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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화장품 브랜드 부산 동래점주
가맹본부, 2분 거리에 직영점
무상판촉 등 영향 매출 ‘뚝’
#2
공정위 늑장ㆍ무성의 조사 후
주요 의혹 모두 ‘무혐의’ 결론
민변 “적정성 따질 기구 설치를”
“갑(甲)질 본사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더 미워요.”
강성훈(44) 씨는 30일 공정위가 보낸 2장짜리 ‘사건처리통지서’를 보여주며 이 같이 말했다. 한 화장품 브랜드 부산 동래점을 운영하던 그는 2015년 가맹본부를 공정위에 신고했다. 가맹본부에서 동래점과 걸어서 2분 거리에 직영점을 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정위는 2년이 지나서야 사실상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강씨는 “생업도 포기한 채 거대 본사와 홀로 싸우는 동안 공정위는 ‘무성의’ 조사로만 일관했다”며 “결론이라도 빨리 내려줬으면 이렇게 억울하진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씨가 동래점 문을 연 것은 2012년 12월. 그런데 본사는 6개월 뒤 동래점 부근에 직영점 영업을 시작했다. 강씨는 “본사는 직영점에서만 무상 판촉행사와 상품권 증정 행사를 실시했다”며 “우리 매장에서 물건을 산 고객이 이를 환불하고 직영점에서 다시 구매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밝혔다. 또 전국 매장에서 ‘화장품 30% 할인행사’를 진행하면서도 동래점은 배제했다. 영업 초기(2013년 1~5월) 평균 4,000만원에 달했던 동래점 매출은 직영점이 생긴 뒤 2,500만원 안팎으로 떨어졌고, 이듬해엔 1,600만원까지 추락했다.
결국 강씨는 2014년 7월 자신의 매장에 본사의 갑질을 지적하는 벽보를 게시하고 ‘투쟁’을 시작했다. 강씨는 본사가 특정 인테리어 업체와 계약 체결을 강제해 ‘폭리’를 취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인테리어 업체는 자동문과 발광다이오드(LED) 전구 34개 설치 비용으로 1,166만원를 제시했는데 시공사에 알아보니 500만원이면 충분했다. 강씨는 2015년 4월 공정위에 본사를 신고했다.
그러나 공정위의 사건처리 시계는 더디기만 했다. 공정위는 5차례나 조사를 하고서도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중간에 담당 조사관이 교체된 적도 있다. 강씨는 토지 등을 담보로 은행에서 1억원 넘게 대출 받아 변호사비와 생계비를 충당하며 버텼다.
공정위는 지난 3월 강씨가 제소한 본사의 불공정거래 행위(9건) 중 가맹금 예치의무 위반과 정보공개서 제공의무 위반 등 2건에 대해 시정조치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특정 인테리어업체와의 거래 강제, 할인행사 시 차별적 대우 등 나머지 7건에 대해서는 ‘무혐의’로 판단했다. 강씨는 “시정명령 2건은 이미 신고 초기에 본사도 인정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2년 간의 조사에도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사건 처리가 늦어진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답했다.
공정위의 ‘늑장조사’와 무성의한 조사 태도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참여연대도 2012년 ‘매출 허위ㆍ과장’ 등을 이유로 편의점 가맹본부 BGF리테일(CU) 등을 신고했지만 공정위는 2015년에야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아모레퍼시픽 아리따움점주협의회가 2014년 신고한 건도 공정위 조사는 최근에야 착수됐다. A피자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는 “모든 것을 걸고 공정위 문을 두드리는데도 조사관은 ‘왜 굳이 신고를 하느냐’는 반응을 보이곤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가맹점주는 “조사관은 ‘증거를 갖고 오라’는 말만 반복하며 입증책임을 전가한다”고 꼬집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이동우 변호사는 “공정위 조사ㆍ심의ㆍ의결 과정의 적정성을 따져볼 수 있는 기구가 설치돼야 한다”며 “‘우리는 경쟁법을 집행하는 기구이지 피해자 구제 기구가 아니다’는 공정위 내부 인식도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무 피자에땅 가맹점주협의회 부회장은 “공정위 가맹거래과 직원 8명이 5,000개가 넘는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감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본부 인원과 지방사무소 인력 6명을 일부 전환 배치해 가맹거래과 인력을 14명으로 확대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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