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토끼를 만난 경험은 특별한 것이다. “늘 이상하고/신기한 세상을 기다려” 온 아이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전에 초록 호랑이를 만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초록 토끼를 만났다. 신기한 세상을 기다리는 아이에게는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이 사건을 “거짓말 아니”라면서 “너한테만” 이야기한다. ‘너’가 친구인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이 시의 독자라고 보아도 좋을 듯하다. 초록 토끼를 만난 것은 비밀로 기억해 둘 일이고 “그게 나에게 힘이 되니까”, 기억 저장고에 ‘초록 토끼를 만났다’라고 또박또박 써 넣는다.
생물학, 유전공학이 더 발달하면 초록 토끼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도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게 만든 초록 토끼를 보는 일도 특별하고 신기한 일일 것이다. 이 시의 ‘초록 토끼’는 그런 차원이 아니다. 송찬호 시인은 ‘초록 토끼를 만났다’에서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맑은 시심과 얽매임 없는 동심이 발견한 세상을 ‘초록 토끼’라고 절묘하게 명명한다. 그것은 이 세상 속에 있는 또 다른 세상이고 우리가 언제든 만날 가능성이 있는 대상이지만 누구나 그것을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초록 토끼를 만날 가능성은 점점 줄고 기대도 잊혀 간다. 이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 시인의 고마운 역할이다. 송찬호의 동시를 읽다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실은 그만이 발휘하는 예민한 감성과 상상, 트인 눈이 아니면 잡아내지 못할 장면과 꼭 맞는 표현들이 꽂혀 와 짜릿한 희열을 느낄 때가 많다.
요즘 아이들은 초록 토끼를 신기하다고 할까? 실제 토끼와의 만남보다 그림과 애니메이션, 동화 속 등 재현됐지만 조작된 가상들을 통해 형성된 토끼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초록 토끼를 신기하게 생각하는 것은 실체와의 경험이 본질적인 세대의 감성일 터이나, 초록 토끼 역시 이미지의 작동이니 반드시 어느 세대의 경험 범주에 제한되지는 않는다. 아니 시인의 상상력이란 본디 그런 제약들을 저만치 넘거나 통과하는 데서 의의가 있다.
반가운 소식. 최근 백창우와 굴렁쇠아이들이 ‘동시노래상자’ 두 권을 내놓았다. 빼어난 동시 32편을 감상할 수 있는데다 가객(歌客) 백창우가 곡을 붙여 굴렁쇠아이들과 함께 부른 동시노래가 담겨 있는 책이자 음반이다. 아직도 백창우를 모르는 이가 있다면 서둘러서 ‘동시노래상자’를 열고 ‘초록 토끼를 만났어’를 듣고 불러 보자. 신기한 세상이 새롭게 열릴 테니까.
김이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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