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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스테이에서 온 편지] ‘옆 집의 플라톤’을 찾아온 예술가들

입력
2017.08.0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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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헤이리 모티프원을 찾은 예술가들. 모티프원의 주인인 이안수(왼쪽부터)씨와 조각가 김성래, 오상일씨, 이안수씨의 아내 강민지씨, 독일사진작가 플로리안 로지어. 모티프원 제공
파주 헤이리 모티프원을 찾은 예술가들. 모티프원의 주인인 이안수(왼쪽부터)씨와 조각가 김성래, 오상일씨, 이안수씨의 아내 강민지씨, 독일사진작가 플로리안 로지어. 모티프원 제공

젊은 시절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플라톤이 네 옆집에 살고 있는데 만나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 되는가?" 제게 옆집의 플라톤을 만나는 방법은 두 가지였습니다. 가장 경제적인 방법은 독서를 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여행을 하는 것. 한 필자의 정제된 경험과 탐구가 담긴 한 권의 책은 가장 경제적인 방법으로 과거와 미래를 여행하는 것이고, 물리적인 거리의 이동이 동반된 여행은 책 속의 텍스트가 주장하는 현장으로 나아가는 일입니다.

독서와 여행, 이 두 가지를 한 장소에서 동시에 경험하는 것이 바로 모티프원의 북스테이입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약 8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플라톤을 만나기 위해 찾아 왔습니다. 그 중의 상당수는 예술가들입니다. 얼마 전 두 명의 한국인 조각가와 한 명의 독일인 사진가가 찾아 왔습니다. 우리는 예술의 형식과 예술가의 존재 이유, 그리고 각자의 작업 뿌리가 되었던 책에 대한 얘기로 밤이 깊어가는 것도 잊었습니다.

김성래 작가는 체코 프라하국립예술아카데미에서 조각을 전공했습니다. 드로잉과 입체를 넘나드는 작업을 하는 그녀를 조각가라는 형식의 틀 안에 가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공간을 빌려 갤러리 아트스페이스 오(Arts Space O)를 열고, 그 갤러리를 좀처럼 전시공간을 얻기 어려운 국내외 작가들에게 기회를 주는 대안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특별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노동을 기부하는 ‘목적 식당’을 열었습니다. 사회적 의미를 가진 작업을 하는 작가를 발굴해 그 작가를 위해 한시적인 식당을 열고 그 수익을 선정 작가의 작업을 위해 기부합니다. 최근에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있는 작가에게 후원했습니다.

김 작가와 뜻을 같이 하며 갤러리의 월세를 함께 부담하는 오상일 작가는 ‘목적 식당’이 열리는 날, 가스통을 옮기고 직접 물통을 운반하며 힘을 보탰습니다. 홍익대 교수직을 은퇴한 분이 자발적 노동으로 함께하는 협업은 김 작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백년 동안의 고독

가브리엘 마르케스 지음ㆍ안정효 옮김

문학사상 발행ㆍ470쪽ㆍ1만2,800원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 지음ㆍ하태환 옮김

민음사 발행ㆍ268쪽ㆍ1만5,000원

함께 온 독일의 사진가 플로리안 로지어는 김성래, 오상일 작가가 힘을 합쳐 운영하고 있는 아트스페이스 오의 초청작가입니다. 로지어의 항공사진 연작은 지구 표면을 궤도 비행하는 위성이 찍은 사진들 중에서 고른 수백 장의 사진을 조합해 세계 도처에서 인간이 변형한 지구의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환경 파괴의 흔적들은 실재로는 부재하는 현존에 대한 은유입니다. 이것은 고발이라기보다 우울한 희망의 변주 같은 모습입니다.

‘목적 식당’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있는 식당인 컨플릭트 키친(Conflict Kitchenㆍ대립 주방)을 모델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북한과 쿠바, 아프가니스탄 등 미국 정부와 갈등관계에 있는 나라의 음식을 파는데 많은 이들에게 이들 나라의 이미지는 핵, 테러, 전쟁에 한정됩니다. 하지만 이 식당은 미디어가 말하지 않는 그 이미지의 이면을 식탁 위의 화제로 끌어냅니다. 음식을 통해 작가와 관객은 예술적 경험을 공유하고, 이는 기부와 작품 제작의 선순환으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풍성한 이야기들로 시작된 초저녁의 서재는 모든 술이 떨어진 새벽녘이 되어서야 차 한 잔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하룻밤을 그렇게 지새운 세 사람은 모티프원의 방명록에 자신의 뿌리가 된 책을 남기고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삶의 동력을 이렇게 멋진 책 한 권으로 표현한 그들의 열정에 진정 경의를 표합니다.

현대미술의 전략

최광진 지음

아트북스 발행ㆍ287쪽ㆍ1만2,000원

“20대, 젊음이 버겁고 무거워 어떻게든 던져버릴 각오로 놀던 때가 있었다. 낭비하고 소진시키면 어느 날 어른이 될 것 같던 시절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읽었다. 마콘도 마을에서 백 년의 세대를 거듭하며 주인공들이 마주한 자신의 ‘고독’은 당시의 나를 긴 여정에 들게 한 지침서 중 하나가 되었고, 20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그 여정의 안내자가 되어주고 있다.” (김성래)

“나는 조각을 전공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평생 현장을 떠나 본 적이 없었음에도 나는 현대미술의 생리를, 변천의 추이를, 생성의 논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답답했다. 그러던 중 만나게 된 것이 ‘현대 미술의 전략’이다. 모더니즘으로부터 포스트모더니즘에 이르는 방대한 담론들을 차근차근 계보를 밟아 가며 간략하고도 명쾌하게 설명해준 이 책을 세 번 완독하였고, 세계적 석학이나 비평가들이 내놓은 난삽한 이론들이 이 한 권의 책으로 명쾌하게 정리되었다.” (오상일)

“실재와 진실은 사라지고 그것의 끝없는 복제가 가상 실재가 되었다. 이제는 원본과 카피의 구별조차 의미를 둘 수 없는 때에 이르렀다. 실재의 부재라는 개념은 내 사진작업의 개념과 닿아 있다. 나는 이미지의 부분을 펼치고 복사하고 증식시켜 확장한다. ‘시뮬라시옹’ 그 결과는 실재하지 않는 실재이다.” (플로리안 로지어)

헤이리예술마을 이안수 촌장ㆍ북스테이네트워크(bookstaynetwo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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