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는 방황하고 현자는 여행한다는 옛말. 여행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엔 더욱 그렇다. 세계 최대 여행 정보 회사 트립어드바이저가 여행 정보를 큐레이션하는 인공지능(AI)을 개발하겠다고 나섰을 정도니까. 여행도, 여행 정보도 제일 잘 아는 사람, 여행 작가다. 여행 작가에게 ‘여행 책 영리하게 고르고 읽는 법’을 물었다. ‘그리스 홀리데이’ 공동 저자 오한결(33)씨와 ‘보라카이ㆍ세부 홀리데이’ ‘라오스 홀리데이’를 쓴 박애진(32)씨, ‘만원으로 떠나는 초저가 당일치기’를 낸 이병권(31)씨. 여행을 사랑해 사표를 내거나 공무원 시험을 포기했다는 세 사람. 올여름 방황하는 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 작은 팁을 들어보자.
여행 책, 얼만큼 믿어도 될까?
-책에 나오는 식당, 숙소, 관광지를 전부 가 보고 쓰나.
오한결(오)= “여행 책에서 제일 중요한 건 신뢰도다. 전부 경험해 보고 싣는 게 원칙이다. 앉아서 쓴 책은 티가 난다. 팩트보다 감상이 많은 책이 대개 그렇다.”
박애진(박)= “취재해 보고 별로인 곳은 아까워도 뺀다.”
이병권(이)= “비용을 따지는 국내 여행에선 숙소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래도 직접 자 보고 소개한다.”
-좋은 여행 책을 알아보는 요령은.
오= “최신 책에 최신 정보가 들어 있다. 초판 나온 시기가 중요하다. 1,2년마다 정보를 조금씩 수정해 개정판을 낸다 해도 초판이 기준이니까. 작가 이력도 따지자. 전문 지역이 있는 작가 책이 대체로 좋다.”
박= “‘이 식당 맛있어’가 아니라 ‘무조건 가 보라’고 하는 책이 있다. ‘협찬’ 냄새다. 작가의 취향을 강요하는 책은 위험하다. 내 취향과 맞지 않으면 정보 가치가 없다.”
이= “국내 여행 정보는 사실 거기서 거기다. 내 여행 스타일에 어울리는 책이 좋다. 여행 일정을 짜주는 책은 구식이다. 콘셉트와 아이디어를 보고 고르자.”
-협찬 정보는 께름칙하다. 책 쓰면서 협찬을 받기도 하나.
오= “내 돈으로 쓴다. 출판사에서 선인세 10% 정도를 받아 취재비로 쓰는데, 결국 내가 받을 돈이다. 지금 쓰는 이탈리아 로마 책은 선인세로 100만원을 받았다. ”
박= “‘협찬받아 다닌다’ ‘남의 돈으로 여행한다’는 말이 제일 싫다. 라오스 현지 취재하는 두 달 동안 싸구려 숙소에 묵었다. 방값 아끼느라 모르는 사람과 한방을 쓰기도 했다. 호화 숙소 취재 다니면서 씁쓸했다(웃음). 관광청에서 항공, 숙박 등의 지원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관광청마다, 작가마다 사정이 다른데, 동남아는 호의적인 편이다.”
오= “이탈리아 관광청은 협찬이나 협조가 일절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관광객이 몰려드니까(웃음). 유럽에는 ‘책에 소개할 필요 없다’면서 취재를 거부하는 곳도 있다.”
이= “공짜를 밝히는 일부 ‘파워 블로거’ 때문에 취재가 어려워졌다. 큰 카메라를 들고 다니니까 작가 아니면 블로거라는 티가 나는데, 음식 사진을 못 찍게 하는 식당이 있다. 광고비 달라고 할까 봐 걱정해서다. 식당에 취재 가면 무조건 음식값부터 낸다. 그래야 사장님들이 경계하지 않는다. 내 돈 내고 다니고 책을 써야 부끄럽지 않다.”
-취재 비용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인가.
오= “로마 책은 1,000만원보다 조금 덜 썼다”
박= “라오스 취재비로 300만~400만원을 썼다. 책 쓰는 1,2년 동안의 기회비용까지 생각하면 액수가 더 커지겠지만.”
이= “130만원. 책 콘셉트가 하루에 만원만 쓰는 거니까(웃음). 걷는 게 좋다고 추천한 구간은 나도 걸어 다녔다.”
-블로그에도 정보가 많은데, 굳이 책을 사봐야 하나.
박= “감동스러울 정도로 정보를 잘 정리한 블로그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 블로그를 찾기까지 걸러내야 하는 무의미한 정보가 너무 많다. 신뢰도도 문제다. 블로거는 틀린 팩트를 책임지지 않는다. 음식 가격이 다른 정도는 괜찮을지 몰라도, 주소나 영업 여부 같은 게 틀리면 낭패 아닌가.”
오= “블로그는 지면 제약이 없어 한 장소를 자세히 소개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여행 계획을 짜는 데는 별로 유용하지 않다. 책에는 역사, 기후, 문화까지 모든 게 들어 있다. 책 한 권을 쓰면서 역사책을 포함해 50권을 읽었다.”
-현지인처럼 사는 여행, 모험을 감수하고 다니는 여행이 유행이다. 준비를 꼭 해야 하나.
이= “준비하지 않으면 여행이 여러 장소를 스쳐 지나가는 것에 그친다. 사찰의 탑이 있다고 치자. 얽힌 사연을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건 다르다. 큰 계획을 짜 두고 현지에서 수정하는 게 최선이다.”
박= “아는 만큼 보인다. 준비할수록 선택의 폭이 커진다. 책에 의존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치열하게 준비하되, ‘나’가 선택의 기준이어야 한다. ‘나만의 여행’이 진짜 여행이다.”
여행 작가는 행복할까?
-왜 여행 작가가 됐나.
이= “부모님처럼 공무원이 되려고 준비했는데 2년 연속 낙방했다. 학창 시절 유럽 여행 추억이 갑자기 떠올라서 여행 작가 학교에 등록했다. 2년 만에 책을 냈다. 여행 작가가 되는 길은 여러 가지다. 그럴듯한 아이디어가 있으면 출판사를 직접 찾아가 보라. 블로그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능력을 입증하고 시작하기도 한다.”
박= “회사에서 더는 못 버티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그만뒀다. 글과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다. 카메라 셔터를 어떻게 누르는지도 몰랐는데, 이제 카메라가 ‘나보다 소중한 존재’가 됐다. 사진 취재 다 하고 카메라 잃어버리는 악몽을 가끔 꾼다(웃음).”
오= “통ㆍ번역 일을 했다. 2006년 중ㆍ남미 여행에서 인상적 경험을 하면서 작가 꿈을 품었다. 여행 작가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준비했다.”
-먹고살 만한가.
박= “행복하지만 생계는 너무 힘들다. 필리핀 책이 1만권 넘게 팔렸는데도 인세로 먹고사는 건 턱도 없다. 영어학원 강사, 외국 관광객 가이드 같은 ‘알바’를 한다. 기고도 하는데, 원고료가 너무 짜다. 프리랜서 작가가 워낙 많으니 나 아니어도 할 사람 많다는 거다. 그래도 꿈이 있다는 것, 꿈을 믿고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인 게 뿌듯하다.”
이= “기고도 하고 가이드도 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삶에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하고 싶은 일 하며 사는 게 행복이자 행운’이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는 사람도 많으니까.”
오= “돈은 별로 못 벌지만 삶에 만족한다. 완성된 책을 만질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여행이 즐겁고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박= “나쁜 사람, 나쁜 일은 어디에나 있다. 길을 잃거나 바가지를 쓰는 것 같은 작은 좌절 때문에 여행 전체를 망치는 건 어리석다.”
오= “스마트폰을 내려놓자. 유용하긴 하지만, 그만큼 소중한 내 시간을 빼앗긴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자유로워진다.”
이= “자기 취향을 발견하는 게 먼저다. 국내 여행에도 눈을 돌리자. 사계절이 바꾸는 풍경은 정말로 아름답다. 인증 사진 집착은 제발 그만!”
100만원으로 일주일 휴가를 간다면?
최근 공개된 문화체육관광부의 여름휴가 실태 조사 결과는 팍팍하다. 평균 휴가 기간 2.9일, 휴가비 1인당 25만6,000원. 힘겨운 현실이 꿈 꿀 자유까지 빼앗지는 못하는 법. 작가들이 ‘기간 일주일, 비용 100만원’의 조건에 맞는 휴가 계획을 짜봤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김도엽(경희대 정치외교학 3)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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