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주 로어노크(Roanoke)의 흑인 여성 헨리에타 랙스(Henrietta Lacks)가 1920년 8월 1일 태어나 51년 10월 4일 별세했다. 그는 그 시기 미국 남부 흑인 여성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며 다섯 아이를 낳고, 31세에 자궁경부암으로 숨졌다. 하지만 그의 암세포는 특별했다. 연구진이 채취해 배양한 그의 세포는, 짧으면 며칠 밖에 못 사는 일반적 인체 세포와 달리 무서운 속도로 생장하며 거의 24시간마다 두 배로 증식했다. 연구진은 그의 이름과 성 첫 두 글자를 따 ‘헬라(Hela) 세포’라는 이름을 붙였다. 52년의 소아마비 백신 개발에서부터, 각종 항암치료제와 에이즈ㆍ파킨슨 병 연구, 화장품 유해성부터 우주 세포반응 연구에까지 헬라 세포는 인간의 몸을 대리했고, ‘불멸의 세포’라 불리며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다.
메릴린드 주 볼티모어의 존스홉킨스 병원은 당시 흑인들을 무료 진료해주는 드문 병원이었다. 대신 의료진은, 관행처럼 환자나 보호자의 동의 없이 그들의 병원균과 세포를 의학 연구에 활용했다. 헬라 세포도 그렇게 탄생했다. 70년대 초 헬라 세포가 워낙 많이 증식되고 오염되면서, 원 세포를 식별할 수 있는 표지가 필요해졌다. 의료진이 랙스의 가족에게 연락한 게 그 무렵이었다. 의료진의 설명을 들었지만, 세포가 뭔지도 몰랐다는 가족은 “공짜 건강검진을 해준다”는 말에 만족해 혈액을 제공했다. 그들이 저 사실을 알게 된 것은 76년 ‘롤링 스톤’의 기사 등을 통해서였고, 세상이 헬라 세포의 사연을 알게 된 건 저널리스트 레바카 스클루트(Rebecca Skloot)의 2010년 책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김정한 등 옮김, 문학동네) 덕분이었다.
헬라 세포가 의학 연구윤리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건 1990년대부터였다. 백혈병 환자 존 무어가 자신을 진료한 UCLA 병원을 상대로 건 소송에서, 캘리포니아 대법원이 “병원 환자의 폐기대상 혈액과 조직 샘플은 환자의 소유물이 아니며 환자 또는 유족에게 해당 세포 연구로 발생한 상업적 이익을 요구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한 건 1990년 7월이었다. 미 국립보건원(NIH)은 2013년 랙스의 유족을 만나 생체 시료 이용 및 헬라 세포 게놈 데이터 공개에 관해 합의했다. 인간게놈프로젝트의 리더인 국립보건원장 프랜시스 콜린스는 그 해 네이처에 기고한 글에서 “데이터 공개에 참가자의 허락을 구하는 건 그들이 단지 실험대상이 아니라 동반자임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썼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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