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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학교를 살리자 마을이 웃습니다

입력
2017.08.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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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10개 마을 공동주택 건립

9년 사이 학생 수 300여명 늘어

작은 학교 살리기 전국서 진행

“등교 시간이 되면 마을 골목길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게 사람 사는 마을이죠.”

제주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장봉길 이장의 말이다. 9년 전까지만 해도 하가리에서는 아이들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았다. 농어촌 인구가 도심으로 유입되는 이농현상으로 자녀를 둔 가구들이 하나둘씩 마을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하가리에 위치한 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장은 2009년 학생 수가 17명까지 줄어들면서 폐교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주민들은 ‘학교가 없으면 마을도 사라진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학교 살리기 운동에 나섰고, 현재는 재학생 수가 97명에 이르는 등 완벽하게 변신했다.

사진설명=21일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에 위치한 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 학생들이 함께 하교하고 있다. 더럭분교는 학생 수 감소로 폐교위기까지 몰렸지만 주민들의 학교 살리기 운동으로 학생 수가 현재는 97명까지 늘었다. 2012년에 대기업의 방송광고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최근에는 관광객들에게 사진 촬영을 위한 관광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김영헌 기자.
사진설명=21일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에 위치한 애월초등학교 더럭분교 학생들이 함께 하교하고 있다. 더럭분교는 학생 수 감소로 폐교위기까지 몰렸지만 주민들의 학교 살리기 운동으로 학생 수가 현재는 97명까지 늘었다. 2012년에 대기업의 방송광고 촬영지로 유명세를 타면서 최근에는 관광객들에게 사진 촬영을 위한 관광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김영헌 기자.

마을 주민들은 더럭분교를 살리기 위한 방법으로 공동주택을 지어 학생들을 유치하기로 결정했다. 주민들은 선뜻 마을 소유 토지 매각 등으로 4억6,400만원을 마련했다. 여기에 제주도로부터 4억원을 지원받아 2011년 10가구 규모의 다가구주택을 완공했다.

주민들은 공동주택이 마련되자 초등학생 자녀 3명 이상을 둔 가족에 한해 연 200만원, 관리비 연 250만원을 조건으로 입주민을 모집했다. 당시 제주에 불기 시작한 이주 열풍과 맞물리면서 전국 각지에서 신청이 이어졌다. 2012년 더럭분교 학생 수가 40여명에서, 다음해는 60여명까지 늘었다. 마을주민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2014년 11억원(제주도 5억원·자부담 6억원)을 들여 10가구 규모의 공동주택을 추가로 건립했다. 현재 더럭분교 전체 학생 중 90%는 서울, 대구, 인천 등 전국 각지에 전학 온 아이들이다.

더럭분교 학생 수가 증가하면서 마을 분위기도 많이 밝아졌다. 21일 오후 3시쯤 공동주택 주변에 하교를 한 아이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어 함께 놀기 시작했다. 도심 학교의 하교 시간에 학원 차량들이 줄줄이 대기하다 아이들을 태우고 가는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5학년 신환유군은 “친구들 대부분이 학원을 가지 않고 방과 후 프로그램에 참여해 미술이나 기타 등 악기를 배우고 있다”며 “더럭분교로 전학 오기 전에는 친구들 대부분이 학원에 가기 때문에 함께 놀지 못하는데 여기서는 저녁때까지 모여서 논다”고 말했다.

박현정 더럭분교 학부모회장은 “도시지역 학교 중에서 맨발로 뛰어 놀 수 있는 학교가 얼마나 되겠냐“며 “학부모는 물론 아이들도 학교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부모가 아이가 함께 마을행사에 참여해 마을 어르신들과 어울리며 다양한 공동체 생활 경험을 쌓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주에서는 더럭분교를 포함해 10개 초등학교가 주민들의 학교 살리기 운동을 통해 폐교 위기를 벗어났다. 제주도교육청은 소규모 학교 통ㆍ폐합 대신 마을공동체를 중심으로 작은 학교를 육성하도록 정책 방향을 전환했고, 제주도도 적극적인 재정지원에 나섰다.

도는 2011년부터 ‘제주도 소규모 학교 소재 통학구역마을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10개 마을에 공동주택 건립 사업 보조금으로 53억5,300만원을 지원했다. 마을마다 부담한 사업비도 72억1,300만원에 이른다. 공동주택을 건립한 마을 내 학교 학생 수도 481명에서 올해 798명으로 317명이 증가하는 성과를 거뒀다.

폐교 살리기 운동은 제주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폐교가 급증하면서 농어촌 마을들도 함께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충북 옥천군 군북면 와정리에 있는 증약초 대정분교는 학교와 마을 주민들의 노력으로 폐교 위기를 극복했다. 학생 수 감소로 1993년 증약초 분교로 격하된 이후 지난해에는 전체 학생이 10명에 불과했고, 신입생은 한 명도 없었다. 위기감을 느낀 학교와 마을 주민들은 각종 공모사업에 도전, 선정돼 받은 1억원의 지원금을 맞춤형 수업 예산으로 활용했다. 덕분에 학생들은 피아노, 바이올린 등 14개 수업을 전액 무료로 참가하고 있다. 지역 기관ㆍ단체는 매년 졸업식과 입학식 때 장학금을 전달하고, 주민들은 마을회관 2층을 주택으로 리모델링한 뒤 저렴한 임대료로 학생을 유치했다. 이런 노력은 지난해 교육부 주관 전국 100대 교육과정에 충북에선 유일하게 대정분교가 우수학교로 뽑히는 성과로 이어졌다.

강원지역은 1980년 이후 폐교된 학교만 446곳에 이르며 전체 학교의 절반 가량이 전교생 60명 이하로 잠재적인 폐교 위기에 몰린 상황이다. 이 때문에 강원교육청은 지역공동체의 중심이기도 한 농산어촌 소규모 학교를 살리기 위해 강원교육희망재단을 3월 발족시켰다.

재단은 강원과 사정이 비슷한 전남, 전북 등과 ‘작은학교 살리기 연대기구’를 설립을 모색 중이며 일본의 작은 학교 살리기 사례를 참고해 강원도형 작은 학교 모델을 보급할 계획이다.

현원철 강원교육희망재단 상임이사는 “작은 학교가 문을 닫게 되면 지방소멸이 더욱 가속화된다”며 “단순 경제논리를 넘어 학교와 지역사회가 갖는 의미를 고려한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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