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대화제의 베를린 선언에
北은 무시 일관… 관계 진전 없어
한중 관계도 사드 갈등 제자리걸음
“북미 대화를 방아쇠로 삼아
남북 간 대화 준비해야” 조언도
미국을 겨냥한 북한의 연이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로 한반도 운전대를 잡겠다던 ‘문샤인 정책’이 초반부터 흔들리고 있다. 베를린 선언에 대한 북한의 무시 전략으로 남북관계는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는 한편 전임 정부에서 급격히 악화된 한중관계 역시 문 대통령의 사드 역주행으로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최근 북미 간 위험천만한 ‘말의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 한국의 목소리는 뒤로 밀리며 문재인 정부가 애당초 그렸던 그림에서 멀어지는 형국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6일 베를린 구상을 통해 북한 정권의 안전을 보장하는 비핵화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선언했다. 남북관계 개선을 밑거름으로 한반도 비핵화 외교력을 회복하겠다는 청사진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국 주도의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확보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북한의 호응은커녕 북한의 잇따른 ICBM 도발과 괌 포위 사격 위협으로 한반도 정국은 북미 두 당사국 간 씨름판으로 재편됐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16일 “한국이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북한이 판단했다면, 북한도 남측의 대화제의에 응했을 것”이라며 “결국 북한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더 큰 대미 외교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을 통한 외교 지렛대 회복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당초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배치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겠다고 나섰다. 한중관계 회복을 위한 시간을 벌어두겠다는 전략이었지만 지난달 28일 북한의 ICBM급 화성-14형 2차 발사 직후 문 대통령은 사드 발사대 4기에 대한 추가 배치를 지시했다. 북핵이 미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서자 미국의 압력에 더 버티지 못한 셈이다.
때문에 애당초 문샤인 정책이 북핵 고도화 가능성에 대비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비등해지고 있다. 과거 햇볕정책이 힘을 냈던 때보다 북한의 경제사정과 북핵능력이 고도화된 현실을 외면하고 ‘남북관계 개선-외교력 회복-한반도 비핵화’라는 낙관론에 매몰된 측면이 짙다는 것이다. 한 전직 고위 외교 관료는 “남북대화의 물꼬가 터지면 한반도 외교에서 우리 몫을 찾아올 수 있다는 전제 자체에 무리가 있었다”며 “북한이 남측을 무시하는 상황에서 결국 전술핵 재배치 같은 극단적 처방까지 거론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는 그러나 여전히 한국의 역할을 키워 나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대북압박과 북미 간 대치는 결국 협상국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 위한 싸움의 과정”이라며 “여기서 북미 간 대화를 유도하며 중재해야 하는 우리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도 “남북 간 대화가 먼저 이뤄졌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이제는 북미대화를 트리거(방아쇠)로 삼아 남북 간 대화를 열 준비를 해야 할 시기”라고 조언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국면전환의 시기가 되면 남북 간 채널도 열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베를린 선언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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