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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생태] 까마귀가 멍청이라뇨? 한번 찍히면 1년 갑니다

입력
2017.08.0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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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ㆍ사물 구분하고 기억력 뛰어난 까마귀

40가지 소리로 소통, 도구 이용해 먹이 먹기도

2011년 일본 훗카이도의 한 공원 나무 위에 까마귀가 앉아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2011년 일본 훗카이도의 한 공원 나무 위에 까마귀가 앉아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우리나라에는 까마귀와 관련된 속담이 많습니다.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좋은 일이 있고 밤에 까마귀가 울면 나쁜 일이 있다.”

잠깐 생각해 봐도 여러 개가 떠오르는데 별로 좋은 의미는 아니네요. 이처럼 까마귀는 우리에게 ‘흉조(凶鳥)’로 여겨졌습니다. 같은 까마귀과 조류인 까치는 ‘길조(吉鳥)’로 여겨졌으니 까마귀의 신세가 참 불쌍하죠.

처음부터 사람들이 까마귀를 싫어하고 흉조라고 했을까요. 아마도 그건 아닐겁니다.

십 년 전쯤인가요.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벌써 눈치 채신 분이 있을 텐데요. 바로 ‘삼족오(三足烏ㆍ발이 세 개인 상상의 까마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삼족오는 고구려의 상징이자 태양의 상징입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자주 등장을 하고 추앙 받은 것을 보면 지금 까마귀들이 처하고 있는 상황과는 아주 다릅니다.

이처럼 옛날에는 까마귀를 귀하게 여기며 지금처럼 흉조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흉조 취급을 받고 나쁜 의미의 속담에 잘 나오고 그런 걸까요. 검은 털 색깔이나 울음소리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 까치만 봐도 검은색과 흰색의 대조대비가 명확한 것이 눈에 잘 들어오며 무언가가 귀여운 느낌입니다. 까마귀는 온몸이 검은데다 사체를 파먹고 기분 나쁜 울음소리를 낸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이미지를 심어줍니다.

사람들에게 흉조라는 인식이 박힌 까마귀는 한 때는 정력에 좋다는 소문이 돌기도 하면서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기도 했습니다. 말 그대로 까마귀의 수난시대였죠.

우는 소리까지 가르치는 까마귀

까마귀는 참새목 까마귀과 까마귀속 조류입니다. 같은 까마귀과에 속한 까치와는 친척인 셈이죠.

30cm 자와 비교한 큰부리까마귀의 날개. 큰부리까마귀의 한쪽 날개 길이는 50cm, 양쪽 날개를 다 펼치면 1m에 이른다. 국립생태원 제공
30cm 자와 비교한 큰부리까마귀의 날개. 큰부리까마귀의 한쪽 날개 길이는 50cm, 양쪽 날개를 다 펼치면 1m에 이른다. 국립생태원 제공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까마귀는 크게 까마귀(Corvus corone), 큰부리까마귀(Corvus macrorhynchos), 떼까마귀(Corvus frugilegus), 갈까마귀(Corvus dauuricus) 등이 있는데요. 이 중 덩치가 가장 큰 큰부리까마귀는 제주도와 전국 산지 등에 서식하는 텃새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동북ㆍ동남아시아, 인도 등에 주로 사는 큰부리까마귀의 체중은 600~800g이며 양 날개를 다 펼치면 1m인 큰 새입니다. 이름 그대로 부리도 굵고 커서 마치 익룡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까마귀 새끼는 알을 깬지 한 달 뒤 둥지를 나와 가족들과 함께 지냅니다. 아기 까마귀는 입안이 붉은 색이며 눈은 회색에 검은 눈동자입니다. 어른이 되면서 입안은 검어지고 눈도 검어지죠.

일본 우츠노미야시 외곽에서 2009년 5월 어미 까마귀가 새끼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일본 우츠노미야시 외곽에서 2009년 5월 어미 까마귀가 새끼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아기 까마귀는 부모의 3분의 2 크기까지 커도 나뭇가지에 앉아서 먹이를 받아먹습니다. 잘 먹고 잘 자라서 몸은 금방 커지는데 아직 날지는 못하죠. 덩치 큰 아기 새가 애교를 떨면서 먹이를 먹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합니다.

아기 까마귀는 다른 종의 아기 새들과 달리 부모에게 많은 것을 배웁니다. 사람이 자기 자식에게 교육을 시키듯 부모 새는 아기 새에게 나는 법, 우는 법 등을 가르칩니다.

어미 까마귀는 새끼를 애지중지 키웁니다. 봄이 되면 까마귀가 길 가는 사람의 뒤통수를 발로 차거나 부리로 찍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에는 어김없이 머리 위에 둥지가 있을 겁니다.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위협으로 느끼는 사람들을 퇴치하기 위해서죠. 둥지 근처로 가지 않아도 눈만 마주치면 와서 달려들고,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속된 말로 까마귀에게 찍혀버린 거죠.

둥지나 나무에서 떨어진 아기 까마귀를 주워서 키우면 부모에게 돌아갈 기회가 사라지게 되죠. 그러면 부모로부터 살면서 필요한 지식을 배우는 기회까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란 까마귀들은 몸이 자라서 어떻게든 날지만 다른 무리들과 함께 잘 어울리지 못하고 우는 소리도 달라서 소심한 까마귀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무리를 지어서 생활하는 까마귀는 조직 안의 서열과 관계가 매우 중요한데 말이죠.

까마귀의 기억력은 상상 이상

제가 일본의 한 대학교에서 큰부리까마귀를 연구하던 시절, 연구실의 터줏대감은 날개를 다쳐서 들어온 ‘낫짱’이라는 13살 된 까마귀였습니다. 어느날 까마귀들에게 먹이를 주고 청소를 하려고 사육장으로 들어갔더니 낫짱이 어디서 끈을 물고 와서 놀자고 하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미안, 나 오늘 바빠서 같이 못 놀아줘. 저리 가서 혼자 놀아” 라며 손으로 밀쳐버리고 말았죠.

다음 날, 사육장에 들어가자마자 낫짱은 맨발에 슬리퍼를 신은 제 발을 쪼려고 달려들었습니다. 날카로운 부리로 들이대는 낫짱을 피하면서 사나흘간 사육장에 발도 못들인 기억이 있네요. 그 착한 까마귀가 같이 놀아주지 않은 것을 기억하고 복수를 한 것입니다.

2008년 5월 일본 우츠노미야대학교 연구실에서 사람 팔 위에 올라선 큰부리까마귀. 인지능력과 기억력이 뛰어난 까마귀는 반려동물처럼 사람과 잘 어울린다. 국립생태원 제공
2008년 5월 일본 우츠노미야대학교 연구실에서 사람 팔 위에 올라선 큰부리까마귀. 인지능력과 기억력이 뛰어난 까마귀는 반려동물처럼 사람과 잘 어울린다. 국립생태원 제공

사정상 다른 연구자로부터 두 달 가량 맡게 된 한 까마귀는 함께 키우는 토끼와 놀기도 하고 연구자들의 팔 위에도 곧잘 올라가는 사교성 좋은 녀석이었지만 항상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키우던 주인이 돌아오자마자 소리를 지르고 날개를 퍼덕거리며 반가워했죠. 주인이 누군지 정확히 알고 기억한 까마귀는 그 동안 함께 살던 주인을 만나지 못한 슬픔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까마귀는 ‘기억’과 ‘인지’ 능력이 뛰어납니다. 그렇다면 까마귀는 사람이나 주변 사물을 얼마나 잘 구분해 내고, 학습한 것을 얼마나 오래 기억할까요.

먼저 사람을 남녀로 구분하여 인지하는지, 사람의 눈, 코, 입을 각각 가리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실험을 해 봤습니다. 특정 사람의 얼굴사진을 붙인 상자에 먹이를 넣고, 다른 상자에는 먹이를 안 넣는 식으로 ‘먹이 보상’ 훈련을 했습니다. 이후 여러 사람들의 사진을 보여 주면 그 중 상자에 붙어 있는 사람의 사진을 부리로 꼭꼭 찍으며 골라냅니다. 놀랍게도 남자와 여자를 인지하고 구별해 냈으며 코와 입을 가렸을 때도 누구인지 정확히 알아봤습니다. 눈을 가렸을 경우에만 사람을 인지하지 못하더군요.

기억력을 알아보기 위해 세모와 네모 등 도형을 학습시킨 후 일정 시간이 지난 뒤 다시 확인하는 실험도 진행했습니다. 먹이가 있는 상자 위에 세모를 붙이고 나머지 도형의 상자에는 음식을 안 넣어주는 식의 훈련을 하고, 이후 여러 도형 중에서 골라보도록 하면 세모를 부리로 꼭꼭 찍어 고르는 식입니다. 까마귀는 무려 1년간 학습한 도형을 기억하고 있더군요. 까마귀에게 한 번 찍히면 1년은 각오해야 하는 건 아닐까요. 적어도 기억력이 나쁜 사람에게 “까마귀 고기를 삶아 먹었다”고 말하는 것은 까마귀에게 실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생활에서도 머리 쓰는 똑똑한 새

까마귀는 단순히 상대방을 잘 알아보고 기억력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다양한 소리로 대화를 하기도 하고 먹이를 먹을 때를 보면 ‘이 녀석 천재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머리를 잘 씁니다.

어휘력이 풍부한 까마귀는 40여 가지의 소리로 소통을 합니다. 사람 귀에는 ‘까악-까악’ 하는 소리로만 들리지만 직접 까마귀 무리의 울음소리를 녹음한 뒤 분석해보면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까마귀는 이처럼 다양한 어휘들로 경계, 위협, 구애, 둥지 출입 등을 표현해 소통을 합니다. 대신 화려한 털 색깔을 자랑하거나 구애의 춤을 출 필요는 없죠. 까마귀는 말로 소통하면 되니까요.

일본 우츠노미야대학교 연구실에서 사육 중인 까마귀가 2004년 8월 상자 속의 먹이를 먹기 위해 부리로 리본을 풀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일본 우츠노미야대학교 연구실에서 사육 중인 까마귀가 2004년 8월 상자 속의 먹이를 먹기 위해 부리로 리본을 풀고 있다. 국립생태원 제공

까마귀가 호두 먹는 법을 알려드릴까요? 딱딱한 호두를 차가 지나다니는 도로에 던져놓고 자동차 바퀴에 깔려 깨지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신호가 바뀌길 기다렸다가 파란불이 들어오면 횡단보도를 건너 도로 위의 호두를 주워 먹죠. 상자에 먹이를 넣고 리본으로 묶어 놓으면 까마귀는 부리로 리본을 풀고 상자 속의 먹이를 꺼내 먹기도 합니다.

까마귀의 털, 마냥 검은 것만은 아니다

이솝우화에는 까마귀의 멋내기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까마귀가 다른 새들의 예쁜 깃털을 몸에 붙인 채 숲 속에서 제일 예쁜 새를 뽑는 대회에 나가 우승하지만 곧 다른 새들에게 들켜 깃털을 몽땅 빼앗겨 버린다는 내용이죠. 검고 단조로운 털을 싫어하고 예뻐 보이고 싶어하는 까마귀가 참 불쌍해 보이는 대목이죠. 우화에서도 드러나듯 오랜 기간 까마귀는 검은색의 상징이었습니다.

까마귀의 날개를 확대한 모습. 까만 날개를 둘러싼 얇은 막이 빛에 반사돼 각도에 따라 보라색, 파란색 등을 띤다. 국립생태원 제공
까마귀의 날개를 확대한 모습. 까만 날개를 둘러싼 얇은 막이 빛에 반사돼 각도에 따라 보라색, 파란색 등을 띤다. 국립생태원 제공

하지만 까마귀의 깃털을 자세히 살펴보면 검은색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까마귀 날개의 첫째와 둘째 날개 깃, 날개 덮깃을 자세히 살펴보면 희미한 파란색과 보라색을 띠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야만 볼 수 있는 까마귀의 파랑과 보라색은 각도에 따라서 보이기도 하고 안보이기도 하는 구조색입니다. 날개의 미세 구조와 빛의 반사, 산란과 간섭에 따라 나타나는 색이기 때문이죠.

까마귀의 날개깃털 하나를 뽑아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해 보면 까만색을 나타내는 멜라닌 과립 위에 ‘에피큐티클’이라고 하는 얇은 막이 있습니다. 빛이 이 막에 닿으면 간섭, 반사 작용을 통해 희미한 파란색과 보라색을 나타나게 하는 거죠. 평소에는 검은 색으로만 보이다가 어느 순간 다른 색이 보이니 ‘각도 의존성 구조색’이라고 할 수 있겠죠.

까마귀와 같이 구조색을 가진 대표적인 조류는 물방울무늬 깃털을 가진 공작새를 들 수 있습니다. 공작새의 화려한 깃털색은 수컷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암컷을 유인하는 역할을 하죠. 하지만 까마귀의 구조색은 암수가 모두 지니고 있는데다 눈에 잘 띄지도 않아 서로간의 인식이나 소통을 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멜라닌 색소의 분포와 크기, 에피큐티클의 두께에 의해 우연히 생긴 색으로 추정될 뿐입니다.

견우와 직녀 설화에서 멀리 떨어진 두 연인을 만나게 해 주기 위해 까마귀와 까치가 ‘오작교(烏鵲橋)’를 만들어 준 이야기나, 삼국유사에 나오는 역모를 알려 왕을 위험에서 구한 까마귀의 이야기를 보면 까마귀는 현명하고 신성한 새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움직이는 바위를 타고 동해 바다를 건너 일본의 왕과 왕비가 됐다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름에도 까마귀 오(烏) 자가 들어있는 것을 보면 과거에는 고귀한 존재로 인식됐을 수도 있습니다.

살아있는 까마귀를 처음 본다면 울음소리와 깃털 색 때문에 기분이 나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흉조라고 단정짓고 멀리하는 것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불과한 것 아닐까요. 좋은 이미지로 여겨졌던 과거도 있으니까요.

오랜 기간 사람들과 함께 살아 온 똑똑한 새, 까마귀에 대한 오해가 이제 조금이나마 풀리셨나요.

이은옥 국립생태원 생태기반연구실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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