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구상서 막판에 빠진
‘대북 특사’ 필요성 첫 언급
“10년간 대화 단절 극복 위해선
조급할 필요 없어” 긴 호흡 강조
“한반도 바깥서 대북 군사행동
美, 한국과 충분히 협의해야”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북한과의 대화조건으로 “추가도발을 멈춰야 한다”고 재차 못박았다. 다만 대화여건이 조성된 이후, 대북 특사파견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괌 포위사격 위협에 맞선 미국의 선제적 대응을 의식한 듯 “한반도 바깥에서라도 미국의 군사적 행동은 한국과 충분히 협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남북문제에 대해 “남북간에 대화가 재개돼야 한다”면서도 “우리가 조급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년간의 단절을 극복해내고 다시 대화를 열어나가는 데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며 “대화는 그 자체에 목적을 둘 수는 없고, 대화를 하려면 대화여건이 갖춰져야 하고 좋은 결실을 맺으리라는 담보가 있어야 한다”고 긴 호흡을 강조했다. 정부가 지난달 17일 제안한 군사당국ㆍ적십자회담에 북한이 한달 째 응하지 않는 것을 두고 일각에서 제기하는 비판을 일축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특히 “적어도 추가 도발을 멈춰야만 대화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고 분명히 했다. 이틀 전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대화 재개 조건과 같은 내용이다. 반면 지난달 6일 베를린 구상 이후 줄곧 북핵 문제 해결의 시작으로 강조해 온 ‘핵 동결’이라는 표현은 꺼내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대신 “갖춰진 대화여건 속에서 관계를 개선해 나가는데, 북핵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된다면 북에 특사를 보내는 것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며 대북 특사를 거론했다. ‘갖춰진 대화여건’ ‘북핵 해결에 도움’이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문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특단의 조치인 대북 특사의 필요성을 취임 후 직접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대북 특사라는 표현은 지난달 공개한 베를린 구상에 포함하려다 화성-14형 미사일 발사로 긴장이 고조되면서 막판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이달 들어 북미간에 전쟁을 불사하는 말 폭탄이 위험수위를 넘나들면서 한미 공조에 우려가 제기되는 것과 관련, “강도 높은 제재와 압박으로 추가 도발을 멈추게 하고 핵 포기를 위한 협상의 장으로 끌어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 한미는 입장이 같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은 단호한 결의로 북한을 압박하고자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군사적 행동을 실행할 의지를 갖고 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한미 간 충분한 소통이 되고 있고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미국의 대북 군사적 옵션에 대한 우려를 거듭 제기하며 추가 질문이 나오자, 문 대통령은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는 가장 중심 당사자 또 가장 큰 이해관계자가 대한민국”이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북미간 문제이기도 하다”고 답했다. 이어 “그래서 북한이 계속 도발행위를 하고 나아가 미국에 대해 공격적인 행위를 할 경우 미국이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적어도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만큼은 한국이 결정해야 하고 한국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미국이 설령 한반도 바깥에서 군사적 행동을 취한다고 해도 그것이 남북관계의 긴장을 높일 우려가 있을 경우에는 사전에 한국과도 충분히 협의할 거라고 확신한다”고 우회적으로 미국을 겨냥했다. 현실적으로 미국의 군사적 역할을 인정하지만, 북한 문제의 운전대를 놓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거듭 확인한 것이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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