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의 윤태호 작가와 점심을 같이 먹었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숟가락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몰랐다.
그의 작업 방식이나 요즘 연재하는 작품에 대해 열심히 들었는데, 가장 흥미로운 얘기는 그가 대표로 있는 누룩미디어에 대한 것이었다. 누룩미디어는 만화가들을 위한 에이전시 회사다.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작가의 저작권을 보호하고, 콘텐츠의 다양한 OSMU(원소스 멀티유즈)를 실현하고, 다양한 분야와 융합해 콘텐츠 시장을 넓히는’ 일을 한다.
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 하고 있는지 아니면 아직 구상 단계인지 모르겠지만) 예를 들어 강연 매니지먼트도 누룩미디어의 일이다. 요즘은 웹툰 작가를 꿈꾸는 청소년도 많고, 좋아하는 만화가의 예술관을 육성으로 듣고 싶다는 독자 요구도 높다. 그런 강연 수요를 파악해 적절한 강연자를 연결해주고, 강연료를 협상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강연 기회를 발굴하는 일을 어느 조직이 대신 해준다면 분명히 업계 전체에 득이 될 것 같다.
집에 와서 생각해보니 이거 문학계, 아니 문화계 전체로 확대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공공부문이 이 방식을 도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설익은 대로 이 자리에 풀어 본다.
지난달에 나온 문학계 기사 세 건을 먼저 옮긴다. 첫 번째는 ‘도서관 상주 작가 지원제도’를 실시한다는 기사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시행하는 이 제도는 전국 공공도서관 37곳에 작가가 한 명씩 머물면서 ‘문학 큐레이터’로 활동하게끔 한다. 선발된 작가는 월급 200만원을 9개월 동안 받는다. ‘문학 분야 일자리 창출, 작가의 자립 기반 확충, 문학 독자층 형성, 중장기적인 문학계 활성화’ 등의 문구가 눈에 띈다.
두 번째 기사는 문예중앙과 작가세계 등 전통 있는 문예지들이 휴간에 들어갔다는 내용이다. 정부가 한때 중단했던 우수문예지 발간사업을 최근 재개했는데도 그렇다고 한다. 올해는 30종 안팎의 문예지에 500만~2400만 원을 지원한다고 적혀 있다. 물론 각 잡지 입장에서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세 번째는 문체부가 이르면 이달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부지를 선정해 발표한다는 기사다. 국립한국문학관은 건립에 약 450억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지난해 부지를 공모했으나 지자체들이 과열 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절차를 중단하고 우여곡절 끝에 문학진흥TF가 서울 내 세 곳을 적정 후보지로 발표했다. 지역에 있는 기존 문학관들을 ‘거점 문학관’으로 지정해 국립한국문학관과 연계할 계획이라고 한다.
나는 도서관의 문학 큐레이터, 문예지 지원,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에 모두 찬성한다. 다만 그 운영 방식에 대해서는 몇 자 적고 싶다. 이들 사업은 모두 관(官)이 예산을 책정하고, 혜택을 받을 사람과 기관, 지역을 선정해 돈을 아래로 내려 보내는 형태다. 관 주도 방식이 늘 그렇듯이, 이런 틀에서는 지금 한국 문학을 아끼는 독자들보다는 ‘업계 관계자’의 요구가 심사결과에 더 많이 반영된다.
맞아 죽을 소리인지도 모르겠지만, 우수 문예지가 정말 서른 곳이나 되나? 그 잡지들을 몇 명이나 읽고 있나? 참고로 재작년 40년 역사의 〈세계의 문학〉이 폐간할 때 정기구독자는 50명 미만이었다. 그리고 한국 문학의 당대성과 다양성에 몇몇 문예지보다는 차라리 장르소설 커뮤니티가 더 역할을 하는 시대 아닐까?
기사를 찾아보니 지역 문학관이 100곳 안팎이라고 한다. ‘웬만한 지역 출신 문인들은 제 이름을 단 문학관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셈’(한겨레신문)이다. 이 문학관들은 지금 한국 문학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한국 문학을 접하고 경험하는 공간으로서, 몇몇 문학관보다는 북카페와 인터넷 독서모임들이 더 역할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도서관 상주 작가 지원제도는 작가에게도 도서관 이용자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러나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작가의 수나 독자의 폭, 프로그램의 성격이 한정된다는 게 아쉽다. 좀 더 유연하게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 한국 문학 독자들의 눈은 정말 높고, 원하는 바도 다채롭다고 느낀다. 학생, 교사, 기업, 예비 작가, 출판인, 영화인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작가를 만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어느 정도 규모와 경험이 없으면 그 방법을 잘 모른다. 대가를 지불할 용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고문을 받으려고 한참 전화를 돌리다 포기하는 문화기획자나 시민단체 관계자들도 많을 것이다. 그 반대편에는 자신을 알리고 싶지만 발견되지 못하는 작가, 돈 얘기에 약해 나서길 주저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이런 현장과 예술가들을 연결하고, 협상을 대신 해주는 전국 단위의 매치메이킹 플랫폼이 있으면 모두에게 득이 되지 않을까? 결혼정보회사 시스템을 좀 응용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이다. ‘국립한국문학관은 몇 층 규모로 지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는 않을 텐데, 그 건설 예산 일부를 이런 마중물로 쓰면 어떨까? 아니, 국립한국문학관 자체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로서 이런 역할을 해주면 어떨까. ‘블랙리스트’가 생길 틈을 없애는 길이기도 하다.
장강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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