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죽여도, 안 죽여도
분노의 신들이 그를 괴롭힐 것
오레스테스의 결단만이 해결책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하는 일은
신탁의 명령이자 당시 사회의 관행
아르고스의 왕 아가멤논은 아내 클리템네스트라와 그의 정부 아이기스토스에 의해 살해되었다. 수만 명의 그리스 도시 연합군을 이끌고 거친 항해 후에, 오리엔트의 강국 트로이를 파괴했지만, 정작 자신의 목숨은 자신이 추호도 상상하지 못했던 ‘사랑하는 아내’의 분노의 희생 제물이 되었다.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쳤던, 그들의 아들 오레스테스도 자신의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가 아버지 아가멤논을 향해 품었던 분노(憤怒)를 키우고 있었다.
아비 독수리를 잃은 외로운 새끼들
고대 그리스인들은 ‘분노’를 인간의 감정 이상으로 보았다. 분노는 복수를 반드시 그 가해자에게 갚아 주는 신적인 힘이다. 어떤 사람이 분노에 휩싸이면 그는 곧 그 분노의 노예가 된다. ‘분노의 신’은 우주와 사회를 지탱하는 법을 무시한 불의한 자에게 무시무시한 고통과 나병과 같은 끔찍한 병을 가한다. 불의에 대해 최초로 분노의 감정을 가진 자는 오레스테스가 아니라, 그가 살해하려는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다. 그녀는 자신의 딸, 이피게니아의 억울하고 불의한 죽음에 대한 복수를 아가멤논을 향해 정당하게 행사했다.
그러나 클리템네스타라의 분노는, 그의 아들 오레스테스의 분노를 샀다. 클리템네스트라는 분노의 집행자인 동시에 분노의 대상이다. 오레스테스가 아가멤논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지 않는다면, 분노의 신들이 그를 찾아와 한없는 고통을 줄 것이다. 오레스테스의 복수는 개인의 감정에 의존하기도 했지만, 그 당시 정서와 관행이었다.
오레스테스와 그의 친구 필라데스는 오랜 추방생활을 마치고 고향 아르고스로 돌아와 아버지 아가멤논의 무덤 앞에 섰다. 오레스테스는 아가멤논의 무덤을 찾아온 애도하는 여인들 중, 자신의 누이 엘렉트라를 발견한다. 오레스테스는 어릴 때 헤어진 누이를 보고 말한다. “그대의 기도가 이루어지게 해주신 신들께, 앞으로도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대가 오랫동안 간구한 것이 그대 눈앞에 나타났어요.” 오레스테스는 엘렉트라의 염원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동생, 오레스테스를 보는 것이다. 엘렉트라도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를 향해 분노의 마음을 품고 있지만, 내색하지 못하고 아르고스에서 외롭게 지냈다. 엘렉트라가 자신의 동생 오레스테스를 알아보고 말한다. “오오, 아버지 집안의 귀염둥이여, 눈물로 기다리던 희망이여, 구원의 씨앗이여, 이제 네 팔을 믿고 아버지의 집을 도로 찾아다오.”
오레스테스는 제우스 신에게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아비 독수리를 잃은 이 외로운 새끼들을 굽어보소서. 아비 독수리는 무서운 독사에 친친 몸이 감겨 죽었나이다. 그래서 아비를 잃고 고아가 된 새끼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나이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어려 아비 독수리처럼 둥지로 먹이를 날라 올 힘도 없나이다.”(246-252행) 엘렉트라는 오레스테스에게 자신이 무덤에 온 이유를 설명한다. 클리템네스트라가 악몽에 시달려, 자신을 무덤에 보내 제주를 붓도록 시켰다.
불의와 정의, 그 희미한 경계
오레스테스는 말한다. 인간은 자신이 태어난 환경과 조건들을 바꿀 수 없지만, 그 운명에 대한 태도와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 오레스테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끔찍한 운명을 피하지 않고 맞서, 그 해결점을 찾으려 시도한다. 인간이 사는 사회에는 정의와 불의, 선과 악의 구분이 희미하기 때문에, 그 딜레마에서 벗어나는 해결책은 자신의 결단과 행동뿐이다. 아가멤논, 클리템네스트라, 오레스테스 모두 옳고 그름이 불분명한 비극적인 상황에 던져졌다.
아이스킬로스는 인생이 불공평하고 불분명하다고 말한다. 이 세상은 인간이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체계와 문법이 있다. 오로지 의존할 대상은 자기 자신 뿐이다. 인간은 자신을 엄습하는 난점에 처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스스로의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아들로서 아버지에 대한 의무, 어머니에 대한 의무가 오레스테스의 마음에서 서로 첨예하게 대결한다. 그 누구도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 그가 클리템네스트라를 살해하지 않는다면, 분노의 신들은 그를 더 비참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그녀를 살해한다 할지라도, 여전히 분노의 신들은 그를 괴롭힐 것이다. 세상엔 완벽하게 옳거나 완벽하게 틀린 것은 없다.
그러나 인생엔 상대적으로 더 나은 선택과 더 어리석은 선택이 있을 뿐이다. 오레스테스는 아폴로 신의 명령대로 아버지의 복수를 갚는 행위는 자기 스스로를 또 다른 분노의 대상으로 만드는 일이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그 당시 사회의 규범이기 때문이다.
오레스테스가 받은 신탁, 그리고 결단
오레스테스는 사회의 관행을, 신의 입을 빌려 전달하는 신탁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는 말한다. “이런 신탁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어요? 설사 믿지 않는다 할 지라도 이 일을 해치워야 해요. 여러 가지 요구들이 한데 뭉쳐서 나를 재촉하니까요. 신의 명령도 있고, 아버지에 대한 깊은 애도의 마음도 있는 데다 재산을 잃어 고생이 막심하니까 말이에요. 그래서 나는 트로이를 함락하여 용맹을 떨친 아르고스의 시민들이 그토록 고매한 마음을 가졌음에도, 두 여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꼴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아요. 그 자는 여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게 아니라면, 곧 드러나게 되겠지요.” (297-305행)
이 구절은 오레스테스가 왜 아르고스로 돌아오기를 결정했는지를 엘렉트라에게 장구하게 설명한 첫 연설의 마지막이다. 그가 돌아온 이유는 단순히, 아폴로 신의 신탁 때문이 아니다. 아폴로가 경고한 분노의 신들이 가져올 불행이 두려워서도 아니다. 그가 돌아온 이유는 트로이까지 함락시킨 위대한 아르고스의 시민들이 ‘두 여자’에게 비굴하게 머리를 조아리는 꼴을 볼 수가 없어서다. 여기서 두 여자는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와 ‘여자의 마음’을 가진 아이기스토스다. 오레스테스는 아버지의 왕좌를 아이기스토스가 찬탈한 사실에 더욱 더 분노한다. 그가 아르고스로 돌아온 두 가지 동기가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의 클라이맥스이며 근간이다.
그는 문명의 상징인 아르고스가 아이기스토스에 의해 불의하게 다스려지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한다. 그의 복수는 두 가지로 발전하였다. 하나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클리템네스트라를 살해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니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문명사회의 질서를 파괴한 아르고스의 원수 아이기스토스에게 복수하는 것이다.
합창대는 오레스테스의 결의를 듣고 ‘오래된 정의’를 찬양한다. “위대한 운명의 여신들이여, 제우스의 뜻에 따라 정의가 향하는 방향대로 일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악담은 악담하는 자에게 돌아간다.’ 이렇게 호통을 치는 정의의 여신은 빚진 죄의 대가를 거두신다. ‘살인의 가격은 살인의 가격으로 갚는다.’ ‘행동하는 자는 고통을 당하기 마련이다.’ 이는 먼 옛날부터 전해오는 말입니다.” (306-314행)
제 어미와 마주친 오레스테스, 그의 행동은?
이 부분은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가 서로 주고받으며 노래하는 ‘콤모스(kommos)’, 즉 ‘애탄가’의 마지막이다. 합창대는 당시 그리스를 지배하던 ‘인과응보’라는 원시적인 관습이자 법을 요약한다. ‘눈에는 눈’, 그리고 ‘이에는 이’라는 복수동태법이다. 정의는 악행을 악행으로 되갚음으로 완성된다. 만일 자신의 공동체의 일원이 다른 공동체의 일원에게 해를 당했다면, 그는 다른 공동체를 향해 똑같은 해를 가해야 한다.
합창대는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의 분노와 증오를 부채질한다. 합창대는 전통적인 법질서가 유지되어야 하며, 그들이 정의를 실행하는 신의 도구라고 부추긴다. 그러나 합창대는 오레스테스가 그런 복수를 마치고 난 뒤에, 그의 운명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들은 자신이 또 다른 살인자가 되는 오레스테스의 운명을 헤아리지 못한다. 오레스테스는 아르고스 성으로 들어가 먼저 아이기스토스를 살해하고, 그 후에 어머니 클리템네스트라와 대면한다.
클리템네스트라는 오레스테스가 아이기스토스를 죽인 핏방울이 맺힌 칼을 보면서, 아들을 꾸짖는다. “멈춰라, 내 아들아. 너는 이 젖가슴이 두렵지도 않느냐? 잠결에도 이 어미의 젖가슴에 매달려 그 부드러운 잇몸으로 달콤한 젖을 빨곤 했는데.”(896-898행)
오레스테스는 어머니에게 매정하게 말한다. “자, 따라오시오. 아이기스토스 옆에서 당신을 죽이겠소. 그 자가 살아있을 때도 아버지보다 그 자를 더 사랑했으니, 죽어서도 그 자 곁에 잠드시오.”(904-906행) 클리템네스트라는 모성애를 상기시키며 오레스테스를 회유했지만 실패한다. 클리템네스트라가 외친다. “아아 슬프도다. 내가 이런 뱀을 낳아 길렀다니!” 자신이 뱀이 되어 독수리 같은 남편 아가멤논을 죽였는데, 지금은 아들이 뱀이 되어 독수리 같은 자신이 죽게 되었다.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시작에서 분노의 신들은 아폴로 신이 사회의 정의를 위해 보낸 심부름꾼이며, 아폴로 신의 화신이다. 아이스킬로스는 폭력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새로운 사회를 고안한다. 문명사회란 인과응보 원칙을 초월한 공동체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어떤 체계다. 그는 새로운 사회질서를 위해, 아폴로 신의 본성을 바꾼다. 오레스테스의 행위를 개인의 사건이 아니라 공동체 사건으로 살펴보기 시작한다. 그 대안은 무엇인가?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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