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7월 28일 오전 9시 50분, 2차대전 미국 주력 중형 폭격기 B-25 ‘미첼’이 뉴욕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에 충돌했다. 자체 무게만 9.5톤에 달하는 기체는 시속 360km 속도로 빌딩 북측 78, 79층을 들이받았고, 항공유가 폭발하면서 빌딩 상층부가 화염과 연기에 휩싸였다.
전폭기 조종사 윌리엄 F. 스미스 Jr. 중령과 크리스토퍼 도미트로비치 상사, 귀향 차 비행기를 얻어 탔던 해군 수병 등 3명과 빌딩 79층에 입주해 있던 미국 가톨릭 복지협회 직원 11명이 화재로 숨졌고, 3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그 날 매사추세츠 주 베드포드 공군기지를 이륙해 뉴저지 주 뉴워크 공항을 향하던 B-25는 짙은 안개에 따른 시계 불량으로 라과디아 공항 착륙을 권유 받았으나 조종사가 당초 비행 계획대로 맨해튼을 가로지른 게 화근이었다. 27세의 스미스 중령은 2차대전 전투비행시간만 1,000시간을 넘기며 공군 십자장 등 다수의 훈장을 탄 파일럿이었다. 38년 7월에 사관학교에 입교한 그는, 전시라는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승진이 빠른 편이었고, 그만큼 탁월한 조종사였다. 사고 시점은 그가 활약했던 유럽 전쟁이 이미 끝났고, 태평양전쟁 역시 막바지로 치닫던 때였다. 포화 속을 누비던 그로선 뉴욕의 안개쯤은 우스웠을지 모른다. 웨스트포인트 졸업생 매거진에 실린 그의 부고에는 “그는 군인 정신으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기를 원했다. 하지만 너무 빨랐다”고 적혀 있다.
사고가 토요일 이른 시각에 나서 인명 피해가 적었다. 수송임무 중이어서 폭탄을 적재하지 않은 데다 항공유도 얼마 안 남았다는 점, 당시 세계 최고(最高) 였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이 2001년 9ㆍ11의 철골구조 세계무역센터 빌딩과 달리 철골철근콘크리트 구조여서 화재와 충격에 상대적으로 강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당시 빌딩에는 전망대 관광객 40여 명을 포함, 약 1,500여 명이 있었다고 한다. 사고 재산 피해는 1,300만달러(현재 추산 약 5억달러)에 달했다.
B-25의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충돌 사고는 미국서는 2001년 9ㆍ11 이후, 한국에서는 성남공항의 전투기 항로를 가로막고 선 제2 롯데월드와 관련해 환기되곤 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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