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에 젊은 구직자 몰리지만
실력 갖춘 인재 찾기 ‘별따기’
정부는 신규채용 늘리기만 신경
취약층 일자리 창출로 눈돌려야
“어떤 분야 지원하세요? 저희가 찾는 분은…”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구글캠퍼스서울에서 열린 신생벤처기업(스타트업) 채용박람회 현장에 구직자 310명이 몰렸다. 참가 업체들은 반나절을 투자해 필요한 사람을 설명하느라 열을 올리지만 ‘성공률’이 별로 높지 않다. 지난해에도 참가했던 A업체는 작년 채용상담을 한 300명의 지원자 중 단 1명을 채용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채용확률이 높은 편이라 일손이 필요한 스타트업은 채용박람회에 가능한 한 참여한다. 참가 업체들의 말을 빌리면 “채용박람회를 찾아오는 지원자들은 적어도 스타트업이 뭔지는 알고 온다”는 것이다.
정부는 일자리 정책을 추진하면서 벤처 활성화가 청년 일자리 창출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 자주 언급하지만, 정작 채용에 나서야 할 기업들 사이에서는 “사람 쉽게 뽑지 말라”는 말이 불문율로 자리잡고 있다. 벤처와 스타트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높아지는 반면, 벤처 문화와 현실에 대한 이해도는 떨어져 오래 함께 할 인력을 구하기가 힘들다는 게 업체들의 하소연이다.
스마트밴드를 만드는 벤처 직토의 김재영 개발팀장은 정기적으로 벤처 구직자들을 상담해 주고 있다. 김 팀장은 “벤처가 찾는 인재는 즉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을 갖춘 사람”이라며 “대기업처럼 업무에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 줄 여유가 없고 각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책임감도 큰데, 벤처에 취직하면 맥주 마시면서 카페에 앉아 자유롭게 일할 것이란 환상에 젖어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김 팀장은 “어떤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싶은가라는 기본적인 질문조차 제대로 답을 못하는 구직자도 여럿 봤다”며 “회사의 목표, 본인이 맡게 될 직무 등에 대한 고민 없이 대기업보다 취직하기 쉬운 곳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기술 벤처 큐비트시큐리티 신승민 대표는 대뜸 “사람에 대한 미움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입사 당일 나타나지 않거나 일주일 안에 그만두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신 대표는 “성장 가능성을 믿고 일을 시작하는 구직자와 위험을 감수하고 직원을 뽑는 고용주가 서로 신뢰하는 문화가 우선 정립돼야 한다”며 “하지만 정부 정책은 채용 숫자에만 집착하는 단기적 방편에 그친다”고 꼬집었다.
대부분의 정부 지원 벤처 연구개발(R&D) 사업이 지원금의 일정비율 이상을 신규 채용에 쓸 것을 요구하는데, 상당수 업체가 지원 기간이 끝나면 직원을 내보내는 실정이다. 신 대표는 “기술이나 제품에 투자하는 대신 인건비로 쓰면 미래 성장 동력 개발이 뒤처질까 우려돼 대부분 벤처 기업인들은 직원을 최소화하려 한다”고 토로했다.
결국 벤처를 청년 일자리로만 바라보는 정부의 좁은 시야가 문제를 만들고 있다.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는 여러 벤처를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청년을 비롯한 취업 취약계층이 장기간 일 할 수 있는 안정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숙박 플랫폼 업체 야놀자는 새터민, 60세 이상 등 취업취약계층을 전국 6만여개 숙박시설의 객실 청결 업무 등에 취업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10년 차 벤처 위드이노베이션 이재경 인사팀장은 “응용 소프트웨어(앱) 내 제휴점 정보 갱신 등의 직무에 장애인 채용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신승민 대표는 “대기업에서 40대에 조기 퇴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경험과 연륜이 있는 이들이 벤처에 합류한다면 회사도 빠르게 성장하고 대기업과 벤처 간 고용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며 “폭넓은 관점에서 장기적인 지원책이 나오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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