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가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개봉 12일만에 벌써 800만 관객을 태웠다. 올해 첫 번째 1,000만 영화 탄생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숱한 발걸음들이 꾹꾹 다져서 낸 길을 따라, 1980년 5월의 광주가 현재로 생환하고 있다.
‘택시운전사’가 600만을 돌파한 1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마주한 장훈 감독은 “손익분기점을 조금이라도 넘기는 게 목표였다”며 “이런 흥행은 처음 경험해 실감나지 않는다”고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택시운전사’는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세상에 알린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태우고 광주로 향한 택시운전사의 실화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위력을 떨치던 시기에 영화가 기획되고 촬영됐다. “송강호가 아니었으면 이 영화를 제작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투자배급사는 물론 이 영화에 참여한 스태프들도 큰 결심을 해야 했고요. 그만큼 강력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였어요.”
영화는 두 외부인의 시선에서 광주의 비극을 들여다본다.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은 당시 평범한 보통 사람들을 대변하는 동시에 현재적 시선을 인도하고,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는 만섭까지도 객관화시키는 외부의 눈이 돼 영화의 층위를 두텁게 만든다. “당시 광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광주 바깥의 사람들은 전혀 몰랐어요. 힌츠페터가 취재한 영상을 통해 외국에서는 알게 됐고요. 한국을 둘러싼 외부 세계와 광주 말고는 한국 사회 전체가 진실로부터 고립돼 있었던 겁니다. 딱 도넛 모양이지요. 관객들이 만섭에 이입해 정서적 체험을 한 뒤, 힌츠페터를 통해서 이성적으로 광주를 한 번 더 되새길 수 있길 바랐어요.”
이 영화로 인해 힌츠페터를 기리는 추모 분위기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초 세상을 떠난 힌츠페터를 대신해 아내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 여사가 한국을 찾아 13일에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장 감독은 “에필로그에 실린 인터뷰를 촬영한 날이 첫 만남이었고 두 번째 만남은 장례식이었다”며 “완성된 영화를 보여드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며 가슴 아파했다.
영화에서 ‘광주에 왜 왔냐’는 만섭의 질문에 힌츠페터는 “기자니까, 기자는 사건이 생기면 어디든 간다”고 답한다. ‘왜 기자가 됐냐’고 묻자 ‘돈’을 의미하는 손가락 동작을 보여준다. 힌츠페터가 장 감독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옮긴 장면들이다. “제 질문에 대한 그분의 답변들은 너무나 상식적이었어요. 나는 어떤 특별한 걸 원했던 걸까 반성하게 될 정도로요. 그분의 태도가 영화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영화 속 힌츠페터 캐릭터가 입체감이 부족하다는 아쉬운 목소리에도 장 감독은 “영화적인 캐릭터를 위해 실존 인물을 변형시키는 것이 오히려 왜곡이 될 수 있다고 봤다”며 “실제로 워낙 점잖은 분이시기도 하다”고 말했다.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 측 인사가 언론 인터뷰에서 계엄군이 시민군을 공격하는 장면을 “허위 날조”라고 주장해 공분을 일으켰다. 장 감독은 “당시 자료를 철저히 고증해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을 그려냈다”는 뼈 있는 말로 일침을 놓았다. 네티즌들은 ‘날조가 맞다’면서 ‘영화에선 너무 평화롭게 연출됐다’고 전 전 대통령 측을 비꼬기도 했지만, 광주의 아픔을 겪은 이들에겐 실제로 광주의 참상이 순화돼 표현됐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장 감독은 “사건이 아닌 인물 중심이기도 하고 항쟁의 전 과정을 다루지 않기 때문에 표현 수위에 고민이 많았다”며 “노골적인 전시가 되지 않으면서 관객에게 정서적인 울림을 남기는 것이 과제였다”고 말했다.
이 영화를 통해 5ㆍ18을 새로 알게 된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특히 뜨거운 반응이 나오고 있다. 영화가 역사 교육의 역할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장 감독은 “이 영화가 실화라는 걸 믿지 못하는 후기도 전해 들었다”면서 가볍게 웃음 지었다. “역사에 대한 사명감까지 갖고 만든 영화는 아닙니다. 그저 광주를 기억하는 계기만 돼도 좋겠다고 생각했죠. 영화는 역사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을 보탤 뿐입니다. 관객이 영화를 역사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가 정상이라고 봅니다.”
김기덕 감독의 조연출로 영화 인생을 시작한 장 감독은 ‘영화는 영화다’(2008)로 감독 데뷔하며 ‘충무로 재목’으로 주목 받았다. 김 감독과 결별한 뒤 만든 ‘의형제’(2010)와 ‘고지전’(2011)은 국내외 영화상에서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승승장구하던 시기였지만 장 감독은 그때 영화 현장을 떠나 공백기를 가졌다. ‘택시운전사’로 복귀하기까지 6년이 걸렸다. “3년 반 동안 영화 3편을 만들었어요. 개인적인 시간이 전혀 없었죠. ‘고지전’ 끝날 무렵 개인적으로 힘든 일도 겪었고, 영화 만들면서 상처도 많이 받았습니다. 왜 영화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더군요. 잠시 쉬면서 그 이유를 찾고 싶었습니다.”
영화에 대한 애정을 다시 갖게 됐을 때 만난 시나리오가 ‘택시운전사’다. 전쟁의 야만성과 분단 시대의 비극 등을 다룬 이전 작품들처럼 ‘택시운전사’도 사회성이 짙은 영화다. ‘사회파 감독’이란 평가에 장 감독은 “우연”이라며 껄껄 웃었다. “사람이 곧 세계 아닌가요. 사람의 정신이 반영돼 물질화된 것이 사회, 제도, 도시이니까요. 저는 사람을 궁금해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사람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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