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인 이상 기업 노사협 설치 의무
운영하는 곳은 57%에 불과
노동조합 조직률도 겨우 10%대
유명 유통업체에서 정규직으로 일하는 A씨는 주 6일을 근무하고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사내에 노조가 없고, 노사협의회도 없어 근로조건에 대해 이야기할 창구가 없다. A씨는 “직원들 사이에서 불만이 팽배한 데 사측과 이런 논의를 할 통로가 없으니 모두들 답답해 한다”고 호소했다.
국내 노동조합 조직률이 10%대로 저조한 가운데 기업들의 ‘노사협의회’ 운영 비율도 절반 수준에 그친다는 조사가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근로자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기구를 활성화하자는 공약을 내건 만큼, 근로자대표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4일 한국노동연구원 8월 노동리뷰에 실린 ‘대안적 근로자대표제의 모색’에 따르면 상용근로자 30인 이상 기업 568개소 중 노사협의회를 운영하는 곳은 57.2%(335개소)에 불과했다.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에 따르면 상용근로자 30인 이상 기업은 임금체계ㆍ채용ㆍ성과 배분 등 근로환경과 관련한 논의를 위해 근로자와 사용자 동수로 이루어진 노사협의회를 설치해야 한다. 정당한 사유 없이 설치를 안 하면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지만 단속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 근로자참여법에 따르면 근로자 위원은 근로자가 선출해야 하며,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가 있을 경우 노조 대표자와 노조가 위촉하는 사람이 근로자 위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들이 상당했다. 노사협의회를 운영 중인 기업 335개소 중 ‘회사의 지명ㆍ추천’(13.4%)으로 선정되거나 ‘일부 근로자 선거와 회사 지명ㆍ추천’이 혼합된 경우(12.2%)가 전체의 4곳 중 한 곳을 차지할 정도로 회사가 근로자 위원 선정 과정에 직접 개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보고서는 장기적으로 종업원평의회 방식으로 근로자대표시스템을 재편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종업원평의회는 독일 모델로서 근로자로만 구성되는 독자적인 기구이며 사측의 개입 없이 근로자들의 의견을 모을 수 있다. 아울러 현행 30인 이상 기업 기준에서 영세사업장까지 근로자대표를 구성할 수 있도록 대상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노동연구원 관계자는 “근로자대표들이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의결ㆍ협의사항에 대한 조정을 통해 실질적으로 근로자대표 시스템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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