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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잡는 과학] 연관성 흩어지면 논리 무너져… 증거도 ‘뭉쳐야 이긴다’

입력
2017.08.1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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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성 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가 10일 서울 중구 다동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형준 기자
이윤성 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가 10일 서울 중구 다동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형준 기자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수장이 직접 현장에 간 건, 당시로선 파격이었죠.”

이윤성(64) 서울대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는 2011년 ‘마포 만삭 의사부인 살해사건’ 당시 국과수 원장이었던 서중석(현 대전보건대 총장)씨가 보인 이례적 행보를 사건 해결의 의미 있는 시작점으로 꼽았다.

국과수 법의관이 사건 현장의 구조와 분위기를 직접 살피는 게 사진 같은 기록물을 보는 것보다 효과적인 것은 사실. 하지만 인력 부족이나 업무영역을 넘어선다는 이유 때문인지 현실에서는 거의 이뤄진 적이 없었다는 게 그의 얘기다. 이 교수는 14일 “서 전 원장은 그날 그 곳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직접 머리에 그려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서 전 원장은 당시 국과수에 돌아와 분야별 실무자들을 한 자리로 불러모아 ‘팀 플레이’를 제안했다. 영역별 사건 관련 증거 분석 결과를 수시로 공유해가며 ‘증거의 연쇄고리’를 갖춰야 나중에 법정에서 증거 효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과거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1995년)처럼 증거 부족으로 결국 미제 사건이 된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한 조치였다. 국내 대표적 법의학자인 이 교수 또한 사건 초반부터 자문 교수로서 팀플레이의 한 축을 맡았다.

특히 이 교수는 ‘비장의 카드’를 내세운 피의자 백씨 측과 재판정에서 격돌했던 때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피해자 A씨가 의식을 잃고 넘어져 질식해 숨졌다”고 주장했던 백씨 측은 캐나다 토론토대 법의학센터장이었던 마이클 스벤 폴라넨 박사를 데려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 했다. 폴라넨 교수와 법정진술로 맞붙었던 이 교수는 “사건 초기부터 법정다툼까지 고려해 모은 ‘증거 연쇄고리’의 힘이 있어 상대 교수 논리를 깨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고 했다. 폴라넨 교수는 ‘이상자세에 의한 질식사’에 관해 쓴 자신의 논문을 근거로 사고사 가능성을 주장했지만 부검 결과와 여러 증거를 토대로 한 이 교수와 수사기관 반박에 “이 사건에 논문을 직접 인용하기엔 부적절한 것 같다”고 인정했다. 언론에서는 이를 “한국 과학수사의 한 판 승리”라고 할 정도였다.

이 교수는 “법의관이 현장을 직접 살펴보는 게 정말 중요한 과정임에도, 여전히 사건현장을 찾는 법의관을 보긴 어렵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당장 법의학자를 늘릴 순 없지만, 정부 차원에서 법의학, 법과학자 등 과학수사에 필요한 인재 양성 시스템을 갖추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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