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막을 내린 세계 최고 권위의 영국 윔블던 테니스 대회는 이번도 성차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윔블던은 세계 주요 4개 대회 중 가장 늦은 2007년부터 남녀 상금을 동등하게 지급할 만큼 보수적인 대회로 유명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중앙 경기장인 센터 코트와 1번 경기장이 주로 남자부 경기에 집중 배정되면서 형평성 논란이 불거졌다. 윔블던 대회 첫 일주일간 중앙 경기장에서 진행된 남자 단식 경기는 14번이었던 반면 여자 단식 경기는 8번에 불과했다. (기사보기☞ “왜 남자만 센터코트에서?” 윔블던 성차별 불붙나)
윔블던 대회에서 최우선 순위의 배정을 받고도 16강전을 2번 경기장에서 펼친 여자 테니스 세계랭킹 1위인 안젤리크 케르버는 “경기장 배정에 놀랐다”며 이 문제를 제기했고, 남자 테니스 세계랭킹 1위인 앤디 머레이도 “남녀 공평하게 중앙 경기장에서 경기를 펼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하는 등 참가 선수들도 형평성 논란에 가세했다.
‘강한 것=남성다운 것’ 스포츠계 고정관념이 억압하는 것
성차별은 비단 테니스계의 문제만은 아니다. 경쟁자를 누르고, 자신의 기록을 갱신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진 스포츠 경기에서 ‘더 빠르게, 더 강하게’가 기본이다. 이런 가치들은 보통 ‘남성적’으로, 우아함과 아름다움 등은 ‘여성적’으로 여겨져 ‘남성적’ 가치들에 비해 낮게 평가된다.
특히 남성적 가치가 더 인정받는 스포츠계에서 더더욱 ‘남성은 이래야 한다’, ‘여성은 이래야 한다’는 성적 규범이 엄하다. 문제는 이런 관념에서 어긋난 스포츠 선수는 부정적으로 비춰진다는 게 여겨진다는 데 있다.
캐나다 성적소수자 스포츠 인권활동가인 케프 세넷은 지난 18일 서울 중구 주한 캐나다대사관에서 열린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위한 프라이드 하우스’ 강연에서 “여성 테니스 선수로는 세레나 윌리엄스는 세계 최고 실력을 가졌지만 끊임없이 ‘남자같이 생겼다’, ‘못생겼다’ 등 부정적인 외모 평가에 시달리면서 경기력을 인정받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여성인 그가 테니스계에서 최고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여성은 남성보다 못하다’는 성적 규범을 어긴 것으로 여겨졌다”고 지적했다.
실력 뛰어나면 ‘여자 맞아?’… 툭하면 ‘성별 검사’
신체조건과 실력이 뛰어난 여성 스포츠 선수들은 흔히 ‘남자 아니냐’는 의심의 시선을 받는다. 이런 의심은 선수의 ‘성별검사’로 이어지며 능력 있는 선수를 견제하는 도구로 악용된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여자 축구 간판 골잡이였던 박은선 선수에 대해 지난 2013년 박 선수의 소속팀인 서울시청을 제외한 6개 구단 감독들이 성별 의혹을 제기하며 성별검사를 요구한 사건은 유명하다. 당시 박 선수는 자신의 사회관계형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 “성별 검사도 한 두번 받은 것도 아니고, 월드컵이나 올림픽 때도 받아서 경기 출전하고 다 했다. 그때도 어린 나이에 기분이 많이 안 좋고 수치심을 느꼈는데 지금은 말할 수도 없다”며 참담한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기사보기☞ 성별 논란 박은선 “여자로서 수치심 말할 수 없을 정도” )
반대 사례도 있다. 남성 선수들이 울거나, 동료와 포옹을 하는 등 소위 ‘남자답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에는 많은 경우 ‘호모같다’ 등 동성애 혐오적인 반응을 얻기 일쑤다. 실제 지난해 브라질 리우 올림픽 당시 영국 남성 다이빙 팀이 우승 후 기뻐하며 포옹하는 사진을 다룬 영국의 한 언론이 ‘동성애 혐오적 표현으로 성적 고정 관념을 영속시킨다’는 성소수자 단체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기사보기☞ 남자 싱크로 다이빙 선수들의 세리머니를 다룬 언론보도가 LGBT 단체의 비난을 받다 )
성별이분법 해소와 성소수자 포용하는 ‘프라이드 하우스’
케프 세넷은 “스포츠계에서 사용되는 성차별적 용어는 상당부분 동성애 혐오 표현과 겹친다” 며 ”성적 이분법이 강력한 스포츠계의 성차별은 동성애 혐오와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스포츠계에선 뿌리깊은 성차별을 살펴보고 성소수자들이 소외되지 않고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교류의 장을 마련하자는 움직임도 벌어진다.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때부터 시작된 ‘프라이드 하우스’가 대표적이다. 프라이드 하우스는 ‘스포츠에 의한 다양성과 평등의 진전’ 등을 목표로 올림픽과 같은 국제 스포츠 행사에서 성소수자들과 이들의 지지자를 환영하기 위해 제공되는 장소다.
2010년 이후 매번 올림픽과 국제 대회에서 설치된 프라이드 하우스는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열리지 못했다. 올림픽 개최지인 러시아에서 사실상 성소수자들의 성 정체성 공개(커밍아웃)를 금지하는 반동성애법을 통과시키면서 프라이드 하우스 설치도 불허했기 때문이다. 당시 프라이드 하우스 주최 측은 러시아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전세계에서 ‘동성간 손잡기’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내년 2월 개최되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에서도 프라이드 하우스 설치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측은 “러시아의 반동성애법이 소치 올림픽에서 큰 논란이 된 후 올림픽 헌장에는 성적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다는 조항이 새로 들어갔다”며 “한국에서 어떤 방식으로 프라이드 하우스를 운영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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