “마치 실제 상황을 겪는 듯 촬영 내내 고통스럽고 힘들었다”고 했다. 특히 힌츠페터를 놔두고 광주를 빠져 나온 만섭이 순천에서 유턴해 광주로 돌아가던 장면을 힘겹게 찍었다. 이 장면에서 만섭은 가수 혜은이의 노래 ‘제3한강교’를 흥얼거리다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송강호는 ‘이 밤이 새면은 첫차를 타고 이름 모를 거리로 떠나갈 거예요’라는 노래 가사에서 “광주의 새벽”이 떠올라 “더 가슴이 아렸다”고 했다.
“짧은 시간에 감정의 동요를 설득해야 하는 중요한 장면이었어요. 노래하랴 연기하랴 운전하랴, 아주 정신 없었죠. 촬영장 도로 길이가 짧아서 감정을 충분히 끌어올릴 여유도 부족했고요. 도로 끝은 논두렁이었어요. 자칫 택시가 논두렁에 빠질까 봐 어찌나 아슬아슬하던지… 하하.” 송강호가 몰았던 1973년식 연두색 브리사 택시는 일본에서 1억원을 주고 모셔 온 “귀한 몸”이라고 한다.
진지하지만 심각하지 않은 태도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이다. 웃음이 있어 슬픔도 짙어진다. 영화가 송강호 연기에 빚을 졌다. 송강호는 “비극에서 해학을 느낄 수 있고 반대로 희극이 처절한 비애를 반어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며 “우리 삶의 소중한 감정 같다”고 했다.
‘택시운전사’는 두 외부인의 시선을 통해 광주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힌다. 그 넓어진 공간에서 송강호가 발견한 건 “희망”이다. “거창한 이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명제를 담고 있는 영화예요.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고발하기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비극을 극복했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한국 정치사도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 왔잖아요. 여기에 ‘희망’이 있는 것 아닐까요.”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송강호는 올해 초 한 시상식에서 이런 수상 소감을 남겼다. “영화 한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영화 매체의 한계 때문에 관객에게 미치는 효과가 불과 며칠밖에 가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 그 순간 세상이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신작 ‘택시운전사’부터 가깝게는 ‘밀정’(2015)과 ‘변호인’(2013), 멀게는 ‘효자동 이발사’(2004) ‘살인의 추억’(2003) ‘공동경비구역 JSA’(2000)까지 그의 필모그래피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이 스며 있다. ‘설국열차’(2013)와 ‘의형제’(2010) ‘괴물’(2006)처럼 정치적 메타포가 강렬한 영화들도 있다. 하지만 어떤 신념 때문에 선택한 작품들은 아니다. 그는 “일개 배우가 감히 어떻게 세상을 바꾸겠냐”고 말했다.
“대중적 사랑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들이 어떤 의미를 찾아갈 수 있는 작품이면 더 좋겠다는 바람에서 출연한 작품들이에요. 영화의 사회적 역할을 기대하고 작품을 고르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차기작은 마약쟁이 이야기를 그린 ‘마약왕’(우민호 감독)인데요. 하하.”
‘변호인’에 출연하고 세월호 특별법 제정운동에 서명했다가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그는 자신에게 정치색을 덧씌우려는 일부 왜곡된 시선에 대해서도 단호했다. “블랙리스트는 직업 배우로서 대중적 이미지에 편견이 생길까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듭니다. 직접적 불이익보다 창작자들을 획일화시킨다는 점이 블랙리스트의 가장 큰 폐해라 봅니다.”
블랙리스트의 위력에도 송강호의 관객 동원력은 흔들림이 없었다. ‘설국열차’ 935만명, ‘관상’(2013) 913만명, ‘변호인’ 1,137만명, ‘사도’(2015) 624만명, ‘밀정’ 750만명. 무시무시한 숫자다. 그는 “운도 따랐고 좋은 제작자들이 훌륭한 작품을 제안해 준 덕분”이라며 쑥스러워했다. ‘연기력과 흥행성을 다 가진 배우’라는 덕담에도 손사래를 쳤다.
“태생적으로 예술가들은 항상 목마름을 가지고 있어요. 획기적이고 창조적인 작품을 만나 연기하고 싶다는 갈망이죠. ‘아, 이거다’ 하는 작품은 영원히 못 만날 겁니다. 그러니 매사에 일희일비할 필요도 없죠. 스포츠경기처럼 승패가 갈리는 작업이 아니잖아요. 물리적 시간이 허락하는 때까지 죽 흘러가야지요.”
‘마약왕’ 촬영을 마치고 내년 상반기에는 봉준호 감독과 재회해 ‘기생충’ 촬영을 시작한다. 줄줄이 잡혀 있는 스케줄에도 그는 “1년에 한 편씩 개봉하는 셈이니 다작과는 거리가 멀다”면서 “동년배 배우들 중에 나처럼 작품 수가 적은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지 않냐’고 짓궂게 되물으니, 마치 노를 손에 쥔 듯이 양쪽 팔을 휘저으며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도 저어서 팔이 아플 지경입니다. 으하하.”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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