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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스토리] 큰 닭이냐 작은 닭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입력
2017.08.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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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닭을 먹지만, 방법은 빤하다. 닭은 조리방법에 따라 즐길 수 있는 맛의 범위가 넓은 식재료다. 게티이미지뱅크
모두가 닭을 먹지만, 방법은 빤하다. 닭은 조리방법에 따라 즐길 수 있는 맛의 범위가 넓은 식재료다. 게티이미지뱅크

‘닭 한 마리’란 대체 뭘까? 7,000원짜리 닭을 사오면 바가지를 쓴 것일까? 3,500원짜리 닭 한 마리를 다 먹으면 행복할까? 우리가 먹는 닭의 크기는 실로 다양하다. ‘병아리 떼 종종종’을 며칠 전 졸업했을 것 같은 크기의 ‘두 마리 영계’는 5호(500g)다. 삼계탕용이다. 두 마리를 사도 7,000원 선이니 복날에 ‘1인 1닭’ 하면 된다. 그런가 하면 5호의 곱절 가격인 15호(1,500g) 닭도 있다. 한 사람이 300g을 먹는다고 치고, 뼈 무게를 제외하면 3, 4인분이 된다. 영계에 비하면 타조 같다. 체중은 3배이지만 덩치는 그보다 듬직해 보인다. 백숙이나 닭볶음탕, 아니면 프라이드 치킨을 해서 나눠 먹으면 된다.

다 자라기 전에 생을 마감하는 닭의 맛

닭의 인생은 과자의 인생과 그리 다르지 않다. 병아리는 3,4일간 어미 닭 자궁에서 형성된 달걀을 어미 닭이 21일간 따뜻하게 품어 알을 깨고 태어난 것이다. 요즘 어미 닭은 부지런히 달걀을 낳아야 해 아주 바쁘다. ‘워킹 닭’이 알을 품을 시간이 없기 때문에 병아리는 ‘부화장’이라는 인공의 어미 품에서 태어난다.

육계(고기를 얻기 위해 키우는 닭)의 병아리가 자라야 하는 목표는 정해져 있다. 1,300g 혹은 1,700g 내외다. 각각 10호, 15호의 닭이 돼 시장에 나오는데, 두 가지 표준 크기다. 10호는 28일, 15호는 35일가량 키우면 된다.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3,000g까지 자라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40여일 이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반적 육계를 3,000g가 될 때까지 키우는 일은 거의 없다. 2,000g 이내에서 도축한다. 토종닭도 마찬가지다. 쑥쑥 자라는 성장기의 병아리가 목표 체중에 도달하면 출하시킨다. 출하는 곧 도축을 말한다. 삼계탕용 품종은 주로 5호로 출하되는데, 5, 6주 키운 것으로 생체 무게는 700g이다. 삼계탕 뚝배기에 쏙 들어가는 크기까지만 키우는 백세미 품종이다.

닭의 천수는 원래 그보다 훨씬 길다. 장성한 닭이 흙 바닥의 지렁이를 잡아 먹고 잡초를 쪼아 먹거나 꽁무니에 제 병아리도 졸졸 붙이고 다니는 것은 어디까지나 만화 속 일이다. 육계의 생은 5주를 넘기지 못한다. 하다못해 TV 스타인 ‘삼시세끼’의 닭들도 닭장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산란계(달걀을 얻기 위해 키우는 닭)인 그들에게 인간이 정해준 수명은 2, 3년 이내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을까. 닭은 점점 작아졌다. 배달된 프라이드 치킨 상자의 닭도, 삼계탕 뚝배기에 들어 앉은 닭도. 작은 닭을 소비자가 선호했을까? 경남과학기술대 손시환 교수의 설명. “가정 내 소비 규모가 작아지면서 작은 닭 수요가 커졌다. 그러나 닭의 생산성은 2,000g~2,500g 사이에서 가장 효율적이다. 시장의 큰 닭 수요가 커지고 있지만, 현재 도축 설비 등이 2,000g 이하 닭에 맞춰져 있다. 소비자 요구에 맞는 산업의 변화가 필요하다.”

같은 육계 중 5호 영계와 15호 닭만 해도 맛 차이가 꽤 크다. 5호는 질감이 부드럽고 온화한 대신 향이 백지장 같다. 태어나서 별로 한 일이 없어서다. 근육이 별로 한 일이 없다는 얘기다. 근육은 곧 단백질이고, 그 사이엔 지방이 있다. 단백질과 지방의 갖가지 성분들이 맛, 향에 관여할 만큼 자랄 틈이 없었다. 15호 닭만 돼도 제대로 된 닭 맛을 낸다. 자칫 누린내가 되기도 하지만 구수한 조류 특유의 향이 난다. 특히 큰 닭의 다리 고기는 다른 고기라고 해도 속을 만큼 향이 진하다.

어느 부위를 먹을까

닭 날개는 하얀 살코기 부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퍽퍽하지 않은 것은 껍질 덕분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닭 날개는 하얀 살코기 부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퍽퍽하지 않은 것은 껍질 덕분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닭에도 부위가 있다. 크게 두 부류인데, 색이 다르다. 색이 다르면 맛과 질감도 아주 다르다. 닭가슴살, 그리고 그 안의 안심이 ‘하얀 살코기(White meat)’ 부위다. 닭은 오리, 기러기와 달리 공식적으로(못 나는 조류인 닭도 몇 m정도는 문제 없이 체공한다) 날지 않는다. 날개를 지탱하는 부위인 가슴과 안심, 즉 하얀 살코기는 하는 일이 없다. 일부러 산소를 쓸 일이 없고 열량도 거의 소비하지 않는다. 따라서 닭다리에는 있는 미오글로빈이 적고, 그래서 하얗다. 근육 사이사이에 파고든 지방도 거의 없어 칼로리도 낮다. 큰 역할을 하지 않는 날갯살 역시 흰 살코기 부위다.

대표적인 어두운 살코기인 다릿살. 확연히 어두운 색을 띠며 향도 맛도 한층 고소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대표적인 어두운 살코기인 다릿살. 확연히 어두운 색을 띠며 향도 맛도 한층 고소하다. 게티이미지뱅크

하얀 것이 있으면 검은 것도 있다. ‘어두운 살코기(Dark meat)’는 다릿살과 허벅지살이다. 이쪽 고기는 육색이 짙다. 향도 상대적으로 뚜렷하다. 닭의 운동은 오로지 뛰어다니는 것이 전부다. 휴가 못 간 사무직 인간의 다리 근육은 퇴화하고 있지만, 닭의 다리 근육은 평생 단련된다. 근육이 움직인다는 것은 산소를 많이 소비한다는 의미이며, 단백질이 붙들고 있는 철분이 많다는 뜻이다. 소고기의 육색을 나타내는 미오글로빈이 닭의 근육에도 있다. 운동을 많이 한 닭은 미오글로빈의 육색을 갖게 된다. 근육 사이사이에는 지방이 파고든다. 강인한 근육 속에 지방이 깃들었으니 쫄깃하고 촉촉하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닭의 퍽퍽한 살만 좋아하는 사람과 그 반대인 사람, 그리고 닭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사람이다. 질감 뿐 아니라 맛이 그만큼 다르다. 흰 살코기를 두고 ‘셰프의 빈 캔버스’라고 한다. 하얀 살코기는 색뿐 아니라 맛도 무미에 가깝기에 요리사가 맛과 향을 그려내는 흰 도화지가 된다. 닭가슴살과 안심을 ‘퍽퍽 살’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은 표현이다. 수분을 잃기 쉬운 부위이기 때문에 촉촉한 요리에 어울린다. 어두운 살코기는 요리사가 큰 역할을 하지 않아도 된다. 자체의 맛과 향만으로도 충분하다.

소고기처럼 다양한 대형 닭의 부위

닭가슴살. 다이어트나 할 때나 먹는 맛없고 퍽퍽한 단백질 덩어리가 아니라 훌륭한 식재료다. 서양에서는 닭고기의 하얀 살코기를 ‘셰프의 빈 캔버스’라고 부른다. 맛이 옅기 때문에 어떤 요리든 요리사의 의도를 그려내기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닭가슴살. 다이어트나 할 때나 먹는 맛없고 퍽퍽한 단백질 덩어리가 아니라 훌륭한 식재료다. 서양에서는 닭고기의 하얀 살코기를 ‘셰프의 빈 캔버스’라고 부른다. 맛이 옅기 때문에 어떤 요리든 요리사의 의도를 그려내기 좋다. 게티이미지뱅크

닭이 더 커지면 부위는 더 세분화한다. 일반 소매점에서 판매하는 부분육은 닭가슴살, 안심, 닭 다리살, 닭봉과 닭날개까지 구분하지만, 그보다 훨씬 세세한 분류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부위별 닭 맛을 제대로 경험해보려면 야키토리집이 제격이다. 일본까지 멀리 가지 않아도, 홍대 앞 쿠이신보 같은 전문점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닭 부위를 메뉴에 올린다. 김현종 쿠이신보 대표는 “공급이 안정적인 한에서 가장 큰 16호닭(1,600g)을 부위별로 정형해 내놓는다”고 했다. 또 “일본에서는 더 큰 닭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며 “닭이 크면 부위를 정밀하게 나눠 사용하는 재미가 있는데, 야키토리 전문점마다 부위를 제각각 다르게 나누기도 한다“고 말했다.

닭 안심은 가슴살과 분리돼 있어 세부 부위 중 가장 친숙하다. 미디엄 정도로 살짝 구워 고추냉이를 발라 먹으면 촉촉하게 입맛 당긴다. 기름기가 고소한 다릿살이나 진한 향의 염통도 어느 정도 익숙한 부위다. 닭이 크면 닭날개를 닭봉과 아랫날개로 나눌 수 있다. 가슴살에 붙은 연골은 ‘난코츠’나 ‘야갱’이라고 하고, 무릎에 있는 연골은 ‘히자’라고 한다. 목살, 골반살이나 엉덩이살, 등에 붙은 등심, 어깨에 붙은 어깨살은 뼈까지 발라 먹는 셈이다. 끝이 아니다. 닭 껍질도 엄연히 하나의 부위다. 호ㆍ불호가 갈리는 대신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서 못 먹는다. 보통은 떼내 버리는 닭의 꼬리도 기름이 많아 구워 놓으면 바싹하고 고소하다. 쿠이신보에서 아킬레스라고 해서 파는 부위는 닭발의 바로 위 부위인데 콜라겐 맛이 많이 난다.

사실 우리는 이 모든 부위를 다 먹어봤다. 5호닭 삼계탕에서, 박스에 든 배달 치킨을 먹을 때도. 그러나 닭다리를 먹는 것과 허벅지의 튼튼한 살과 다리 뼈 둘을 연결하는 연골을 골라 먹는 것은 매우 다른 경험이다. 한국의 식문화는 큰 닭을 먹을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되는 길을 걸어왔다. 3,000g짜리 닭을 나눠 먹을 일보다는 500g짜리 닭 한 마리로 알차게 ‘혼밥’할 일이 더 많다. 온전한 모양새로 1인분을 내려면 작을수록 유리하다.

삼계탕이 제철이다. 닭에 때가 있어서가 아니라 풍습이 만들어낸 제철이다. 삼계탕처럼, 한 마리가 뚝배기에 쏙 담기는 닭은 5호 크기(500g)다. 게티이미지뱅크
삼계탕이 제철이다. 닭에 때가 있어서가 아니라 풍습이 만들어낸 제철이다. 삼계탕처럼, 한 마리가 뚝배기에 쏙 담기는 닭은 5호 크기(500g)다. 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의 대표 종교가 ‘치킨교’로 바뀔 정도로 모두가 ‘치느님’을 찾고, ‘치믈리에 자격시험’까지 본다. 복날마다 삼계탕을 찾는다. 다이어터 덕분에 부분육 시장의 성장 가능성도 보인다. 닭가슴살 시장이 성장하면서 큰 닭의 수요가 커지고 있다. 큼직한 닭가슴살이 나오려면 닭도 커져야 한다. 지금보다 더 오래, 충분히 키워야 한다. 그리고 닭가슴살 외의 다른 부위도 특성을 살려 잘 먹을 방법을 고심해야 한다.

닭을 먹는 방식이 불과 몇 가지에 불과한 우리의 조리법은 좀더 다양해져도 된다. 어차피 복날에 삼계탕, 저녁 식사로 닭볶음탕을 먹는 생활방식 그대로라면 지금의 닭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더 많은 닭 요리를 즐길 때, 닭의 부위 구분도 필요하고, 더 큰 닭도 필요해진다. 세상은 지금의 어린 닭만으로 모든 취향을 채울 수 없는 곳이 돼 간다. 작은 닭이 여전히 필요하듯, 큰 닭도 필요하다. 치느님이 현재의 일률적인 양계 산업과 편협한 식문화에 만족하고 계신지는, 인간이 해야 할 질문이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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