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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미수”라던 반려견 갈등… 법정 대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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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미수”라던 반려견 갈등… 법정 대반전

입력
2017.08.1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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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주인과 다투던 장애인

고교생 신고로 체포돼 법정에

“15층 난간서 떨어뜨리려 했다”

피해자 말 믿은 고교생 진술번복

국민참여재판서 결국엔 무죄로

지난해 11월 서울 관악구 한 아파트에서는 반려견 때문에 이웃 간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간질을 앓는 장애4급 15층 주민 박모(47ㆍ남)씨가 엘리베이터에서 같은 층 주민 송모(60ㆍ여)씨 반려견에게 정강이를 물린 것이다. 목줄 없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개를 박씨가 내동댕이치자 송씨는 들고 있던 종이봉투로 “왜 불쌍한 개를 때리냐”고 박씨를 내리치며 “사람 살려”라고 소리쳤다. 오랜 지병 후유증으로 판단력이 떨어지는 박씨는 송씨 고함에 놀라 피를 흘린 채 도망쳤다. 과실치상 혐의로 형사소송까지 간 이 사건으로 송씨는 벌금형을 받았다.

두 사람은 이후에도 개 때문에 수차례 부딪쳤다. 쓰레기를 들고 오다 복도에 서 있는 송씨와 개를 보고 박씨가 “치워 죽여 버려”라고 했다가 또 한번 사단이 날 뻔 했다. 지난 4월 엘리베이터를 타려던 박씨가 자신을 향해 심하게 짖던 송씨의 개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반려견을 놓고 벌인 이웃 간 갈등은 결국 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달았다. 지난 4월 19일 오후 5시쯤 박씨가 송씨를 들어 올려 복도식 아파트 15층 난간에서 떨어트리려다가 이를 발견하고 달려온 이웃 고등학생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돼 살인미수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된 것이다.

목격자도 있고, 모든 정황이 박씨에게 불리했다. 재판에 넘겨진 박씨는 “억울하다”며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싫어하던 개를 한 대 걷어차려고 송씨 집까지 찾아간 건 맞지만 살인하려던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8부(부장 최병철)는 박씨 요청을 받아들여 지난 8일 국민참여재판을 열었다.

박씨는 이 자리에서 개 때문에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다가 또 개 짖는 소리가 들려 홧김에 송씨를 찾아갔다고 말했다. 문을 두드려 송씨와 함께 개가 따라 나오면 무작정 걷어차려고 했다는 것이다. 개를 차려는 과정에서 송씨가 넘어졌고, 등을 받쳐 일으키려고 했을 뿐이라고 호소했다. 오랜 투병생활을 한 박씨 체구(168㎝ㆍ60㎏)로는 송씨를 들어 올릴 수 없었을 거란 증언도 이어졌다.

반면 검찰은 목격자인 고등학생이 “아저씨가 할머니를 들어 올리려고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고 박씨가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실제 송씨 집 문을 두드린 점, 송씨가 문을 열고 완전히 밖으로 나올 때까지 열린 문 뒤에 숨어 기다린 점 등을 미뤄 “계획된 살인 범죄”라고 주장했다.

양측 주장이 팽팽한 가운데, 송씨가 이전에도 반려견 문제로 다른 주민을 비방하고 분쟁을 일으킨 전력이 드러났다. 지난해 11월 박씨가 개에 물린 사건 직후 송씨가 박씨 집을 찾아가 “두고 보자”며 난리를 친 사실도 드러났다.

반전은 재판 막판에 일어났다. 유일한 목격자인 학생이 쓴 자필 사실관계확인서를 변호인이 최종변론 때 꺼내 든 것이다. “할머니가 자꾸 자기를 들어올렸다고 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진술했다”며 “사실 멀리서는 윗옷을 잡고 몸싸움하는 정도로 보였다”고 말했다. 여기에다 범죄사실을 뒤엎는 결정적인 상황 변화가 전개됐다. 재판장이 박씨에게 송씨와 비슷한 체구(45㎏)의 노모를 들어 올려 보라고 한 것이다. 증인석으로 나온 80세 노모가 행여 다칠까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힘을 줬지만 역부족으로 수차례 땅에 떨어트린 뒤 박씨가 “어머니 죄송하다”며 눈물을 떨구자 배심원들이 동요했다. 평의는 두 시간여 만에 끝났다. 배심원 9명 중 8명이 박씨를 무죄로 봤다. 재판장도 이를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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