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 연차휴가 규정
‘중단되지 않는 2주일’ 권고
현실에선 퇴짜 맞고 눈총만
직장인 연차휴가 평균 15일
실제 사용은 7.9일에 머물러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김원(32)씨는 최근 인생의 버킷리스트였던 ‘시베리안 횡단열차’를 타기 위해 회사에 2주간의 장기 휴가원을 제출했다. 그러나 그의 휴가원을 받아 든 상사는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지금 일을 관두겠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 거냐”고 물어왔다. 결국 김씨의 휴가원은 반려됐고, 사내에 소문이 퍼지면서 주변의 눈총까지 받게 됐다. 김씨는 “그 정도의 장기휴가가 받아들여질 것이라곤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 딱 감고 내봤는데 역시나였다”면서 “우리나라 현실에선 2주 이상 쉬기 위해선 퇴사밖에 길이 없는 것 같다”고 전했다.
올해도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았지만 국내의 1주일 가량의 단기 휴가 관행은 바뀌지 않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제132호 협약에서 연차휴가를 ‘중단되지 않는 2주일의 휴가’로 규정하고 있는 것과 배치된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1년 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 연차휴가를 주도록 하고, 2년 근속마다 1일이 가산된다. 연차 일수로 보면 ILO의 협약대로 2주 가량의 연속휴가가 가능하다.
ILO가 2주 이상의 장기휴가를 연차휴가협약에 못 박은 취지는 단기휴가로 충족될 수 없는 여유로운 휴식을 보장한다는 의미다. 심지어 유럽연합(EU)은 4주 이상의 연차휴가를 권고하고 있다.
우리 법은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도록 하고 있지만 권리 보호방안 등에 대해서 따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회사 측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는 근로자의 휴가 시기를 변경할 수 있다는 내용만 들어있다.
그러다 보니 국내 직장인들은 평균 절반 정도의 연차만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이달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국내 임금근로자가 쓸 수 있는 연차휴가는 평균 15.1일이지만, 실제 사용일수는 7.9일로 52.3%의 사용률을 보였다.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는 직장 내 분위기(44.8%)가 꼽혔다. 3년 차 직장인 이슬기(30)씨는 “상사부터 차례로 휴가 일정을 잡는 직장 문화 탓에 제대로 휴가를 가본 적이 없다”면서 “휴가원을 낼 때 마다 부장이 본인이 신입사원 때는 연차휴가를 감히 쓴 적이 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터라 눈치가 더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직장인들이 자유롭게 연차휴가를 쓸 수 있는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ILO의 권고처럼 장기휴가를 위한 연차휴가의 일괄 사용 조항을 근로기준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연차휴가 제도 자체가 근로자의 오랜 휴식을 보장하려는 취지인 만큼 짧은 휴가가 일반적인 기업의 관행을 개선한 뒤 법도 고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연차휴가 소진을 강제하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면서 “특히 연차휴가를 길게 사용하면 동료가 내 일까지 떠맡는다는 죄책감은 인력 부족에서 비롯한 만큼 이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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