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실현되면 1만1,500여톤 줄어
朴정부 때 계획 변경 불가피
폐기물 감소 규모 20여%
“환경단체 의식 지나쳐”지적
“전문가 참여 논의 필요”주장도
원자력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하고 남은 사용후핵연료를 영구처분하기 위한 방안을 담은 사용후핵연료 정책을 재공론화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을 두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미 공론화를 거쳐 관련 정책을 수립했는데, 공론화부터 다시 하겠다는 건 예산 낭비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다.
20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원자력계에 따르면 정부의 ‘탈(脫)’원전 공약을 실현하면 사용후핵연료 약 1만1,528톤이 발생하지 않게 돼 기존 정책 변경이 불가피하다. 전날 정부가 발표한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공론화를 통해 사용후핵연료 정책을 재검토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이유가 이 때문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기존 정책은 탈원전 기조가 반영되지 않은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근거해 사용후핵연료 핵연료 발생량을 산정했기 때문에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기존 정책은 지난해 5월 박근혜 정부가 행정예고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말한다. 원전 36기를 2089년까지 수명연장 없이 가동할 때 총 약 5만112톤의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한다는 전제로 수립됐다. 2038년이면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 공간이 꽉 차기 때문에, 이를 옮겨다 땅 속에 묻을 부지를 2028년까지 확정하고 영구처분시설을 지어 2053년 가동을 시작하겠다는 목표다. 이 계획을 이행하는데 필요한 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돼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신규 원전 6기를 폐지하면 기존 정책의 사용후핵연료 발생량 중 약 1만1,528톤이 나오지 않게 된다. 신고리 5ㆍ6호기까지 최종 중단될 경우엔 추가로 약 3,507톤이 발생되지 않는다. 이를 반영하면 임시저장 공간의 포화 시점, 영구처분시설 규모와 가동 시점 등이 조정될 수 있어 재공론화가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문제는 기존 정책이 이미 공론화를 거쳤다는 점이다. 2013년 10월 출범해 20개월 동안 약 40억원을 들여 운영된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는 영구처분시설 부지를 2020년까지 선정하고, 2051년 가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2015년 6월 산업부에 권고했다. 약 1년 뒤 산업부는 부지 선정에 걸리는 기간을 3배(12년)로 늘려 영구처분시설을 2053년 완공한다는 기본계획을 내놓았다.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광범위하게 논의했다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반(反)원전 인사나 원자력 전문가가 충분히 참여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위원으로 추천 받은 일부 환경단체 인사들은 위원 구성이 편파적이라며 참여를 거부했다.
전체 사용후핵연료(약 5만112톤) 중 탈원전으로 없어지는 부분(1만1,528~1만5,035톤)은 20여% 정도다. 부지 선정 기간, 영구처분시설 규모나 가동 시점 등은 법안이나 정책 일부 수정 등으로 조정이 가능하다. 그런데도 정부가 굳이 재공론화를 못 박은 이유에 대해 “환경단체를 지나치게 의식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산업부 관계자는 “기존 공론화에 부정적이었던 환경단체나 원전 지역에서 재공론화 요구가 있었다”며 “재공론화의 구체적인 방식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황주호 경희대 교수는 그러나 “나랏돈을 또 들여서 공론화를 다시 해야 하는 근거가 부족하다”며 “재공론화로 기존 기본계획보다 얼마나 더 새로운 얘기가 나올 수 있겠나”라고 되물었다.
원전 건설에는 찬반이 있을 수 있지만, 사용후핵연료 처분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김용수 한양대 교수는 “지난 공론화 땐 사용후핵연료 전문가들도 참여하지 못했다”며 “전문가들이 (영구처분시설 부지나 시점에 국한하지 않고) 안전하고 효율적인 관리에 필요한 구체적인 기술을 논의하는 공론화라면 다시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