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방에서 거미를 발견하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거미가 내 입으로, 내 코로, 내 귀로 들어가는 상상을 했다. ‘거미가 대체 왜 그러겠어, 자기 집을 놓아두고.’ 스스로 달랬지만 상상은 멈춰지질 않았다. 내 속으로 들어간 거미는 위장에다 거미줄을 치기 시작했다. ‘산 입에 거미줄 치랴’는 말은 쉬지 않고 움직이는 입에 거미줄을 치지 못하다는 얘기일 테니 쿨쿨 잠자고 있는 내 입에는 거미줄을 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간, 거미는 점점 커진다. 점점 커진 거미가 나를 무참하게 살해한다. 이런 상상은, 그동안 받은 교육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거미의 생김새 때문일 것이다. 거미가 해롭다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아침 거미가 어떻고 저녁 거미가 어떻고, 모든 거미에겐 독이 있고…. 어른이 되어서야 그런 게 다 허무맹랑한 소리란 걸 알게 됐다.
생각이 바뀌고 나자 거미줄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비 온 후 갠 하늘에 언뜻 비치는 빗방울을 포획한 거미줄은 어찌나 황홀한지, 방사형으로 뻗어나가 거대한 대지의 이불도 짜낼 것처럼 촘촘하게 빚어진 간격은 또 얼마나 신비로운지, 하루종일 거미줄만 보며 지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화 ‘샬롯의 거미줄’에는 거미 샬롯이 거미줄을 만드는 영상이 나오는데 어찌나 아름다운지 몇 번이나 돌려봤던 기억이 난다. 영화 ‘샬롯의 거미줄’은 엘윈 브룩스 화이트의 동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돼지와 인간과 거미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동물들이 거미가 징그럽다고 말하지만 돼지 윌버는 거미 샬롯을 아름답다 생각하고, 둘은 친구가 된다. 도살 위기에 처한 돼지 윌버를 구하기 위해 샬롯은 ‘멋진 돼지(some pig)’라는 문구를 거미줄로 만들어낸다. 몸 속에서 줄을 뽑아낸다는 것은, 생산과 창작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니 이보다 멋진 글쓰기가 없을 것 같다. 글쓰기로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
인간이 두려워하지만 한편으로는 경탄해 마지않는 존재가 바로 거미다. 몸 속에서 끊임없이 줄을 뽑아낼 수 있지만, 그 줄로 누군가를 덫에 빠지게 한다. 거미줄은, 누군가에게는 신비로운 구조물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헤어나오지 못할 지옥이다. 거미에 대한 인간들의 혼란스러운 생각이 스파이더맨이라는 존재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거미에 물려서 초능력을 얻게 되는 인물이 청소년이란 것은 의미심장하다. 스파이더맨이 된 피터 파커는 연신 거미줄을 쏘아대지만 그게 어떤 행동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파커는 거미에 물린 후 패션부터 변한다. 셔츠를 바지에 넣어 입던 파커는 스파이더맨이 되고 난 후부터 셔츠를 밖으로 꺼내 입는다. 힘이 넘쳐나는 것이다. 파커가 손목을 비틀어 수없이 쏘아대는 끈적끈적한 거미줄은 수많은 정액들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의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세 종류다. 샘 레이미 감독이 토비 맥과이어를 주연으로 내세운 ‘스파이더맨’ 시리즈, 마크 웹 감독이 앤드류 가필드를 주연으로 내세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 존 왓츠 감독이 톰 홀랜드를 주연으로 내세운 가장 최근의 시리즈. 세 개의 시리즈 중에서 레이미의 시리즈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파커라는 존재 속에 두려움과 환희가, 살인 충동과 쾌락이, 능력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과 힘에 대한 책임감이 균형 잡힌 채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파이더맨’에서 벤 삼촌은 파커가 평생 잊을 수 없는 말을 남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벤 삼촌은 파커가 스파이더맨이 된 것을 알지 못한 채 숨을 거두는데, 만약 진실을 알았다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네가 쏘아대는 모든 거미줄 하나하나에, 너는 책임이 있단다.”
책임감에 눌려 살던 파커는 ‘스파이더맨 2’에서 갑작스러운 위기를 맞는다. 외부에서 온 위기가 아니라 내부에서 생겨난 위기다. 끊임없이 솟아나던 거미줄이 어느 순간부터 잘 나오지 않게 된 것이다. 나 같은 소설가는 이런 장면을 보면 ‘벽에 부딪힌 작가의 고통(Writer’s block)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오랜 연구 결과 끝에 ‘작가의 벽’이란 단순히 작가의 상상력이 고갈된 것이 아니며, 또한 작가가 게으른 이유도 아님이 밝혀졌다. 작가의 벽을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혼자서 작업해야 하는 글쓰기가 ‘무력감’과 ‘자기 의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었다. 작가나 스파이더맨뿐 아니라 모두가 그럴 것이다. 어느 순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하찮아 보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무력감에 빠질 것이다. 레이미 감독은 ‘스파이더맨 2’에서 이런 무력감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대사를 준비해 두었다. “옳은 일을 하려면 가끔은 가장 원하는 걸 포기해야만 할 때도 있어요.” 파커가 악당에게 전하는 말이다. 포기는 패배가 아니다.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조금 가벼워지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기 위해선 우선 자신이 가장 원하는 걸 알아야 한다.
김중혁 소설가〮B tv ‘영화당’ 진행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